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핑크한 것이 꼭 닮았거든요
7.
4주만에 다시 병원을 찾았다. 7월, 계절은 어느덧 완연한 여름이었다. 처음 병원에 갔던 것이 5월이었으니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이러다 말겠지 싶었던 코로나는 전세계적 유행병이 됐다. 그동안 열심히 일도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잘 지냈다. 술은 의식적으로 마시지 않았다. 국밥에 소주 한 잔, 일이 끝난 후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즐기던 나로서는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자궁경이 예약된 날이었다. 자궁경은 질을 통해 자궁 내부를 살펴보는 내시경 검사인데, 모든 난임여성이 이 시술을 하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결혼생활 10년’의 경력과 ‘특별히 피임하지 않음 5년’이 겹쳐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춘 뒤 시술을 하자!는 K교수님의 특단의 결정(?)에 따른 것이 아니었나 한다. 배아 하나 허투루 하지 말자는 그 분의 결정을 적극적으로 존중하며 따른다. 때문에 난임병원은 처음이었으나 각종 검사를 섭렵하게 됐다.
자궁경도 수술이라 마취를 하고 이루어진다. 때문에 전날 밤부터 금식을 하고 갔다. 오전 10시에 예약이 되어 있어 아침 5시에 일어나 KTX를 타고 오느라 좀 힘들었다. 배고픔은 그럭저럭 견딜만 하지만 목마름이 힘들었다. 이건 난자 채취 때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자궁경은 그냥 검사니까, 하는 생각이 좀 가벼운 마음이었다.
접수에서 수납을 하고 차례를 기다려 수술실에 들어갔다. 처음엔 그냥 위 내시경처럼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자궁경도 수술로 치는 건지 수술 전후 주의사항을 자꾸 알려준다. 좀 긴장해야 하는 건가? 그래도 수술대에 한 번 누워 봤다고 크게 긴장하지 않고 편안하게 자다가 회복실에서 깼다.
사실 자궁경을 ‘수술’이라고 하는 이유는 자궁 내시경으로 내부를 살피면서 근종 같은 게 발견되면 바로 제거하기도 하고, 루프나 풍선을 삽입해 착상이 잘 되도록 돕는 시술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자궁이 깨끗해서 아무 것도 안 했단다. 덕분에 접수처에서 미리 결제한 시술금액을 환불 받았다. 그럼 애초에 돈을 받지를 말던가, 이상하게 C병원은 모든 시술에 대한 비용을 미리 결제하고 시술을 하지 않았을 때는 환불해주는, 아주아주 귀찮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다음 번 초음파 비용을 미리 결제해주기도 했다. 이러다 안 오면 어쩔려구...?
아무튼 아무 것도 안 해서 뭐 특별히 주의할 것도 없었다. 일주일 동안 무리하지 말고 충분히 쉬고, 수술 후 속이 괜찮으면 가볍게 식사를 하고, 부부관계나 탕 목욕은 2주 후부터 하고, 기타 등등, 기타 등등. 배고파 죽겠는데 가볍게 식사라고? 왠지 화가 나서 스테이크덮밥과 크림파스타와 새우튀김을 흡입했다.
9일 후 결과를 들으러 병원을 방문했다. 컬러로 보는 내 자궁 내부는 좀 신기했다. 세상에 자기 자궁을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일생 건강하다면 아마 볼 일이 없을 게다. 구불구불 동굴 같은 자궁경부는 (당연하게도) 식도와는 또 다르게 생겼다. 매끈하고 반지르르한 핑크색이 꼭 개불같기도 하고... 핑크색 점막이 좀 징그러워서 자궁경 후에도 괜찮던 속이 좀 안 좋았다. 원래 빈모류 생물에 한없이 약한 비위를 가졌다. 오죽하면 중학생 때 지렁이가 나오던 생물 교과서 페이지는 펼쳐보지도 못했다.
내 비위와는 상관없이 핑크색 자궁 내부는 이상없이 깨끗했다. 다만 붉은색 점점이 보이는 게 특이했다.
이 빨간 점은 왜 있는 건가요?
그냥 원래 그렇게 생긴 겁니다.
사람 얼굴이 다르게 생겼듯이 자궁도 다 다르게 생겼는데, 내 자궁은 그냥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것이다. 어쩐지 머쓱해 더 물어볼 것도 없어졌다.
자궁도 깨끗하니까 이제 남은 건 이식뿐이다. 이제 생리 2~3일째 오면 된다며, 다음 생리는 7월 15일쯤 될 거라고 했다.
어, 제 주기는 그게 아닌데요..
자궁경 하고 나면 생리주기가 바뀌니까 이때쯤일 거예요.
아 예...
두 번째 머쓱. 그리고 과연 칼같이 7월 15일에 생리를 시작했다. 과연 전문가..
너무나 바쁘신 내 주치의 K교수님은 월수금 오전에만 진료를 보시는데, 어차피 이번에는 프로기노바를 처방받는 것이 다였기 때문에 그냥 다른 교수님에게 진료를 보기로 했다. 그 날 저녁에 논현동 노들강에 민어코스를 예약해놨기 때문에 오후 3시쯤 병원을 방문. 늘 사람으로 북새통이던 진료실 앞은 한산하고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이번에 진료를 본 C교수님은 비교적 젊은 여자 교수님이었는데, 아주 친절한 분이었다. 주치의가 아님에도 몸 상태를 물어봐주고 격려의 말도 해주셨다. 그렇다고 뭐 그 분으로 주치의를 바꾸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부부는 친절함과 의사의 실력은 별개이며, 의사는 실력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0일치의 프로기노바를 처방받았다. 프로기노바는 보통 냉동배아를 이식받기 전, 자궁내막 두께를 확보하기 위해 복용한다. 자궁내막이 충분히 두터워야 착상이 잘 되기 때문. 1회 1정, 1일 3회이므로 90개의 무시무시한 분량이다. 그래도 작고 귀여운 하늘색 알약은 먹기 편했다. 매일 맞아야 하는 주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 날은 오랜만에 술도 마셨다. 민어를 앞에 두고 술을 안 먹을 수 없지 않은가? 그래도 옛날보다는 조금 마셨다. 임신하면 더 못 마신다며(이렇게 살지 맙시다). 그러고는 자궁내막 두께를 체크하러 병원을 몇 번 더 갔다. 22일, 29일 이렇게 두 번.
마침내 이식날이 정해졌다. 8월 3일, 어쩐지 뜨거운 한여름 태양이 생각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