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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Jul 16. 2023

사기당했다.

100 달러 공중분해.

2023. 5. 3 ~ 5. 4: Day 5~ 6,


짧다면 짧았던 작은 어촌 마을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과테말라로 가는 비행기를 잡아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30도가 넘어가는 뙤약볕 아래, 예약했던 셔틀은 외부인의 출입을 엄금하는 호텔로 올 것을 종용했고, 30분에 걸친 호텔 관리인과의 대화, 30분의 방황, 그리고 열악해진 전화 연결 환경으로 인해 셔틀을 탈 수 없었던 나는, 결국 택시비로 100달러를 지불한 후 산토 도밍고에 위치한 라스 아메리카스 국제공항(Las Américas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했다.


무엇이 잘못됐던 걸까. 돌이켜 봐도 모르겠다. (참고로 투어 회사는 Nexus다. 공항에서 가는 건 괜찮지만, 그 반대는... 이용하지 않을 것을 추천한다.)


우선 Bookaway라는 나름 인지도 있는 플랫폼을 통해 예약을 진행했다. 또한, 공항에서 동네로 넘어가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에 별달리 걱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조트나 성급이 높은 호텔의 경우, 외부인의 출입을 엄금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전화로 두 차례나 확인도 거쳤다. 굳이 따지자면 호텔 측에 직접 문의하지 않은 게 잘못이려나...


< 흙길을 30분 걸어가니 호텔이 나왔다. >


여권을 보여주고, 신분이 확실하게 입증되면, 호텔에 도착해 셔틀을 기다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에 찬 그 목소리에 기댄 내가 멍청했던 걸까.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하루 전 잘만 연결되던 고객센터의 응대원은 예정된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연결이 끊기거나 다른 곳으로 연결해 주겠다는 말을 여러 번 해댔고, 결국 시간이 다 된 이후로는 그마저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왓츠앱을 통해 사정을 설명하고 환불을 요청하는 문자를 넣었으나 씹혔고, 그전까지 잘만 받던 전화는 받지도 않았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 힐튼 라 로마나 >


한편으론 웃긴 상황이기도 했다. 저기 저 펜스 너머 호텔 안쪽에서는 대기 중인 운전기사는 나타나지 않는 고객 욕을 한참이나 해대고 있을 것 아닐 텐가... 며칠 전 이동할 때 운전기사 분께서 고객을 태워야 돈을 받는 체계라고 설명했던 게 기억이 나 헛웃음이 나왔다.


사기가 별 건가. 된다고 몇 번이나 얘기해서 사람 안심시키고 뒤통수 거하게 치는 게 사기지.


우버로 공항까지는 140불... 결국 호텔 앞을 지키고 있는 관리인에게 사정을 설명한 후 셔틀을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120 달러를 부르는 기사와 흥정 끝에 20 달러를 깎고 공항으로.


길었던 흥정과는 별개로, 셔틀 기사 분께도 땡볕에 녹아내리고 있는 내 모습이 어지간히 측은했던 것 같다. 물 한 통을 어디서 구해다 주셨으니.


어쩌면 어설픈 스페인어에 손짓 발짓까지 해가며 용을 쓰고 있던, 이미 비포장 도로의 모래 먼지를 뒤집어써 머리는 헝클어질 대로 망가져 있던, 대화가 끊길 때면 당장이라도 주저앉아 욕을 한 바가지 퍼부울 듯 전투적으로 짝다리를 짚고 있던 내 모습이 영 불량하면서도 안쓰럽지 않았나 추정해 본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 익숙한 풍경. 공항에서 노숙하는 자만이 볼 수 있는 각도 >


그렇게 공항에 도착해 남은 돈으로 도나쓰 몇 개를 주워 먹고, 팔걸이 없는 의자에 드러누웠다.


비참하고 서럽고를 다 떠나 화가 났고, 그보다 더 어이가 없었다. 책임질 상황이 되면 어떻게든 회피하려고 하는 건 국가 불문하고 다 비슷하구나 싶으면서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내 잘못이라는 생각과 당장 사무실이든 어디든 찾아가 한 번 엎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10달러면 모를까. 교훈의 대가로 100 달러는 너무 비싸지 않은가.


