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보다 국어가 더 중요하다

수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가 03편

by 리나

나는 수학을 가르치는 강사이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 중에 가장 중요한 과목은 국어


라는 입장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뭔가, 이 글이 주제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매우 정상적인 독해력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제대로 글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선 밑밥을 깔아둬야 하기 때문에 일단 참고 들어주기 바란다.


학교에서 배우는 국어 과목에서 다루는 영역은 크게 2가지로 볼 수 있다. 바로 이해와 표현. 그리고 이 두가지가 이루어지는 방법이 음성인가, 텍스트(글)인가에 따라 다시 4가지로 나뉜다.


음성을 이해하는 것(듣기)

글을 이해하는 것(읽기)

음성으로 표현하는 것(말하기)

글로 표현하는 것(쓰기)


물론 이외에도 국어과목에서 다루는 부수적인 것들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위의 4가지를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국어이다. 이렇게 말하면,


아니,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를 못 하는 사람도 있습니까.
바보도 아니고.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저걸 잘 못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 하면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먹지 못 하는데, 이건 학교에서 실시하는 국어시험 점수와는 관계가 별로 없다. 수학능력시험에서 보는 국어영역 점수와는 어느 정도 연관이 있지만, 그것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요새는 국어영역도 제대로 글을 읽은 후에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스킬 위주로 문제를 푸는 사람이 많아서 읽기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어쨌든 이 4가지 능력 중에 읽기능력만이라도 좋은 사람은 다른 사람과 같은 글을 읽어도 그 안에서 더 많은 것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살면서 배우는 거의 모든 행위에서 우월할 수 밖에 없다. 학교 친구들 중에 종종 "쟤는 매일 노는 것 같은데, 공부를 잘 한다" 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면 대부분 이 케이스에 해당한다. 나머지 영역까지 다 좋은 사람이 있다면, 아마 후광이 보일지도 모른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그런데 학교에서 배우는 국어 과목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이 4가지의 기본능력을 익히는 힌트 정도는 제공해 줄 수 있긴 한데, 참으로 안타깝게도


학교에서 국어능력을 길러주는 것은 어렵다


내가 아이들을 관찰해 본 바로는 이 국어능력은 학교교육을 통해서 계발된다기 보다는, 이미 어렸을 때부터 갖고 있는 국어능력을 학교에서 평가해 주는 경우가 많다. 이는 대부분의 국어 학원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내가 지금까지 본 국어 선생님 중에서 이 국어능력을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가르치시는 분은 딱 한분 뵈었을 정도로 학교나 학원의 국어 커리큘럼에서 국어능력을 계발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듯 하다. 뭐, 시험점수가 목적이 되면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일들이긴 하니까, 에휴.


그렇기 때문에 수학능력시험의 국어영역을 대비하기 위해 국어 문제집을 열심히 풀어도 아이들의 국어능력은 그 성장속도가 느리거나 어느 시점 이후부터는 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내신 국어시험은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지식을 잘 습득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대부분이라, 문제집을 풀고 어느 정도 외우면 만점을 받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수학능력시험에서 보는 국어영역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읽기 능력 자체를 측정하기 때문에 그 능력 자체가 부족하면, 좋은 점수를 맞기가 어렵다. 그래서 스킬 위주의 국어가 만연해 있긴 하지만.




나는 20대의 절반 정도를 군대에서 보냈는데, 군대에 처음 들어가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것을 꼽자면, 복명복창과 관등성명을 대는 것 정도일까. 관등성명은 누가 자기를 부르면 계급과 이름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이병 ○○○" 이라거나, "중위 ○○○" 이라거나. 그런데 이게 습관이 안 되면, 누가 불렀을 때 "네?" 하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는, 뭐 그런 거다. 그리고 복명복창은 윗사람이 지시를 했을 때, 그 지시를 받은 아랫사람이 그 앞에서 그대로 반복해서 말하는 것이다. 내가 처음에 이등병으로 군대에 들어갔을 때는, 정말 왜 이렇게 쓸데없는 행위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 의외로 나는 어리버리해서 욕을 꽤나 많이 먹었으니까. 아, 혹시 나만 의외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가...


