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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Jul 03. 2023

공항노숙 완벽정복

보다 편안한 노숙을 위한 팁 다섯 가지

당분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이 무색하게도 텅 빈 통장 잔고로 인해 또 하룻밤을 런던 개트윅 공항에서 보내게 됐다.


6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공항에서 10일을 노숙하며 체득한 팁을 공유한다.


공항노숙 일지:

2022.12.20: 에콰도르 키토

2023.01.06: 미국 플로리다

2023.03.22: 미국 플로리다

2023.03.23: 니카라과 마나과

2023.03.26: 니카라과 마나과

2023.04.14: 미국 디트로이트

2023.04.22: 미국 클리블랜드

2023.04.28: 미국 애틀랜타

2023.05.03: 도미니카공화국 산토 도밍고

2023.06.30: 영국 런던


여행을 다녀온 후 지출 내역을 정리하다 보면 자연스레 발견하게 되는 사실이 있다.


< 절반이다. 절반 !!! >


교통비가 최소한 여행 경비의 절반을 잡아먹는다는 것.


호스텔에서 밤을 보내기 시작한 이후로 숙박비는 갈수록 줄고 있고, 식사는 경험의 일환이기에 포기할 수 없는 측면이 존재하는 반면 (예를 들어, 평상시 맥주를 즐겨 마심에도 뮌헨에서의 1L 맥주 한 잔이 비싸다며 마시지 않겠다면 뮌헨을 여행하는 의미가 있을까?),


< 아우구스티너 켈러, 1L가 최소 주문단위 >


교통, 그중에서도 특히 비행기에 지출하는 비용은 시간 혹은 체력과 교환해 줄이는 게 상책이다.


대륙을 오가는 장거리 비행의 경우, 경유 횟수를 늘리고, 국가 혹은 지역 간 단거리 비행의 경우, 출발 시간대를 조절하는 등 여러 방법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도 비행기에 타지 않으려는 시간대에 탑승해 비용을 절약함에 있어 가장 적합한 방법은 공항 노숙이다. (숙박비도 절약되니 일석이조.)


돈이 있다면, 시간이 없다면, 체력이 없다면, 결코 추천하지 않는 경험이나, 젊은 날, 생활력을 한 번 길러보는 측면에서 시도해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공항노숙 팁:



1. 일단 알아보고 가자.


공항에서 노숙함에 있어 당연해서 간과되는 측면이 있으며,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도 지레짐작해 큰 낭패를 볼 수 있는 사실이 무엇일까?


바로 일부 공항은 노숙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항 규모가 작거나 밤 비행기가 없는 공항의 경우, 당연히 밤 시간대에 공항을 폐쇄하기에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적으나


새벽 도착 승객의 노숙은 허용해도, 원칙적으로는 공항 노숙을 허용하지 않는 공항도 존재한다.


< 과테말라 국제공항 >


만일, 공항 노숙 가능 여부가 불확실할 경우에는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우선은 비용. 당일 공항에 찾아가 노숙이 불가능함을 알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숙박비가 상당하다면, 일찍 공항 근처에 숙소를 끊고, 숙소에서 잠을 청하는 게 맞다.


그리고 치안. 공항에서 나와 대부분의 숙소가 밀집돼 있는 시내로 가는 길이 위험하거나, 도시 자체가 위험할 경우,


무엇보다 먼저, 돈을 아낀답시고 되지도 않는 시간대의 비행 편을 예약할 것이 아니라, 오전 혹은 오후에 도착하는 비행 편을 예약하고, 비교적 안전한 지역으로 넘어가야 한다.


공항 노숙에 비용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공항이 안전하기에 공항에서 노숙할 수 있다는 점, 달리 말하자면 낯선 여행지에서 위험에 자신을 자처해 노출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 사전 조사가 부실하면 게이트 밖에서 밤을 보내야 한다. >


추가적으로, 공항이 24시간 개방돼 있더라도, 비행기가 매시 매분 출발하는 대형 허브 공항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공항들은 보안검색대를 오후 9시 정도에 폐쇄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


출국장 밖에 눈을 붙일 곳이 있다면 상관없으나 아닌 경우,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여담: 과테말라시티의 라 아우로라 국제공항의 경우, 잤다는 사람도 있고 쫓겨났다는 사람도 있어 노숙 가능 여부 자체가 불확실하다.)