나중에 어디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잔을 기울일 때면, "인생 첫 사기당한 썰 푼다."라고 말하며, 안줏거리로 때우기에도 비싼 100 달러 (100달러면 술을 한 턱 돌리지.)


행색이 남루한 거지 꼴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배낭여행자의 범주에는 포함될 수 있었던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며 내가 어딜 봐서 호텔에 위협을 끼치게 생겼나 하는 자조적인 질문을 던지다가도 


숙박비를 아끼려 에어비앤비를 잡았으니 결국 돈이 문제였던 것인가 하는 부질없는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이내 난...


다 때려치우고 자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T다. 극단적인 현실주의는 유용하다.)


< 내려간다. >


그래서 잤고 일어났다.


출국 심사를 마치고 면세점을 지나치니, "100달러면 위스키 한 병을 살 텐데." 하는 무용한 생각이 다시금 나를 찾아왔고 


< 야구 저지 >


되지도 않는 야구 저지 구경을 하며 주의를 분산시켜 보려다, "100달러면 저지를 하나 살 텐데" 하는 의미 없는 생각이 다시금 찾아와


벤치에서 잠을 청했다.


< 처음 들어보는 항공사 >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과테말라로 넘어가기 위해 선택한 항공사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아라젯 (Arajet)이라는 항공사였다. 100 달러로 비행기 티켓은 못 사니 다행이었다.


< 연착은 없었다. >


여하튼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내려 출발 1시간 전까지 계속 잠을 청했다.


< 일출 >


일어나 아름다운 일출을 보니 결국은 울적했던 기분이 조금이나마 나아졌고,


< 보잉 737 맥스 >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좌석 간격이 넓다. >


여타 저가 항공사와 다르게 좌석 간격이 상당히 널찍해서 좋았다.


< 나중에 찾아보니 한국 정부가 공항 관련 지원을 많이 해줘서 그렇다나. 이럴 땐 조국이 자랑스럽다. >


3시간을 날아 과테말라에 도착하니 정말 뜬금없이 한국어 표지판이 나를 맞이했다.


< 써야 할 게 많다. >


유심을 구매하고 입국장 밖으로 나가 친구를 기다렸다. 


긴 하루. 날아간 100 달러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 돈을 아끼기 위해 공항에서 자면서도 결국은 돈을 더 쓴 우스웠던 여행의 한 페이지가 그렇게 빼곡히 적혀 넘어갔다. 




공항 관련 팁: 


1. 과테말라 라 아우로라 국제공항의 경우, 유심으로 Claro와 Tico를 판매하며, 둘 중에서는 Claro가 더 커버리지가 좋다. (느낌상 시골에서는 Tico가 더 잘 터졌지만...)


2. 2023년 기준 2층 입국장에 있는 은행에서의 환전은 불가능하다. Cambio는 사기 수준이기에 스스로 호구임을 인증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목적지로 이동한 후 ATM에서 뽑는 게 맞다. 


3. 주요 도시로의 셔틀에는 일괄적으로 요금이 적용되고, 달러로 결제가 가능하다. 입국장을 나오면 바로 셔틀 창구가 있으며, 안티구아의 경우, 셔틀은 20 달러, 택시는 40 ~ 50 달러 선이다. 셔틀은 매시 출발하며 다만 밤에는 운행하지 않는다. 셔틀이든 택시든 밤에 타면 위험하다. 


4. 버스 이동은 치안 문제로 추천하지 않는다.


5. 원칙적으로 과테말라 시티 라 아우로라 국제공항은 공항 노숙을 허용하지 않는다. (쫓겨났다는 사람도 있고 잤다는 사람도 있다.) 비행기가 새벽 일찍이 출발하는 경우에 한해서 공항 노숙이 허용된다. 과테말라 시티의 치안은 중남미 전역에서도 악명이 높기에, 당초 비행기를 예매함에 있어 셔틀을 이용하기 용이한 시간으로 예매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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