나중에는 습관적으로 어쩔 수 없이 잘 하긴 했지만, 이 복명복창 시스템의 중요성을 나는 군대에서 중위가 되었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이 복명복창이라고 하는 시스템의 목적은


윗사람이 말한 것을 아랫사람이 잘 이해했는가


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두둥!


당하는 입장에서 보았을 때 정말 불합리의 극치라고 보이는 이 복명복창을 안 하게 되었을 때, "설마 그런 일이 생기겠어" 싶은 일들이 정말로 생긴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군대에서 병, 장교 생활을 모두 해봤지만, 윗사람이 지시한 것을 아랫사람이 한번에 제대로 해오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 했다. 이렇게 얘기하는 나도 초반엔 이 혹독한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어리버리하다고 욕을 꽤 많이 먹었다, 에휴.




그런데 윗사람이 이러저러한 의도를 갖고 전달을 했는데, 아랫사람이 해온 결과물이 전혀 엉뚱한 결과물이 되는 상황이 과연 군대에서만 벌어지는 일들일까. 아마 수직관계가 존재하는 조직에서는 일상적으로 보는 상황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한번으로 그치면 다행인데, 이런 상황이 반복적으로 벌어진다면 윗사람과 아랫사람은 서로를 고문관이라고 욕하는 웃지 못 할 일들이 생긴다. 뭐, 보통은 아랫사람이 고문관으로 불리긴 하지만.


그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고문관이냐 하는 것도 재밌게 토론한 수 있는 주제이긴 하지만, 우리는 이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아랫사람이 일부러 배째려 하거나, 윗사람이 일부러 엿먹이려고 하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인가.


아랫사람의 일처리 능력에 심각하게 결격사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 두 사람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수렴할 것이다. 즉, 둘 중의 하나라는 말이다.


윗사람이 지시를 명확하게 내리지 못 했거나,
아랫사람이 지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 했거나.


일이 벌어진 이후에 욕은 욕대로 다 먹고, 그리고 뒤에서 욕을 바가지로 하는 것도 한두번이지, 매번 그런 일이 벌어지는데도 욕만 하면서 현실을 바꾸려 하지 않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뭐, 이렇게 멋지게 말하긴 하지만 나도 몇달 동안은 욕 참 많이 먹고 정신과 진료를 받고 싶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긴 하다.




내가 소심하고 숫기가 없는 성격이라, 윗사람에게 지시를 받았을 때 질문을 하는 것을 매우 어려워했다. 이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문화에서는 다 비슷할테지만. 그래서 처음에는 여러가지 지시사항이 내려왔을 때, 속으로 어어어 하다가 제대로 못 알아듣고 나와서


과장님이 뭐라고 말하셨더라, 이건가...


이러다가 내 마음대로 일해서 가져가서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내 기억력은 민달팽이 수준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 기억력을 믿어주지 못 하고, 다이어리라는 금단의 도구를 마련할 수 밖에 없었다. 과장님에게 지시사항을 들을 때, 서서 열심히 내용을 다이어리에 받아 적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읽기 능력에 비해서 듣기 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편이어서 다 받아적고 나와서 보면 단편단편은 기억 나는데 전체적인 의미를 이해 못 해서 일을 해가면 또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내 이해력은 닭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던 것 같다...


정말 여기서도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들이 존재하지만, 내가 어느 정도 환골탈태한 이후에 과장님에게 지시를 받을 때 다이어리라는 필수도구에 내용을 받아적는 것도 물론이지만, 지시사항대로 일을 처리했을 때 벌어지는 문제점들을 생각해 내서 과장님에게 다시 한번 여쭤보고 최종적으로는


과장님 앞에서 내가 이해한 내용을 그대로 다시 읊어드렸다


이건 내 스스로 복명복창을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대로 일을 처리하고 나니, 그 이후부터는 욕을 먹을 일이 없었다. 윗사람 스스로도 가끔씩 자기 의도를 자기가 모르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윗사람도 자기 의도를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어서 매우 유용한 방법이다.




