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드 Sep 01. 2023

룩셈부르크 당일치기

가볍게 산뜻하게

2023. 08. 20:


통상, 1,000 제곱 킬로미터 미만의 영토와 50만 명 이하의 인구, 두 조건을 만족시키는 나라를 미소국가(Microstates)라 칭한다.


국제사회의 공인을 받은 경우, states가 붙고, 공인을 받지 못한 경우, nation이 붙는데,


유럽에서 위 기준을 완벽히 충족하는 국가는 바티칸 시국, 모나코, 산 마리노, 리히텐슈타인, 몰타, 안도라, 총 6개국이며,


그 외에 룩셈부르크 역시 미소국가로 분류되곤 한다.


면적 2,500 제곱 킬로미터, 인구 64만 명으로, 인구 50만을 돌파한 게 지난 2009년의 일이니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 싶으면서도,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엔 여전히 작기는 작아 애매한 경계에 걸쳐 있는 상태랄까.


바티칸, 몰타(몰타가 미소국가로 분류된다는 사실은 지금에서야 알았다.)에 이어 세 번째로 찾게 된 룩셈부르크.


프랑스 북동부 메츠(Metz, 원어 발음은 메쓰)에 위치한 분교에서 1년을 보내게 된 내가 룩셈부르크를 다녀와야겠다 생각한 이유는 단순히 가까워서, 그리고 교통이 싸서였다. 거기에 베네룩스 중 유일하게 가보지 못한 국가니 한 번쯤은 다녀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메츠 시내로부터 차로 1시간 30분, 기차로 50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 데다, 버스/기차 티켓이 왕복 20유로 수준이었으니 잠시 짬을 내 당일치기로 다녀오기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만 물가 자체는 1인당 GDP 세계 1위 국가답게 살인적이었기에, 점심 및 저녁은 기숙사에서 해결하기로 결정한 후 여권, 물통, 보조배터리를 챙겨 길을 떠났다.



라면 한 그릇으로 점심을 갈음한 뒤 눈에 들어온 오전 11시 메츠의 하늘은 화창했고,



40분가량 달렸을까, 아무런 예고도 없이 국경을 넘었다. 끊긴 휴대폰 데이터만이 국경을 넘었음을 암시했을 뿐, 도시 경관이나 풍경은 전혀 달라지지 않아, 국경을 넘었다는 이질감이 전무했다.


슬로바키아에서 오스트리아로 넘어갈 당시에는 국경에서 여권을 꼼꼼히 확인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여기는 애당초 독일, 프랑스, 벨기에와 접경하다 보니 그런 절차 역시 과감히 생략했던 걸까.


국경을 넘은 버스는 잠시 근처 휴게소에 정차했고,


이탈리아인 정도는 아니더라도 바삐 움직이는 한국인과는 다른 시간대에 살아가는 프랑스인들은 예정된 버스 출반시간보다 늦게 도착했다.



대중교통이 무료인 룩셈부르크. 자전거 대여 역시 6시간 동안 2유로(3,000원) 수준으로 매우 저렴하지만 조금 더 도시의 정취를 느끼고파 걸었다.


다만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식당에서 물 한 병에 11유로를 냈다 하니, 저렴한 건 교통뿐...



공원 한복판에 양봉틀이 왜 있는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아돌프 다리(Pont Adolphe)가 한눈에 들어오는 첫 번째 포인트에 다다랐다.


아기자기한 도시를 배경으로 가끔 트램이 지나다니는 모습이 예쁘긴 하지만, 아름답다 할 수준까지는 아니었고, 맑은 하늘의 이점도 누렸기에 객관적으로 괜찮은 지점이라 평가하긴 어렵겠지만, 적당히 나무 그림자 아래 산책하기는 좋은 코스였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지난 3개월 간 유럽을 돌아다니며 모든 도시 경관이 비슷해 보이는 지경에 다다른 나 자신의 문제일 터이다.



다리 아래 그늘에서 운동하는 사람을 지나쳐 다리 내부를 잠시 둘러봤다. 차량이 다니지 않음에도 아스팔트가 깔려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다리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법을 검색하니 정원 같은 공간으로 가도록 길이 안내되었는데, 막상 가보니 막다른 골목... 구글맵은 고저를 고려하지 않는 것인지.


정원은 예뻤으니 됐다만,


다시 다리를 끼고돌아 올라갔다.



