그리고 첫 초음파의 날카로운 추억
6.
2~3일에 한 번 꼴로 병원을 다니다 일주일 넘게 병원을 안 가면 내가 언제 난임병원을 다녔나 싶은 생각이 든다. 신선이식을 진행하면 3~5일 배양한 배아를 바로 이식해야 하기 때문에 일주일도 되지 않아 다시 병원에 가야 하고, 또 주사니 뭐니 준비하는 것이 있는 것 같았지만 나는 여러가지 검사를 다 마치지 않은 상태라 냉동으로 진행했다. 처방받은 약은 며칠 분의 항생제가 전부.
채취 후엔 난자 채취 후 주의사항과 난소 과자극 증후군 주의사항이 적힌 종이를 주며 설명을 해주는데, 적힌 걸 보니 괜히 긴장이 되고 그랬다. 특히 ‘난소 과자극 증후군 주의사항’에는 매일 아침 체중을 측정하고 하루에 2kg 이상 늘면서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하거나 배가 많이 불러지면 병원에 연락을 하고 내원하라고 적혀 있었다. 식사는 배가 불러 더부룩하여 힘드니 소량을 자주 먹으라고 돼 있었는데, 그런 증상이 전혀 없어서 먹기는 잘 먹었다.
배가 불편하고 콕콕 쑤시고 아프기도 했지만 복수가 차지도 않았고, 숱한 후유증을 겪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대단한 증상은 없는 편이었다. 그놈의 코로나가 조금 잦아들고 그동안 미뤄졌던 일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치기 시작했기 때문에 바쁘게 일을 하며 보냈다.
열흘만에 병원을 찾았다. 난자를 제법 많이 채취했기 때문에 배아도 많이 나오지 않았을까 내심 기대했다. 결과는 5일 배양 4개. 배아는 크게 3일 배양과 5일 배양 두 종류로 나뉘는데, 수정이 되고 며칠이 되었냐를 따지면 된다. 3일 배양은 수정되고 3일이 지난 것으로 자연임신으로 치자면 배아는 아직 난관을 이동하고 있는 시기라고 한다. 그러므로 3일 배아는 이식하고 2~3일 지나야 착상을 한다고. 5일 배양은 수정란의 단계가 더 진행된 것이라 빠르면 이식 당일, 그 다음 날 착상 여부가 결정된다.
모두가 5일 배양 배아를 써서 착상까지의 단계를 줄이면 좋겠지만, 5일 배양까지 가려면 엄마 몸 속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혹독한(?) 실험실 환경을 이겨내야 하므로 배아의 상태에 따라 5일 배양이 불가능한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서 채취한 난자 수가 적으면 소중한 배아를 잃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3일 배양에서 그치기도 한다. 이런 세세한 부분은 아마 의료진의 판단이 크지 않을까 싶다.
19개 채취에 배아 4개라니 썩 좋은 성적표는 아니지만 네 개 다 5일 배양이라니 만족하기로 했다. 원래 목요일 채취 전 마지막 난포 크기 점검(?)은 화요일이었는데, 일 때문에 월요일에만 가고 화요일을 빼먹은 것이 원인이었다. 마지막 점검 때 난포 크기가 균일하게 자랐는지 보고 주사를 조절하거나 채취일을 조정해야 하는데, 채취 이틀 전이 아니라 사흘 전에 체크하러 가서 난포 크기가 고르지 못했다고... 뭐 그래도 4개라도 건진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이 난포가 자라는 건 초음파를 통해 확인한다. C병원 초음파실은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인다. 난포 크기 확인부터 착상, 임신 지속 여부도 모두 초음파로 먼저 확인 후 진료를 보기 때문에 이곳에 들르는 사람이라면 초음파실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많을 때는 대기인수가 48명이 찍히는 것도 봤다. 그래도 1번방부터 5번방까지 있어서 그럭저럭 회전율(?)은 나쁘지 않은 편. 어차피 초음파 1시간 기다리고 진료도 1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다.
처음 C병원에서 초음파를 볼 때 느꼈던 당혹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무 것도 모르고 이름이 불리면 유리문 안으로 들어가 하의를 벗고 헐렁한 치마로 갈아입고 다시 내부 대기실에 앉아 차례를 기다려 호출된 방으로 들어가는데, 속옷까지 벗고 올라오라는 말에 약간 의아했지만 아무튼 시키는대로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내 머릿속엔 “초음파=배 초음파”였기 때문이었다. 소위 말하는 ‘굴욕의자’, 검진대에 눕자 초음파는 보는 분이 물었다.
초음파는 처음이세요?
어... 아주 옛날에 한 번 본 적 있어요.
사실이었다. 배 초음파는 사회초년생 당시 회사 건강검진 때 한 번 본 적이 있다. 그런데...
힘 빼시구요.
아래로 뭔가 쑥 들어왔다. 둥글고 길쭉한 초음파 기계가 질을 통해 들어온 거였다. 보통 산부인과에서 말하는 초음파는 질 초음파와 배 초음파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걸 그 때 알았다. 자세히 보기 위해서는 질 초음파를 본다는 것도. 탐폰도 무서워서 잘 못 넣는 나로서 질 초음파는 매우 버거운 의료행위였다.
하지만 뭐든 익숙해지는 법이다. 병원에 갈 때마다, 일주일이 두어 번씩 초음파를 하면서 질 초음파도 익숙해졌다. 다만 누가 하느냐에 따라 고통의 강도는 조금 달랐는데, 거친 손길의 1번방 선생님이 기억에 남는다. 왜냐면 처음을 빼곤 계속 1번방 선생님이 걸렸기 때문..
다시 배아 이야기로 돌아와서.
인터넷 후기를 보면 배아의 모양에 따라 세포분열 과정 진행도가 다르기 때문에 감자배아니 눈사람배아니 하는 것도 있고 배아 등급도 있다는데 K교수님은 그런 말은 일절 해주지 않았다. 궁금했지만 왠지 묻기도 좀 그렇고 해서 고개만 주억거리다 나왔다. 2시간씩 기다려 진료실에 들어가서는 5분도 안 돼 나오면서, 진료실에만 들어서면 왠지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애마냥 한없이 작아지는 것이었다. 이런 걸 물어봤다가 괜히 혼나는 건 아닌가, 바보같은 질문은 아닌가, 사실은 궁금한 게 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진료가 끝나고 간호사에게 설명을 듣고 수납을 하고 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애초에 배아 사진도 안 보여줄 거면 뭐하러 진료를 보러 오라고 했나? 그냥 전화로 알려주지. 다른 병원은 배아 사진도 보여주고 배아 상태 설명도 해준다는데. 그렇게 투덜거리며 다시 집으로 향했다.
이제 다음 단계는 자궁내시경. 각종 수술 일정이 빼곡한 바쁘신 교수님과 역시나 쓸데없이 일이 많은 프리랜서인 내 스케줄 덕택에 자궁경 일정은 다음 달로 잡혔다. 배주사도 뭣도 없는 홀가분한 4주가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