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가 04편
자, 그렇다면 수학이라는 과목은 어떠한가. (헥헥, 드디어 수학이네)
첫번째로 내가 얻은 능력은 추론능력이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별명이 책벌레였을 정도로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책 읽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밥을 먹을 때도 밥상에서 밥과 반찬을 전부 바닥에 내려놓고 옆에 책을 두고 보면서 책을 먹거나, 길을 걸어가면서도 책을 읽을 정도였으니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속독을 익혔고, 그것이 속독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대충 초등학교 3학년 때 였던가. 이렇게 나의 자랑으로 시작한 이유는, 내 읽기 능력이 초등학교 시절에도 상당히 수준급에 이르렀다는 말을 하고자 함이다.
당시의 내 기억에 따르면 당시 소년 월간지였던 "소년중앙"이나 "새소년" 혹은 "보물섬" 등에 지금의 멘사 추리퍼즐과 같은 문제들이 자주 실리곤 했는데, 나는 그걸 읽는 것도 꽤나 좋아했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퍼즐을 푸는 것을 즐겼다기 보다는, 문제를 읽고 상황을 이해하고, 조금 고민하다가 그냥 바로 답을 보고 "아하,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구나" 라며 지식 습득을 즐겼던 것 같다.
나는 책을 읽는 것을 매우 좋아했던 반면에, 머리를 쓰는 것을 매우 싫어했던 편이다. 머리를 쓴다는 말이 조금 광범위하게 들릴 수 있을텐데, 구체적으로 예시를 들어보자면, 오목이나 바둑 같은 것의 규칙은 알되 실제로 두면 이기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고 표현하면 좋을래나. 즉, 내 머리는 이해라는 측면에서는 남들보다 우수했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것은 전혀 훈련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려고 하면 머리가 복잡해져서 금방 때려치게 되더라.
그리고 나는 분석적인 사고에는 재능이 없다. 사람들이 내가 수학강사라는 말을 들으면, 뭔가 생활 속에서 돈 계산 같은 것을 할 때 내가 엄청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나는 보험영업이나 은행에서 "이 상품이 이율이 어떻고 저떻고" 얘기를 듣고 있으면 그냥 멍하니 보고만 있을 정도로 그런 쪽엔 재능이 없다. 보통 와이프가 그런 계산에 밝아서 다 따져보고 "이게 이득인 것 같아" 라고 말하면 나는 그냥 따라가는 편이니까. 나는 상황이 그렇게 복잡해 지게 되면 "어허허" 하고 웃는 편이다. 그래야 좀 뭔가 신비스러우면서도 덜 멍청해 보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하.
이렇게 머리 쓰는 것을 싫어했던 내가 수학을 공부한지 몇년차 되던 어느 날 아침에 한 통의 전화를 받고 헉 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나의 아버지는 그 당시에 잦은 법정싸움을 하셨고, 법무사보다 내가 더 당신의 의도를 잘 표현해서 글을 써준다는 이유로 그 싸움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 그런 일이 당시에 워낙 많아서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 아침에 전화를 받고 상대와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통화 도중에 그 사람이 말하지 않았던 전체적인 상황이 번개처럼 머리 속에 그려진 것이다, 두둥!
너무나 한순간에 벌어진 깨달음이라 나의 내면에서 어떤 과정으로 그것이 가능했는지 그 당시에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에 와서 추측해 보자면 추론능력, 즉 미루어 짐작하는 능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든 것에 대한 정보가 정확하게 주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원하는 정보가 없는 일도 많을 뿐더러, 힘겹게 얻어낸 정보 자체가 틀린 경우도 꽤 많지 않나. 그러한 경우에도 우리는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는데, 추론을 통한 상황파악이 가능하다면 정보가 부족할 때 다른 정보들을 이용하여 상황을 재구성한다던가, 잘못된 정보가 있을 때 다른 정보들과의 연관관계를 이용하여 잘못된 정보를 수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내가 만약 수학을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모든 것이 다 이어지는 듯한 그 느낌을 아마 평생 모르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나는 지금까지 내가 겪어왔던 많은 일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 했을 거다. 왜냐하면 전체적인 상황파악이 안 된다면, 내 앞에 보이는 조건만으로만 선택해야 한다면, 대부분은 잘못된 결과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뭐, 선택의 무서움을 알고 싶다면, 게임 "위쳐 3" 의 "피의 남작" 퀘스트를 해보길 권한다. 하아, 뭘해도 수렁.
그리고,
두번째로 내가 얻은 능력은 문제해결력이다.
앞에서도 말했던 바와 같이, 수학을 제대로 공부하기 이전의 나는 국어적인 능력은 준수한 편이었으나, 무언가를 해내는 힘은 매우 부족했었다.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쓰려고 하면, 머리가 복잡하게 헝클어져서 "에이, 좋은 게 좋은 거지" 라고 타협해 가며 조금 손해보는 것이 잘 하는 것이라고 도인 코스프레를 했었다. 그렇다. 무언가를 해결해낼 능력이 없는 사람은 그에 따른 손해를 봐야만 한다.
