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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Jul 20. 2023

열여덟, 국내일주

전국 방방곡곡 구석구석

스물 하나


정처 없이 스무 다섯 나라를 떠돌았다.


옛말에 열다섯이면 지학(志學)이라 학문에 뜻을 두고, 스물이면 약관(弱冠)이라 관례를 한다던데, 뒤돌아봐 내 삶의 자취를 보고 있노라면, 그 흔적이 너무도 희미해 저녁놀 지는 몽돌해변에 남겨진 족적 같아 허무하기 그지없다.


멀쩡한 몸 하나 어찌 건사 중인 내가 가진 것이라곤 알량한 고등학교 졸업장 한 장뿐...



역마살이라도 낀 걸까. 아직 살(煞)을 논하기엔 젊지만, 결과가 있으면 원인도 으레 있는 법이고, 자갈밭을 이리저리 거닐며 돌을 헤집어 보면, 내 방랑벽의 근원이라 짐작되는 돌무더기 하나에 눈이 간다.


3년 전 다니던 고등학교는 고향집 부산에서 멀리도 떨어져 있어 주말이면 홀로 기숙사에 남아 잠으로 시간을 때우는 일이 잦았다.


서울대 합격생 최다배출 고교, 아이비리그 진학의 명패에 청춘을 갈아 넣은 생존의 대가 천 명이 눈을 붙이던 기숙사 건물 두 개 동. 그 기숙사 두 동은 콘크리트로 지어져 숨구멍이 없었다.



몇 주, 몇 달을 버틴 뒤, 삐걱대는 버스에서 몸을 뒤척이며 대여섯 시간을 내려가면, 집에 도착했다. 반가움도 잠시, 쏟아져 나오는 성적에 대한 질문들, 은연중에 묻어 나오는 기대와 무언의 압박들.


예전의 소소한 일상은 온 데 간 데 없고, 1등을 곧잘 하던 장남에 대한 비틀린 기대만 남아있던 집에는 더 이상 '아들'이 설 자리가 없었다.


학생이 설 자리는 차고도 넘쳤지만…


숨구멍이 없기는 마찬가지인 집을 떠나 다시 돌아갈 곳은 학교뿐. 3년 내내 어딜 가도 숨이 턱턱 막혀왔다.


금토일, 3일의 짧은 휴식을 뒤로하고, 하숙객은 황망함에 젖어 있을 새도 없이 학교로 돌아가기를 여러 번.



2년을 참았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되니 자퇴가 간절했다.



그러나 학생의 본분은 학교를 다니는 것이기에, 아무도 없는 주말이면 가끔 고요한 기숙사 방에 누워, 혹은 의자에 앉아 멍하니 스탠드를 보고 있다가 몸을 대충 씻고 학교 밖으로 도망 나갔다.


그렇게 3년을 버티고 학생을 졸업했다.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 무엇인가 달라질 거라는 기대가 무색하게도, 막상 졸업한 난 백수였고, 잠깐 일을 했으나 그마저도 코로나로 오래가지 못했다.



온 나라가 격리를 외치기 전, 마음 맞는 친구들과 잠시 다녀온 대만과 일본 여행의 추억은 나를 차츰 갉아먹었고, 이내 떠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자, 영어 학원에서 강사 생활을 하며 모은 돈을 탈탈 털어 7월, 친구와 국내여행을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차에 얹혀 발길 닿는 대로 3주를 돌아다니는 여정.



서울에서 이틀을 보낸 뒤 차에 타, 해물탕을 먹겠다며 안양으로 떠나고, 서해안의 일몰이 보고파 꽃지 해수욕장으로 차를 끌었다.



정갈한 공산성의 미에 이끌려 이끌려 낮과 밤 같은 장소를 두어 번 찾아보기도 했고,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적 가족과 찾아갔던 전주의 한옥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묵기도 했다.


먹기도 무지하게 먹었다.



서해안의 게국지를 시작으로



대전, 전주, 광주, 여수를 찾아 각 지역 유명 음식을 맛보고



해안가를 쭉 돌며 해물도 원 없이 먹었다.



비 내리는 날 보성 녹차밭에서 먹었던 아이스크림은 달았고,



뙤약볕 아래 골프 카트에 앉아 바라본 안동의 하늘은 푸르렀다.



그럼에도 밤의 적막이 찾아와 침대에 가만히 누워 생각하면,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허망했다.


3주 간의 국내여행을 하며 체감한 것이라곤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참으로도 닮아있구나 하는 것이었기에.


음식은 그리도 다르면서 어찌 살아가는 모습은 그리도 비슷한지.


모두가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마감 시간을 5분 남기고 들어온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급히 상을 치우던 아주머니와 한적한 평일 오후, 기념품을 팔기 위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호객행위를 하던 장사꾼이 그려내는 삶의 궤적은 우악스럽고 절실했다.


여행하는 내내 우리의 시계는 멈춰 있었고 세상은 다른 박자에 맞춰 앞으로 또 앞으로 떠나갔다. 언젠가 그 잃어버린 시간을 벌충할 것을 종용하는 듯 달음박질해 떠나버렸다.



세상이 저만치 앞서나가 고요한 밤이면, 하나의 목적지로 귀결되는 달음박질의 의미에 대해 서로에게 질문했다.


그러나 답이란 게 있을 리가 만무했고, 있더라도 그 답을 우리가 찾아낼 가능성은 전무했기에, 그 모든 것을 눈에  담고 새겼다.


3주 간의 도피는 탈주에 대한 갈망을 해소시키기는커녕 강화시켰고, 해외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은 나날이 커져갔다.


일곱 살, 부모님 손을 잡고 봤던 뉴욕의 마천루와 미국 특유의 Crystal Clear 한 하늘, 자유의 횃불이 나를 계속 부르고 있었기에...


그러나 세상 일이란 본디 계획대로 굴러가지 않는 법이고, 단절의 전염병이 전 세계를 뒤덮은 상황 속에서 내게 남겨진 유일한 길은 입대.


그렇게 계획도 없이 무작정 입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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