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릴리리 Feb 18. 2021

거대한 공장같은 난임병원

난임부부들의 모던 타임즈

8.


C병원은 여러모로 ‘공장같다는 느낌이 든다. 병원 입구 들어오는 길에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커다란 스틸 냉동 저장고도 그렇지만, 시스템은 더욱 그러하다.

C병원의 모든  전용 앱에서 이루어진다. 병원에 도착해 C병원의 와이파이망에 접속하는 순간 누구보다 빠르게 초음파실 도착확인을 눌러놓는다. 초음파는 검사 단계부터 난자 채취, 이식 전후  모든 상황에 보는 가장 기본적인 난임 진료의 하나이기 때문에 초음파실 앞은 언제나 사람으로 북적인다. 특히 오전 진료가 많은 C병원의 특성상 평일 아침 8 30분부터 10시까지는 가장 붐비는 시간대. KTX 시간표는 정해져 있고  역시  평일 오전 진료를 봤기 때문에 8 45분쯤 병원에 도착했다.

도착확인을 누르고 초음파실 앞에 가면 대기실에 걸린 모니터 빼곡히 대기자 이름이 뜬다. 이름은  가운데 글자가 별표 처리 돼있는데, 가끔은 보면서 이름이 무엇일지 상상하곤 한다. 나와 성과 마지막 글자 이름이 같은 사람이 있었는데, 대기자 이름만 보고 수술준비실에 들어가서 곤혹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물론  사람은 금방 잘못 들어간  깨닫고 나왔지만.

차례가 되면 앱으로 알림이 온다. 진료실 알림은 비교적 정확한 편이고, 초음파실 알림은  늦어  끝나고 나와서야 알림이 오고 그랬다. 그래서 초음파실에서는 대기실 앞을 떠날  없다. 하지만 운이 좋아야 열댓명, 심한 날은 50 대기가 뜨고 그랬으니 대기실 의자에 엉덩이 붙일 자리 찾는 것도 일이다.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으면 한두 자리야 금방 나긴 했지만, 기다리는 것도 일이었다. 책을 읽으려고   권씩 챙겨갔는데 사실 글자가 제대로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웬만큼 재밌는 책이 아니고서야. 특별히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듣지 않아도 기다리는 시간은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지루한 대기시간에는 인터넷에서 난임시술 후기를 읽었다. 가슴 아픈 사연이 많아 눈물을 눌러삼키며 보고 괜히 위로도 받고 그랬다.

초음파실에서 어느 정도  차례가 다가온다 싶으면 진료실 도착확인을 걸어놨다.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꼼수인데, 초음파가 생각보다 오래 걸리면 진료실 차례가 먼저 오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실제로 진료실 앞에는 ‘초음파를 하고 나서 도착확인을 누르세요라고 안내문이 붙어 있다. 다행히  경우에는  번도 그런 일은 없었다. 대개 초음파실 앞에서 이름이 불리고 들어가 질초음파를 위한 치마로 갈아입은 다음, 다시 약간의 대기가 있었기 때문에  갈아입으러 들어갈  즈음 진료실 도착확인을 누르면 되었다. 물론 그렇게 먼저 도착확인을 누른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초음파를 보고 나와서도 1시간 이상은 기다려 진료를 봤으니까.   , 20 정도만 기다린 적이 있었는데  이후로  이상의 요행은 없었다.

공장느낌은 수술실 앞에서 더하다. 수술실  대기실에는 수술 준비 , 수술 , 회복 중인 사람들의 명단이 역시나 가운데  처리가  채로 줄줄이 뜬다. 이식이나 난자 채취, 자궁경  다양한 이유로 수술실에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이름은 차례 차례 다음 순서로 넘어간다. 컨베이어 벨트가 연상된다.

C병원의 공장 같은 느낌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다. 아무래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는 느낌이 덜할 것이다. 심지어는 주치의도 일일이 담당 환자(라고 부르기엔  이상하지만) 파악하고 있지 못했으니까. 사람이 이렇게나 많으니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난임으로 유명한 다른 병원의 경우는 주치의가 담당하는 사람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요즘  상태는 어떤지,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는 말을 해주기도 한다고 한다. C병원이라도 의사에 따라 다르겠지만,  담당이었던 K교수님은 그런  없는 쿨한 분이었다.

C병원의 공장형 시스템을 알고 가서 그런지 개인적으론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다. 오히려 편한 부분도 있었다. 세심하게 신경써주면 물론 좋기야 하겠지만, 주치의를 제외한 간호사부터 안내 데스크까지 모든 직원이 친절했다. 가장 불친절한 사람은 수납처의 직원이었는데,  날을 제외하곤 그렇게 신경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공장형이고 나발이고, 결과만 좋으면 되었다. 병원에 따뜻한 인간미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리하여 8 3, 대망의 이식일이 되었다.  병원 방문으로부터 거의 3달만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