한때, 나는 요가수행자로서 남들과 그런 이익적인 부분에서 싸우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며, "내가 조금 손해를 보면 되지" 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그렇게 살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어떤 경우에는 그런 것을 이용해 먹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상처를 많이 받기도 했다. 그렇게 손해보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성향은 치열하게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의 습관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때문에 나는 인생에서 몇번 정도 뒤통수를 거하게 맞으며 눈물을 흘리며 "이제 호구가 되지 말자"고 결심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어쨌든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우 많은 문제들에 부딪히게 된다. 이것은 수학문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간의 우정문제일 수도 있고, 이성친구와 사이가 좋아질 방법이 없을까 같은 문제일 수도 있고, 단기간에 시험을 잘 봐야 하는 문제일 수도 있고, 부모님과의 트러블에 관한 문제일 수도 있다.
그때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을 하고, 그에 따라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 속에서 현명하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경우의 비율이 더 많아진다면, 아마 우리는 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이 말은 반대로 말하자면, 인생의 문제들을 제대로 된 고민없이 선택한다면 우리 인생은 점점 더 불행해질 것이라는 말이다. 바로 예전의 나처럼.
그런데, 이렇게 문제해결력이라고 이름을 붙여놓으니까 사람들이 문제해결력을
문제를 마술처럼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이라고 추상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뭐, 사실 10년전쯤엔 나도 그랬었지만. 문제해결력이 이런 것이라고 이해를 하게 되면 어떠한 모순에 처하게 되는데, 인류역사상 많은 수학자들 중에 천재 같은 사람이 많긴 했지만, 그리고 실제로 수학자들 중에 머리가 나쁜 사람이 거의 없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학자들이 모든 문제들을 다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년이 걸리거나, 혹은 평생을 들여도 해결하지 못 하는 문제들도 존재하니까. 그래서 문제해결력이라는 것을 추상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본질을 잘못 볼 수 있다.
실제로 수학자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을 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운 좋게 해결되는 문제들이 있을 뿐이지, 문제해결력이 좋다고 해서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것은 아니니까. 이렇게 생각한다면, 문제해결력이라고 하는 것은 그 단어의 의미보다 오히려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능력"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을 하는 것은 인생에서도 매우 중요한데, 그 과정에서 뇌에서 사고하는 능력이 계발되므로 머리가 좋아진다. 사람들이 보통 "머리가 좋으니까 공부를 잘 한다" 고 표현하는데, 이는 인과관계가 바뀐 표현이다. 정확한 표현은 "공부를 함으로써 머리가 좋아지는 것"이다. 정말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잘 하는 것일뿐이라면, 사람은 태어난 머리대로 살다가 죽으면 된다. 계발가능성이 없다면 우리는 뭐하러 공부를 해야 하는 걸까.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 중에 문제해결력을 계발하는데 직접적으로 연관된 과목은 수학이 유일하다. 다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수학교육방식은 시험이라는 것에 모든 것이 맞쳐줘 있기 때문에,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모두가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푸는 것에 대부분의 노력을 쏟아붓는 경향이 있다. 뭐, 이러한 잘못된 노력들이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잘 한다" 라는 말이 참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30대가 중반이 되어서야 수학을 다시 처음부터 공부했고, 올바른 방식으로 공부했을 때, 내가 머리를 쓰는 방식이 좋아졌음을 느꼈다. 물론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수학적인 지식, 예를 들어 방정식이나 함수가 내 인생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않았지만, 그 지식을 퍼즐의 규칙처럼 사용하여 고민하는 연습을 하는 것은 나를 좀 더 현명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아이들이
수학, 이거 왜 공부해야 하나요.
사는데 쓸모도 없는데
라고 물어볼 때, 수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심플하게 대답해 준다.
사기 안 당하려고.
...
너무 심플하게 요약한 것 같기는 하다. (어느 정도는 진심이긴 하지만.)
수학을 제대로 공부한다면, 아이들은 반드시 머리가 좋아진다. 그러나 수학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푸는 연습은 머리를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에게 생각 자체를 하지 않도록 만들어서 점점 머리를 굳어버리게 만든다. 생각해 보라. 어떤 사람이 한시간에 수학문제를 40~50문제를 풀었다는 말은 한문제 푸는데 1분 정도 밖에 안 걸렸다는 의미이고, 이렇게 풀기 위해선 문제를 읽은 후에 고민할 시간이 없이 바로 풀이에 들어가서 답을 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해야만 수학을 잘 한다고 칭찬을 받는다면, 아이들의 머리는 계발이 아니라 점점 퇴화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수학을 공부하는 목적에 맞지 않게 공부하는, 수학공부에 실패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