2. 식당을 확인하자.


눈물 젖은 초코파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눈물 젖은 감자칩을 먹는 일은 미연에 방지하자.


< KBS 뉴스 화면 캡처 >

24시간 동안 열려있는 편의점. 24시간 국밥집 등은 한국만의 문화, 넓게 쳐줘도 동북아에서만 관찰되는 문화다.


일례로, 영국 런던 개트윅 공항에 입점해 있는 셰이크쉑 버거는 오후 7시에 영업을 종료한다. (돈 벌 생각이 없는 건지 인건비 감당이 안 되는 건지…)


공항 노숙은 시작부터 인간에게 3대 욕구 중 2개를 포기하도록 강요한다 (성욕은 당연하고, 수면욕 역시 수면의 질이 워낙에 떨어지기에). 여기에 식욕까지 포기하게 될 때 느끼는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감자칩이라도 사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지, 그마저도 없으면 쫄쫄 굶은 채 비행기에 타야 하고, 목적지의 공항 주변 물가가 살인적이라면 공복은 연장된다.


공항 노숙을 할 요량이라면, 식당을 꼭 찾아보고 가자.


< 평점 높은 식당들은 일찍 문을 닫는다. >


우선, 먹을 만한 게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하는데, 일례로, 미국 공항 내 식당들은 (패스트푸드 체인은 그나마 낫다) 3.5 정도의 처참한 구글 리뷰를 드러내기에, 이 경우 간단한 요깃거리를 챙겨가는 게 낫다.


식당이 보안심사대를 거쳐 있는지 아니면 푸드코트가 따로 존재하는지, 대형 허브 공항의 경우 어떤 터미널에 위치해 있는지를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영업시간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으레 24시간씩 영업하는 패스트푸드 체인점들도 공항에서는 다른 영업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 먹을 게 없다면 공항으로 배달음식을 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격언은 공항 노숙에도 해당된다. 일찍 가 끼니도 때우고 좋은 자리를 선점하자.



3. 구글 지도를 활용하자.


인터넷 리뷰를 보는 것도 좋지만, 공항 노숙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인류애의 상징인 팔걸이 없는 의자다.


그리고 인류애의 흔적을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은 공항에 대한 구글 리뷰, 특히 구글 지도의 사진들을 확인하는 것이다.


영업을 종료한 식당 외부에 누울 수 있는 쿠션 형태의 의자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주어지는 선택지는 1. 팔걸이의자 2. 팔걸이 없는 의자 3. 바닥 3가지.


< 런던 히드로 공항 구글 리뷰 사진. 군데군데 누울 수 있는 의자가 있다. >


이 중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은 팔걸이의자다.


앉아 자는 것과 누워 자는 것의 차이가 다음 날 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조금 더러워도 바닥이 낫다. (돌바닥이면 얘기가 약간 다를 수도 있다. 이 경우 바닥의 냉기에 맞서기 위해 미리 재킷을 챙겨간다. 후술 하겠지만 재킷 모자가 크면 더 좋다.) 이불은 부피 때문에 비추다.)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미리 확인하고, 정보가 충분치 않다면 영어로 후기를 검색해 보자.



4. 충전은 어디서?


분명 중요하지만, 별달리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요소.


충전이다.


우선은, 충전 포트를 찾느라 공항을 헤매기보다는 일단 보조배터리를 챙길 것을 권유한다.


대형 허브 공항의 경우, 보안 심사를 거치고 나면, 앉아서 각종 전자기기를 충전할 수 있는 장소가 따로 마련돼 있으나, 대부분의 공항은 이러한 장소가 달리 없다.


위치와 관련된 팁으로는 화분이 놓여있는 기둥의 옆면을 잘 살펴보거나  본인이 청소기를 돌린다고 가정했을 때의 이상적인 포트 위치를 생각하는 방법이 있으나, 사실, 충전 포트를 찾는 일은 복불복에 가깝다.


정 배터리가 급하면 화장실을 뒤져 보거나, 인포 데스크에 양해를 구하는 게 답이다.


