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낮술, 마데이라에서의 와인 한 잔
배덕감이다.
퇴근 후 혹은 그저 일상의 찌든 때가 묻어난, 시장 골목의 포장마차에서 마시는 달디 단 소주도 아닌,
잔을 사선으로 기울여 또르륵 흘러내리는 검붉은 와인이 유려한 곡선과 만나 고아하게 떨어질 때의 기대에 한 잔,
창밖 한산한 거리 풍경을 눈에 담으며,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다른 이들과 달리 일탈의 유혹에 넘어갔다는 배덕감을 오롯이 누리며 또 한 잔,
그렇게 꿀꺽꿀꺽, 가끔 안주 한 두어 개를 곁들이며,
낮술이라는 행위를 소화해 낸다.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카프리의 노부부에게,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려 비어가든을 찾은 뮌헨의 회사원에게 (비즈니스였을까, 꽉 조인 타이와 세련된 정장으로 신분을 유추할 뿐, 확실한 건 없고, 사실 중요한 건 낮에 술을 마시러 왔다는 행위 그 자체이다.),
잠시 가게를 닫은 채 안온한 점심 햇살을 즐기고 있는 마데이라의 식당 주인에게, 낮술은 낮술이 아닌 술로써 존재한다.
늦은 저녁 해산물과 페어링 할 화이트와인 한 잔.
짭조름한 부어스트, 그 느끼함을 잡아주는 시큼한 자우어크라우트,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깔끔하게 목을 타고 내려갈 시원한 아우구스티너 켈러 한 잔.
얼음 반 물 반, 역한 알코올이 치고 올라오다가도 금세 가라앉아 과일의 단내만이 남아 쉬이 취하는 퐁차(Poncha) 칵테일 한 잔.
유럽인의 일상에 이미 술은 깊이도 자리 잡아 낮술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진다.
반면, 내가 나고 자란 각박한 한국은 토요일 오전, 금요일의 숙취를 달래기 위함이 아니고서야, 해가 중천인 오전 11시 뭉그적 일어나, 슬리퍼를 질질 끌고 국밥집을 찾아가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을 비우며, 해장술이라는 해괴망측한 명목 아래 한 잔을 더 걸치는 게 아니고서야. 낮술을 할 일이 없어,
나는 머나먼 유럽 땅에 와서도
일상으로서의 음주라는, 아직은 낯선 그 문화를 받아들이는 대신,
저녁이 아닌 시간대의 모든 음주 행위를 낮술로 일컫고,
무거운 와인 한 잔에 녹아낸 일탈의 가벼움을 들이켠다.
오늘 마신 마데이라 와인은
낮에 술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줄 만큼 강하면서도
그 사실에 취할 수 있도록 달아 좋았다.
한 잔, 두 잔, 술이 들어가고, 와인이 찰박이기 시작하면,
두 잔, 한 잔, 술이 줄어가고, 눈꺼풀이 감겨오기 시작하면,
나는 파티오의 소파에 몸을 기댄 후 마지막 남은 피스타치오 몇 조각을 입으로 밀어 넣다,
따스한 볕을 받으며 스르르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