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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리 Jan 27. 2021

생애 첫 수술실

배주사와 링거와 수면마취

5.



시험관 시술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배주사. 난임 병원에 다녀봤다면 누구나 겪어봤을 배주사. 주사를 맞거나 피를 뽑을 때 주사바늘을 보지 않는 게 습관이 돼서 그렇지 사실 주사 맞는 걸 딱히 무서워하진 않는다. 그래도 ‘나만 이 일을 겪을 수 없지’라는 놀부 심보에 남편에게 출근하기 전 배주사를 놔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은 흔쾌히 오케이...해야지 어쩌겠어? 이 배주사 행위는 일정한 시각에 맞는 것이 중요하므로 남편이 출근하기 전인 아침 8시에 이루어졌다.

이 배주사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 난포를 성장시키는 과배란 주사.
보통은 배란 때 한 번에 한 개의 난자만이 성숙된다. 여성은 태어나기 전부터 평생 배란되는 난자의 갯수가 정해진다고 하는데, 미래의 난자를 끌어다쓰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난소에서는 난포가 여러 개 생성되는데, 그 중 하나의 난포만 임신이 가능한 성숙한 난자로 성장해 배란되고 나머지는 퇴화하여 소멸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나머지 난포들까지 성장시켜 난자가 여러 개 배란되도록 하는 것이 과배란 주사다. 난자 채취는 힘든 과정인 데다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한 번에 여러 개를 뽑아서 쓰는... 것 같다.

둘째, 배란억제 주사.
난포를 성장시켰는데, 채취하기도 전에 난소에서 나와 자궁으로 배란이 되어 버리면 무용지물이 된다. 배란이 된 난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생식 능력이 떨어지고, 자궁 속에서 난자를 찾기도 어렵기 때문. 난소에서 난포가 충분히 자랐고 배란이 이루어질 적정한 그 타이밍에 난자를 채취해야 한다. 그래서 난포가 자라는 크기를 보며 주사의 양을 조절한다.

셋째, 난포를 터뜨리는 주사.
이 주사는 채취 전 날 한 번만 맞으면 된다. 주사를 맞고 36시간이 되었을 때 배란이 되는데, 이 시간에 맞춰 난자를 채취하기 때문에 시간을 잘 지켜야하는 것이 관건이다.

처음에 처방받은 것은 과배란 주사였다. 일단 난포를 키우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배꼽을 중심으로 3~4센티미터 옆에, 매일 좌우 번갈아가며 놓으라고 했다. 주사바늘이 잘 들어가도록 배꼽 주변의 살을 잡아주는데 뱃살이 조금 있는 편이 놓기가 수월한 것 같았다. 너무 마른 분들은 고생 좀 할 듯... 처음 두어 번은 너무 뱃살을 꽉 쥐어서인지 피도 찔끔 나오고 했는데 특별히 아프지는 않았다. 그저 남편이 호들갑을 떨었을 뿐이었다. 그것도 매일 하다보니 익숙해져서 주사의 달인이 됐다.

주사를 맞으면서 2~3일에 한 번씩 병원을 가야한다. 난포가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하고 주사 용량을 조절하기 위해서다. 나는 월요일에 처음으로 병원을 방문해 배주사를 받고 같은 주 금요일, 그 다음 주 월요일에 방문해서 상태를 관찰하고 목요일에 난자를 채취했다. 원래 화요일에 한 번 더 오라고 했는데 프리랜서 특성상 일이 불규칙적이라 갈 수가 없었다.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듯이 이런 주사도 마찬가지라, 배가 불렀다거나 두통이 있었다거나 메스꺼웠다거나 하는 부작용을 겪었다는 후기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데, 다행히도 나는 그런 부작용이 전혀 없었다. 그냥 많이 졸린 정도?(원래 잠이 많아서 그런지 모르겠다) 맞고난 부위가 부풀어 오르고 간지럽기 일쑤라는 배란억제 주사도 약간 간지럽고 말았다.

난자채취는 일종의 수술이다. 수면마취를 한 다음 질을 통해 바늘 넣은 다음 난소를 찔러 난자를 채취한다. 평생 수술이란 걸 해본 적이 없어 모든 게 낯설었다. 전날 밤부터 금식을 했다. 아침엔 세수만 하고 자외선 차단제도 바르지 않았다. 수술실 앞 대기실은 잎이 넓은 식물들로 가득 채워놔 온실 같은 분위기였다. 카페 같은 느낌이 병원에 어울리지 않기도 했지만 자못 심각한 표정의 사람들이 여기가 병원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게 해줬다.

