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주의
추석에 대한 나의 기억은 어째 꺼내기가 두렵다.
두려움에 못이겨 그나마 꺼내 올린 단편기억들.
추석에는 할머니 집에 가서 제사를 지냈었다. 대략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중학교때부터는 우리집이 큰집이라 제사를 가져와서 우리집으로 친척들이 모였다.
숙모들이 분업해서 음식을 가져와서 제사를 도왔다. 나름대로 엄마를 돕는다고 했지만, 제대로 도운게 맞는지 걱정을 품고 살고있다.
친척들이 모이면 항상 교사인 고모부가 감놔라 배놔라를 (ㅎㅎ) 하셨다.
실질적인 의미도 되고, 함축적 의미도 되는 감놔라 배놔라였다.
추석이 바람처럼 지나가고 나면 엄마는 더 힘들어보이셨다.
친척들은 와서 엄마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을만한 말을 많이 했다.
이 집안에서 공부 잘하는 애가 나오는것이 신기하다는 등 무시하는 느낌으로 매해 말들을 하시다가,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름대로 좋은 곳에 진학하고 결국 교사가 되어 본인과 동일한 상황이 되고나서야 그런 대화가 멈췄다.
명절은 나한테 별로였다. 하고싶은 말은 많은데
엄마 아빠 체면 생각해서 참으려니 부아가 치미는 주간이었다.
심지어 제사 이후 설거지를 안하려고 여러 친척들이 서로 떠밀면서 눈치게임 하기도 했는데
그게 눈에 다 보여서 또 짜증이 치밀었다.
까짓거 엄마를 도와 나만 해도 다 하기야 하겠지만 태도가 보기 싫었다.
"일어나시는데 한 100년 걸리시나봐요." 라고 비꼬아주고 싶었지만
그건 싸가지가 없는 발언이라 눌러 담아 내 마음속에 버렸다.
어떤 사람들은 왜 잘알지도 못하면서 겉으로 드러난 소유물과 지위만을 보고 평가절하하고 존중없이 행동하는지 의아했었다. 하지만 나조차도 '잘알지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알기에 힘이 부쳐서' '하던대로 동일한 방식으로' '비겁해도 귀찮은 거 보다 낫지'로 일관하며 행동하는 경우가 많으니
역시 각자는 각자의 사정이 있는거다.
그리고 아직도 이렇게 시니컬함을 걷어내지 못하는 분야이기떄문에
글로 써내기가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다.
여러 영역의 시니컬함은, 깨지고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많이 희석되었는데
아직도 이주제는 나에게 시니컬함의 영역이다.
원래 이런 저런 순간들에서 힘들때 마다 늘 생각하는 문장이
모든 괴로움은 이기심에서 온다. 라는 문장이다.
어쩌면 지금 추석이라는 키워드로 시니컬하게 구는 이 감정들도
누군가들을 헤아리지 못했거나 큰 틀의 이해가 부족해서 일지도 모른다.
나의 어린시절 다친 감정에만 빠져서 분노하고 시니컬한 것인지도 모른다.
글쓰기 모임의 키워드 주제여서 부여잡고 써내려갔지만,
아직 나에게 더 성찰이 필요한 분야임에는 틀림없다.
그래도 추석엔 대부분 보름달이 뜬다.
그래서 매번 소원을 빌었다.
이번 추석에도 소원빌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