그리고 내가 윗사람이 되었을 때에도 나는 속터지는 일을 매우 많이 겪어야 했다. 나는 당시 연대 교육장교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초반에는 나도, 내 계원들도 모두 어리버리해서 우리 연대의 교육업무는 점점 산으로 가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제대로 일을 처리해 오지 않는 내 계원들을 갈궈가면서 욕을 바가지로 했으나, 내가 복명복창의 유용함을 깨달은 이후엔 나의 계원들도 어쩌면 나처럼 소심하고 숫기가 없어서 질문을 못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시를 한 이후엔 반드시,


내 앞에서 바로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다시 읊도록 하였다.


그렇다고 뭐 소리 질러서 복명복창시킨 건 아니고, 대화하듯이 한 거다. 대화하듯이! 뭐, 나는 군대의 장교치고는 좀 날라리 같은 느낌이었던 지라, 내 계원들도 나를 무서워하지는 않았음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렇게 시킨 이유는, 윗사람으로서 최소한 내 지시사항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는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 처리능력이 딸려서 아랫사람이 못 해오는 건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전달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하지 못 하는 것은 내 책임이니까. 그리고 그 내용 중에서 내 의도와 다른 것이 있다면, 다시 고쳐주기도 하고. 이렇게 한다면 아랫사람의 능력이 부족하지 않은 이상 최소한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로 일을 그르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만약 회사에서 이렇게 읽기, 듣기, 쓰기, 말하기 능력이 모두 우수한 사람을 마주치게 된다면, 그 사람에게서 후광 효과를 느낄지도 모른다. 농담 아니라 정말로.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경우는,


윗사람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면서 일을 시키고
아랫사람은 이해도 못 했으면서 내 맘대로 일을 한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가장 필수적인 과목이 바로 국어라고 생각한다. 국어능력이 부족하면 업무적인 측면에서는 욕만 바가지로 먹으니까. 이건 다 경험담이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족


영어라는 과목도 언어이기 때문에 국어와 비슷한 측면이 있는데,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수학이 전혀 필요하지 않는 과목이 되어버리지만, 영어는 평생 공부해야 할 과목이 되어버린다. 아니, 이미 졸업 이후 시점에서는 과목이라고 부르기도 황송할 정도의 위상이 되어 버릴 정도로.


실제로 나도 대학교 입학하면서 수학책은 다 갖다 버렸지만, 영어는 합격자 발표 게시판 앞에서 합격자 확인하다가 무슨 CNN 영어잡지를 (사기 당해서) 월간 구독해 버릴 정도로 영어에는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 어디 회사에 들어가려고 해도 영어 토플이나 토익 점수는 필수적일 정도라서 영어는 평생교육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내가 수학을 가르치긴 하지만, 지구상에 인간이 공유하는 지식의 대부분이 영어로 기술된 것이 가장 많기 때문에 최신 지식이나 독특한 분야의 지식들은 영어를 모르면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영어를 몰라도 사실 죽을 때까지 별 문제 없을 것 같긴 하다.


국어, 영어, 수학을 제외한 다른 과목들, 보통 우리가 암기과목이라고 말하는 비주류 과목들은 인간의 기본적인 능력을 성장시키기 보다는 지식의 습득에 그 목적이 있다. 그렇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 그 과목을 통해서 기본능력을 향상시키는 경우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건드리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실제로 역사라는 과목을 좋아해서 역사를 공부할 때 관련 그림을 그려가면서 자신의 방법을 만들어가는 학생을 본 적이 있어서, 아예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과목 자체가 그것을 직접적으로 유도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걘 뭘 해도 성공하겠지, 아마.

keyword
이전 03화내가 찾아낸, 수학을 공부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