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식할 수 있는 배아는 몇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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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아 이식은 마취도 없고 금방 끝나기 때문에 금식도 필요없다. 물이나 음식을 참지 않아도 되는 건 좋은데, 이식 전에 물을 한 컵 마시고 이식 때까지 소변을 참으라는 특이한 지침이 있다. 방광이 꽉 차 있어야 잘 보인다나 뭐라나. 이것도 시술 의사의 성향에 따라 달라서 굳이 물을 마실 필요 없다는 사람도 간혹 있던데, 대부분은 물을 한 컵 마시고 기다렸다 이식을 받는 것 같다. 내 주치의인 K교수님은 방광이 빵빵한 걸 좋아하신다며 물을 충분히 마시라는 간호사의 안내...
물을 한 컵 마시고 혹시 모자랄까 싶어 물 한 잔을 더 부탁해 마셨더니 수술실 내 대기실에서 방광이 터질 듯한 지경에 이르렀다. 애초에 물도 많이 마시고 화장실도 많이 가는 편인데, 아무래도 조절에 실패한 모양. 그래도 ‘방광이 빵빵한 게 잘 보인다니까 조금만 참자’를 마음 속으로 외치며 수술실 내 대기장소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기다렸다.
수술실 내 대기실도 두 번째라고, 이제는 누가 채취를 하러 왔고 이식을 하러 왔는지가 보인다. 링거를 꽂고 있는 사람들은 채취. 나처럼 어딘가 홀가분하고 가벼운 차림이라면 이식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저 사람은 뭔데 링거도 안 맞고 그냥 앉아있다가 나보다도 빨리 들어가지’ 생각했었는데 배아 이식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배아 이식 대기자는 마취가 필요없어서인지 아무래도 대기 시간이 짧은 편이다.
마침내 수술대 위에 누웠다. 약간 어두컴컴컴한 수술실 안은 넓고 추웠다. 마취를 하지 않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식의 모든 과정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수술실 너머로 큰 유리창이 달린 방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배양실인지 뭔지 거기서 배아를 가져오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의 배아를 실수로 넣으면 안되니까 이름을 몇 번씩 불러서 확인한다.
누워서 잠시 기다리니까 오른쪽 모니터에 배아 사진이 떴다. 동글동글 예쁜 감자배아 두 개다. 5일배양 배아는 만 35세 미만의 경우 1회 1개 이식이 원칙이다. 만 35세 이상이면 2개를 이식할 수 있다. 3일 배양 배아는 만 35세를 기준으로 2개, 3개 이식이 가능하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정한 지침으로, 의외로 이 지침이 생긴지 오래되지 않아 4, 5년 전만 해도 원하는 사람은 배아를 두세개씩 넣어주고 했나 보다. 배아를 여러 개 넣으면 그만큼 다태임신의 확률도 높아진다. 배아가 모두 임신에 실패할 수도 있지만, 모두 성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태임신은 여러모로 위험하기도 하고, 쌍둥이면 몰라도 세 쌍둥이인 경우 하나를 강제로 떼어내버리기 때문에 윤리적인 문제도 있고, 그래서 그런 가이드라인이 생긴 듯하다(어디까지나 가이드라인이고 강제사항은 아니라서 나이 상관없이 원하는 만큼 이식해주는 병원도 있는 모양이다).
나는 7월 26일을 기점으로 만 35세가 되었기에 미리 얘기해서 배아를 2개 이식해 달라고 미리 요청해둔 상태였다. 생일이 안 지났으면 1개로 끝났을텐데, 생일 바로 다음 주가 이식이라니! 이건 운명이었다. 참고로 나는 믹 재거와 케빈 스페이시와 생일이 같다. 케빈 스페이시는 미투운동이 한창일 때 가해자로 지목돼 영화계에서 사라졌으니 내세울 만한 생일 동기는 믹 재거뿐이다. 역시 옛날 록스타는 최고다. 마약을 하든 무슨 기행을 하든 용인되던 때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한때 나는 다시 태어나면 록스타가 되고 싶었는데, 요즘 음악계를 보면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간다.
아무튼.
K교수님은 배아를 해동하는 과정에서 한 개는 상태가 나빠 폐기하고, 오늘 2개를 이식하면 이제 하나가 남는다고 알려줬다. 배아가 상급이라던가 그런 말은 없었다. 어떤 병원은 배아 사진을 주기도 한다는데, 여기는 그런 것도 없어서 그냥 눈에다 열심히 배아 생김새를 담았다.
아플까봐 잔뜩 긴장했다. 자궁경을 할 때 자궁입구가 휘어져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이식할 때 애를 먹을지도 모른다고 지레 겁을 먹은 것. 배아이식은 가느다란 관을 통해 배아를 자궁에 넣는데, 그래서 담당의사의 손기술(?)이 중요한 것 같다.
이식은 10분도 안 돼서 끝났다. 아프지도 않았다. 처음 질 입구를 벌릴 때 고정시키는 기구 같은 것이 조금 불편했지만, 몸 속에 뭐가 들어온 감각도 없이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현대의학기술은 최고다.
수술대에서 이동식 침대로 옮겨 눕는데 간호사들이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다뤄준다. 아마 난자 채취나 자궁경 때도 이렇게 침대로 옮겨졌겠지 생각했다. 침대에 누워 이동하는데 드라마에서 본 장면 같고 기분이 묘하다. 조금 재미있기까지 하다.
회복실은 지금까지 눈을 떴던 곳과는 조금 달라서 1.5배 정도 넓고 오른쪽 천장 가까이 텔레비전까지 달려있었다. 배아이식 후 평상시와 똑같이 생활했을 때 착상성공률이 더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지만, 차병원을 비롯한 난임병원들은 누워 있다 가기를 권장하는 듯. 화장실에 간다고 방금 이식한 배아가 변기 속으로 떨어지진 않겠지만, 화장실도 30분 이상은 기다렸다가 가라고 했다. 다행히 이식 전까지 터질 것 같았던 내 방광은 적응이 됐는지 별다른 신호가 없었다.
회복실에 누워 있는데 상태가 나빠 폐기된 배아 생각이 나서 좀 울었다. 지금도 그 배아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어찌 운 좋게 살아남았더라도 착상이나 임신에 성공하지는 못했을 배아겠지만은, 배아도 생명이기에 마음이 쓰이고 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참 심란한 마음을 달래고 났더니 급격하게 지루해져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근데 모니터가 오른쪽에 달려있어 나중에 목이 아팠다. 옆으로 돌아눕기도 좀 그렇고 해서 비스듬하게 누워 리모콘만 만지작거렸다. 평일 대낮, 재미있는 방송도 없었다. 대체 언제 보내주나 생각하며 채널을 돌리고 있는데 마침내 간호사가 들어와 주의사항을 설명해줬다. 아싸 집에 간다!
격렬한 운동, 탕 목욕을 피하고 열흘 후 내원. 간호사가 안내문에 적힌 내용을 친절히 밑줄과 별표까지 만들어가며 설명해줬다. 피해야 할 운동의 범주 내에 요가가 들어있길래 냉큼 물었다.
요가를 계속 해왔는데, 가벼운 요가 정도는 괜찮지요?
네 괜찮아요!
그렇게 요가를 허락받고 가뿐한 마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많이 참았다.
룰루랄라 옷을 갈아입고 나와 수납을 하고 약을 처방받았다. 그리고 엉덩이를 딱딱하게 만드는 공포의 ‘돌주사’, 슈게스트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