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아기를 준비하며 가장 아팠던 시술은?
10.
많은 사람들이 배아 이식 후 질정이나 주사약을 처방받는다. 이들 약의 주요성분은 프로게스테론인데, 자궁내막의 두께를 충분히 유지시켜 주고 자궁수축을 방지해 배아가 착상이 잘 되어 임신이 유지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질정은 말 그대로 질에 직접 넣어야 하는 약으로, 넣고 금방 움직이면 약이 충분히 흡수되지 않고 흘러나오기 때문에 질정을 넣은 다음에는 보통 30분 정도 누워있는다고 한다. 탐폰도 제대로 못 넣어 낑낑대는 나로서는 질정 대신 주사만 처방받고 싶었는데, 그 마음을 읽었는지 어쨌는지 K교수님은 주사만 처방해주셨다.
슈게스트, 이름하여 ‘돌주사’다.
슈게스트가 어째서 돌주사라는 별칭을 얻었냐면은, 맞은 부위가 돌처럼 딱딱하게 뭉치기 때문이다. 엉덩이에 맞는 주사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거르지 않고 매일 맞아야 하기에 좌우를 번갈아 맞는데, 잘 마사지해서 풀어주지 않으면 앉는 것도 힘들어진다. 게다가 피하지방에 놓기 때문에 부담없는(?) 배주사와는 달리 근육주사라 숙련된 전문가가 주사를 놔줘야한다. 주사를 잘못 놓았다가는 하반신 마비라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지만 슈게스트를 자가로 놓다가 하반신 마비가 왔다는 얘기는 물론 들어본 적이 없고, 어디까지나 최최최최악의 경우다.
보통은 다니는 난임병원이 멀 경우 집 근처 병원을 한 군데 뚫어놓고 주사만 맞으러 다니는데, 문제는 동네병원이 문을 닫는 일요일에도 주사를 맞으러 가야 하기 때문에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 매일 병원에 가야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집에서 직접 주사를 놓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다행히 강릉의 산부인과에서 주사를 놔주는데다, 공휴일이나 일요일에는 분만실로 방문하면 약간의 휴일 수당만 더하면 맞을 수 있었기 때문에 매일 병원으로 주사를 맞으러 다녔다. 응급실에 가면 주사 한 방을 맞는데도 만 원이 넘는다는데, 나는 삼천 원이 조금 넘는 돈으로 공휴일에도 주사를 맞을 수 있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각에 꼬박꼬박.
슈게스트는 이처럼 불편하고 맞을 때 아프고 단단하게 뭉치는 특징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꺼리지만, 반면 흡수가 잘되고 효과가 좋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다녔던 C병원에서는 귀동냥으로 들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질정을 처방받는 편이었고, 인터넷의 난임 시술 후기를 찾아봐도 슈게스트를 처방받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슈게스트는 프로게스테론 제재의 ‘끝판왕’ 같은 걸까? 나는 슈게스트만 받은 걸 보면 역시나 효과 빠른 템을 초반에 많이 먹여서 만렙 만들어 털어내려는 K교수님의 전략(?)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물론 이건 내 뇌피셜이다. 다른 문제가 없으니 착상 단계에 심혈을 기울이자..는 전략일 수도 있고. 아무튼.
매일 주사를 맞기 때문에 뭉치기 전에 풀어줘야 한다고 해서 다이소에서 산 3천원짜리 마사지 기구로 늘 엉덩이를 문질렀다. 꾸준히 해준 덕택인지 한 달이 다 되도록 ‘뭉치지도 않고 관리 잘 하셨네요’라는 소릴 들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우쭐한 나머지 마사지를 소홀히 해 딱딱하게 뭉치고 그랬다. 역시 사람은 방심하면 안된다. 6.25도 방심해서 났잖아요, 왜.
슈게스트는 주사액이 끈적해서 맞을 때 아픈 것도 특징이다. 별별 안 좋은 특징은 다 가지고 있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고 했던가. 이 고통은 간호사의 주사 솜씨에 반비례하는 것 같았는데, 같은 간호사라도 가끔은 아프기도 했다. 맞을 때 너무 아파서 ‘아’ 소리가 절로 나온 적도 있었는데, 그래도 이 모든 불편함과 고통은 나팔관 조영술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임신 준비부터 임신 기간 동안 많은 검사와 시술을 행했지만 아프기로는 나팔관 조영술이 킹왕짱이다. 자연임신을 했거나 인공수정을 쉽게 성공한 사람이라면 나팔관 조영술의 끔찍한 고통을 겪지 않는 행운을 누렸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는 ‘아픈 생리통 수준이다’는 사람도 있던데, 내 생애 배가 그렇게 아파본 적은 없었다. 게다가 나는 그 하기 싫은 나팔관 조영술을 무려 두 번이나 받았다. 처음은 강릉에서, 두 번째는 서울 C병원에서. 지금 생각해도 이가 갈린다. 그러므로 나팔관 조영술을 하기로 결심했다면 반드시 난임 시술을 받아서 이 고통을 두 번 받는 억울한 일은 없도록 하자.
나팔관 조영술에 대한 상세한 후기는 내 첫 에세이집 <결혼 10년차 아이는 없습니다만>에 생생히 기록되어 있으니 이쪽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C병원의 나팔관 조영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미 알고 있는 고통이니 좀 더 참기 쉽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명백한 오산이었다. 익숙해지는 고통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시간만 더 길게 느껴졌다. 이제 끝날 때 된 거 같은데 왜 안 끝나냐고요.
나팔관 조영술이 끝나고 넋이 나간 표정으로 주사실에 들어갔더니 간호사가 물었다.
왜 이렇게 힘이 없으세요.
나팔관..조영술... 받아서요...
아 네.. 그거 많이 아프죠...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