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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리 Apr 02. 2019

주말에 뭐해요?

결혼 10년차, 여전히 아이는 없습니다만

결혼을 하면 뭔가 크게 달라질 줄 알았다.
30대가 되면 인생이 많이 달라질 줄 알았다.

그런데 인생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았다.


결혼 10년차,

여전히 아이는 없습니다만.



3.
주말에 뭐해요?


주말에 무엇을 할 것인가.


이는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쉬는 보편적인 루틴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것이다. 특히 더 이상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없는 오래된 커플이나 가족, 혹은 어느 정도 안정된 직장생활을 영위하는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직장인인 경우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남들은 주말에 뭘 하는지 궁금해 한다. “주말에 뭐해요?” 이는 흔하게 받는 질문이자 흔하게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아이가 없는 10년차 부부의 주말은 오래된 커플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때는 색다른 액티비티를 해보려고 노력했다. 집 근처의 클라이밍 센터나 라운지 파티, 힙한 플리마켓 같은 곳을 찾아봤는데 찾아보기만 하고 가지는 않았다. 다음에, 다음 번에, 오늘은 말고, 언젠가는. 그 ‘언젠가’는 대부분 찾아오지 않았다.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 우리 둘은 일관되게 술과 음식을 좋아했고 누워있는 걸 좋아했다. 금요일 밤엔 술을 진탕 마셨고 가끔 클럽을 갔으며 토요일에는 집에서 골골 대며 숙취 해소로 라면을 끓여먹었다.


4년을 연애하고 결혼을 하고나서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한번은 행주산성 근처에 있는 유명한 국수집을 찾았다. 멸치육수가 베이스인 국수였는데, 엄청나게 많은 양으로 이름난 곳이었다. 보통 자전거로 몇 킬로미터씩 달리는 라이더들이 칼로리 보충을 위해 먹는 대용량 국수를 우리는 편하게 자동차를 타고 가서 먹었다. 그러고는 아무 구경도 않고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또 한번은 포천에 이동갈비를 먹으러 갔다. 주말이라 차가 막혀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정말로 갈비만 먹고 집에 갔다. 그 날은 추적추적 비도 내렸다. 되게 허무했는데 딱히 포천에서 하고 싶은 거나 보고 싶은 것도 없었다.


강릉에 가선 서핑을 배워보겠답시고 먼저 스케이트보드를 시작했다. 20만원 가량 하는 비싼 보드도 샀다. 매일 보드를 타러 나가서 실력이 제법 늘었다. 그러다 남편이 술 먹고 보드를 타다 넘어져 팔이 부러졌다. 당시엔 큰일난 거 아닌가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헛웃음만 나는 에피소드다. 아무튼 그 때 이후로 보드를 끊었다. 타야지 생각만 하기를 2년째다. 당시 샤워할 때 깁스한 부위에 물에 닿지 않도록 팔에 끼우는 커다란 비닐 같은 것도 샀었는데, 초대형 콘돔을 닮은 그것은 지금도 벽장 속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 다시 쓸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해외직구로 샀던 페니 보드는 기타와 함께 방구석 오브제로 전락했다.


겨울엔 스키를 배우겠다고 생각했는데, 나이 들어 어디 부러지면 잘 낫지도 않는다는 걸 핑계로 가지 않았다. 요즘 젊은 애들은 스키장도 잘 안 간다며? 스키장 이용객이 줄었대. 이렇게 ‘요즘 젊은 애들’ 코스프레를 하며 집에서 플스만 한다. 나이가 들면 스스로를 잘 알게 된다. 우리는 영락없는 집순이 집돌이다.


각자 따로 하고 싶은 걸 하는 커플도 많다. 우리도 어렸을 때는 모든 걸 함께 해야 했다. 음악 취향도 비교적 비슷해서 공연도 늘 같이 보러 갔는데 더 킬러스 공연을 기점으로 각자 알아서 원하는 공연을 보러 가게 됐다. 남편은 친구들과 드림시어터, 메탈리카를 보러 갔으며 나는 혼자 더 킬러스, MGMT, 이승열 등의 공연을 보러 갔다.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는 건 좋은 일이다. 괜히 상대방 취향에도 맞지 않는 영화나 공연을 데려가서 지루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 아, 그런데 BTS는 같이 보러 간다.


함께 할 수 있는 건 같이 하고, 각자 하고 싶은 건 각자 하며 보내는 주말이 좋다. 물론 혼자 하는 것보다는 둘이 함께 하는 게 더 재밌는 것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결혼해서 사는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 누군가와 술이 마시고 싶을 때, 동행이 필요할 때 연락처 목록을 뒤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말이랍시고 딱히 대단한 일을 해야하는 건 아니다. 꼭 인스타에 올리고 남들한테 자랑할만한 일을 할 필요는 없다. 4주 전 주말엔 그야말로 종일 잠만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다시 들어와서 다시 저녁 때까지 잤다. 부스스 일어나 저녁엔 떡볶이를 시켜먹었다. 지난 주도 감기에 걸려서 벚꽃을 보러 갔다가 입구에서 돌아왔다. 바람이 너무 거셌다. 


이번 주 주말엔, 또 뭘 할까?

<결혼 10년 차, 아이는 없습니다만>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주요 온라인 서점 및 전국 대형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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