수술 시간에 맞춰 정액 채취가 이루어지므로 남편은 대기실에서 대기하다가 이름을 부르면 정액을 스스로 뽑아내면(?) 된다. 수술 시간은 오전 11시였고 10시쯤 도착해 도착확인을 한 후 순서를 기다렸다.  이름이 불리면 간단한 주의사항을 듣고 동의서를 작성한 다음 다시 대기. 전광판 빼곡히 대기자 이름이 떴다. 늘 병원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세상에 난임부부가 참 많다. 이 수많은 난임부부들만 모두 임신과 출산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저출산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지루한 대기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수술실에 입성...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들어가면 수술가운으로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내부 대기실에서 기다린다. 링거를 맞았는데 그건 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 병원 특징은 뭘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거다. 링거도 인생 첫 링거다. 다시 새삼스레, 정말 무탈하게 살았구나 싶다. 휴대폰도 갱의실 캐비닛 안에 두고 오라고 되어 있어서, 수술 및 시술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천장에 고정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마침 텔레비전에서는 <오 마이 베이비>라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처음 보는 드라마인데 20분 정도 본 소회에 따르면 아무래도 배우 장나라가 엄마가 되기 위해 양질의 정자를 찾는 내용인 것 같았다(아니라면 죄송). 난임병원에 정말 잘 어울리는 드라마라고 생각했다(역시, 아니라면 죄송).

링거 한 병을 다 맞고 나서도 더 기다렸다. 슬슬 몸이 뒤틀리고 긴장감이 떨어질 때 쯤 이름이 불렸다. 마침내 수술실이다. 다리를 벌리고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데 마취과 의사가 와서 말을 걸어줬다. 큰 병원 의사도 이렇게 친절할 수 있구나 생각했다. 위내시경도 맨정신에 했었기 때문에 수면마취는 처음이라 좀 긴장이 됐다. 하나 둘 셋 하면 잠이 든다는데 어떤 기분일까? 마취가 잘 안되면 어쩌지? 마스크 위로 호흡기가 씌워졌다. 가슴이 약간 뻐근하다 싶었는데 눈 뜨니 회복실. 특별히 배가 엄청나게 아프다거나 한 건 모르겠고 똑바로 누워 있다 보니 허리가 아팠다. 회복실에서는 한 시간 정도 있다가 가면 된다는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시계도 없으니 알 도리가 없었다. 지루해서 속으로 노래도 부르고 별별 생각을 다했다.

마침내 시간이 되었는지 간호사가 와서 이것저것 설명을 해줬다. 신선배아를 이식할 경우엔 또 무슨 주사를 맞고 하나본데 나는 교수님이 애초에 냉동으로 진행하자고 해서 특별히 할 건 없었다. 난임기간이 길다보니 여러가지 할 수 있는 검사를 다 하고 하자는 취지인 것 같았다. 찾아보니 신선보다 냉동이 더 임신 확률이 높다고도 하는데, 신선이식을 하게 되면 과배란으로 자궁에 부담이 간 상태에서 착상을 진행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몸이 더 힘들고 임신 확률이 떨어질 수 있다는 거였다. 냉동이식을 하면 그만큼 몸이 회복될 시간을 버는 거니, 영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다. 게다가 냉동과 해동을 겪은 배아는 그만큼 혹한의 훈련을 거쳐 살아남았기 때문에 더 튼튼하다고도 한다. 그럴듯하다.

채취한 난자는 무려 19개. 평균은 9개(영국 HFEA의 1991~2008년 시험관 시술 분석 결과). 떠도는 얘기로는 10~15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한다. 20개 이상 채취하면 난소 과자극 증후군이라고 해서 복수가 차기도 한다는데, 나는 그냥 배만 좀 아프고 말았다. 나는 참 건강하구나! 다시금 느꼈다. 그렇다고 아예 아프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다. 생리통 심한 날이랑 비슷한 느낌으로 아프고 불쾌했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 중 하나.

항생제 처방을 받고 약국에서 약을 탔다. 복수를 대비하기 위해 이온음료를 많이 마시라고 해서 포카리 스웨트 2리터짜리를 미리 준비해뒀는데 미지근하니 맛이 없어 몇 모금 못 마셨다. 식사는 서울역에서 돈까스와 육개장. 속이 메슥거려 잘 먹지 못했다는 사람도 있고 죽처럼 부담없는 음식을 먹는 게 좋다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그냥 다 잘 먹었다. 오랜 금식 탓에 배가 무지 고팠다.

아무튼 그렇게 한 과정을 넘겼다. 이제 채취한 난자와 정자들을 만나게 해 수정란을 만들어 배양하는 일이 남았다. 배양 결과 확인은 채취일로부터 열흘 후. 과연 몇 개의 배아가 살아남았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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