또한, 누군가가 자리를 선점했다면 가서 정중히 물어보자. 밤새 충전을 하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기에, 몇 분 혹은 몇십 분 내로 자리를 비워주겠다는 답변을 들을 수도 있다.


묻는 걸로 손해 보는 건 없다.



5. 이것만은 꼭 챙기자.


우선, 이미 떨어져 버릴 대로 떨어진 수면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여행자에게 필요한 준비물은 딱 두 개다.


바로 귀마개안대. 부피도 별로 차지하지 않기에 정말로 유용한 준비물이라 할 수 있다. (귀마개와 안대를 넣을 공간이 없다면 짐을 잘못 싼 거다.)


빛과 소음을 차단함으로써 수면의 질을 높여주는 게 위 두 준비물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지만, 공항 노숙에 있어서는 선택지를 넓혀준다는 장점을 지닌다.


귀마개와 안대를 챙기면, 선택지가 늘어난다.


머리 뉘일 곳을 찾기 위해 공항을 배회하다 보면, 분명 자기엔 괜찮아 ‘보이는데’ 아무도 선호하지 않는 자리들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가서 누워보면 빛이 너무 밝거나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제대로 잠을 청할 수 없는 곳인 경우가 많다.


이때 선택지를 넓혀주는 게 귀마개와 안대.


< 걸기 편한 줄 있는 귀마개가 낫다. >


플로리다 포트로더데일 공항의 경우, 출국장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옆에 카펫이 깔린 격리된 공간이 있다. 격리되었다 함은 다른 사람들이 굳이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공간을 말하고, 이는 수하물을 끌어안고 자지 않아도 도난을 우려할 필요가 없음을 의미한다. 유일한 문제는 에스컬레이터 옆이라 소음이 심했다는 것. 물론 귀마개를 끼고 커다란 모자로 눈을 가린 내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수면과 관련해 필수적인 준비물이 두 개라면 후술 할 준비물은 도난 방지를 위해 필요하다.


일단 캐리어는 논외. 캐리어를 훔쳐가려는 미친 사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왜 캐리어를 훔치겠는가…


< 휴대폰 도난방지 줄, 자물쇠 >


다이소에서 파는 가방용 자물쇠휴대폰 도난방지 줄을 추천한다.


가방용 자물쇠는 말 그대로 가방을 잠그기 위해 필요하다.


다만 지퍼가 한 방향으로만 열리는 가방 혹은 지퍼가 없는 가방은 당연히 해당사항이 없고, 자물쇠를 사용할 수 없는 가방 혹은 고가의 가방을 챙겼을 경우에는 공항 노숙을 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휴대폰 도난방지 줄은 공항 노숙에서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여행을 함에 있어 여러모로 유용하다. (손목에 팔찌처럼 줄을 두르고 휴대폰을 쥐고 걸어 다니면 소매치기 우려는 안 해도 된다고나 할까.)


공항 노숙 시에는 ‘줄’에 초점을 맞춰 사용하면 된다. 자물쇠 고리 사이의 공간으로 줄을 집어넣은 후 꺼내 줄을 손목 혹은 목에 두르고, 휴대폰을 재킷 안주머니 등에 넣어놓으면 되는데, 줄이 충분히 길다면 캐리어까지 연결할 수도 있다. 누군가가 가방을 들고 가려고 한다면 줄에 바로 느낌이 오기에 도난 방지에 최적화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 묶고, 또 묶고 >


마지막으로, 달리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람을 조심하자. 공항이 분명 공공장소 중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기는 하나 어딜 가도 미친 사람 한둘은 있는 법이고, 그렇기에 늘 안전(나 자신, 일행, 그리고 짐)을 최우선순위에 놓고 선택을 내려야 한다.


또한 여행지에서의 피곤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항 노숙 전날에는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한다.




요약하자면,


공항에 노숙할 일이 있을 시,


1. 공항과 식당에 대해 알아본 후,

2. 귀마개, 안대, 자물쇠, 휴대폰 도난방지 줄을 챙기고,

3. 도착해 충전 포트의 위치와 잘 만한 곳을 확인한 후,

4. 안전장치를 해놓고 잠을 청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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