처음 마주한 룩셈부르크의 인상은 평화로운 도시라는 것.


소매치기라고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깔끔한 경관에,

화창한 일요일을 즐기러 나온 주민들과 고개 돌리며 걷는 관광객의 무리가 조화롭게 어울려,


분주하지만 그렇다 한들 시끄럽지는 않은.



날이 더워 분수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사이에 눈치 없이 껴 몸에 물을 조금 끼얹었다.



그랜드 두칼 궁전(Palais Grand-Ducal).


대부분의 명소가 걸어서 30분 내에 있다는 것도 작은 도시의 특색이자 장점이라면 장점일 터.


프라하 틴 성당(Tynsky Chram)과 유사한 지붕 장식 아래 베이지 색의 룩셈부르크 사암으로 뼈대를 세워 축조한 궁전은 베르사유처럼 과시적이지도, 윈저처럼 내부를 꽁꽁 싸매지도 않은 채, 도시 복판에 소심하게 자리하고 있어 위화감이 전혀 없었다.



군중에 이끌려 성당에 잠시 들어갔다, 룩셈부르크에 온 목적이었던 복 포대(Bock Casemates)와 그룬트(Grunt) 마을로 향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으며, 누군가가 룩셈부르크 여행을 결정함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그 풍경을 눈에 담기 위해...



오가는 길에 마주한 투어 정보 간판. 99유로라니.. 처음엔 9.9유로를 잘못 읽었나 싶었지만 아니었고, 다시 한번 체감하게 되는 살인적인 룩셈부르크의 물가. 실제로 식당 간판 메뉴를 보더라도 주로 가격이 10유로 후반 20유로 초반 대에 형성돼 있다.



좌측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예뻤지만,



우측에서 바라본 마을의 전경은 아름다웠다.



복 포대 입장료는 학생 12유로, 성인 14유로로 비싸지는 않았으나, 요새 도시로서 룩셈부르크의 역사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기에 과감히 생략했다.



뒤에서 바라본 노트르담 성당. 흔히들 노트르담 하면 파리에 위치한 노트르담 대성당이 제일 유명하지만, 사실 노트르담은 프랑스어로 Our Lady, 즉 성모 마리아를 뜻한다. 타버린 파리의 대성당은 과거에 봤고, 샤르트르의 노트르담도 이미 봤으며, 3개월 동안 성당은 질리도록 봤기에, 전혀 가고픈 마음이 들지 않았다.



공원이 깔끔하게 조성돼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스케이트 보드 기술을 연마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영문 모르게 공원을 산책하는 관광객의 모습.


삶의 질이 높을 수밖에 없는 도시라고나 할까. 스위스의 자연은 없지만 그럼에도 평화롭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우선적으로 주는 도시.



유럽을 둘러다니다 보면 시들한 파이브 가이즈의 인기에 놀라게 된다.


미국에서는 비싸서 그렇지, 애호가 층이 존재하고, 한국에서는 1호점에 사람들이 줄까지 서는 진풍경이 펼쳐진 반면,


유럽에서의 - 적어도 내가 본 - 파이브 가이즈 매장은 늘 한산했다. 맛은 별 차이가 없었는데, 단지 가격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20유로면 맛없을 리가 없는 음식을 즐길 수 있고, 하물며 독일과 벨기에라면 근사한 맥주 한 잔과 안주거리를 기대할 수 있기에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땅콩이 아무런 매력을 가지지 못하는 것일 터이다.


시원한 게 당겨,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는 기존의 다짐을 벗어던지고, 맥도널드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었다. 파리 날리던 파이브 가이즈와 달리 맥도널드는 사람으로 붐볐다.


아무런 의미는 없지만 버거에 대한 내 가설을 증명해 냈다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아이스트림을 녹여 먹었다.



더 이상 볼 게 없다는 판단이 서자, 메츠로 향하는 기차를 잡아타기 위해 룩셈부르크 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실제 풍경보다 많이 과장된 모자이크 장식이 포인트.



발권 기계가 역 입구 기준 우측 휴게실 안쪽으로 들어가야 나와서 하마터면 발권 수수료 7유로를 물 뻔했으나 친절한 직원의 도움으로 무사히 티켓을 발권했고,



그렇게 몇 시간의 짧은 방문을 뒤로하고 메츠로 돌아갔다.




아주 짧은 시간만을 있었기에 한 국가를 제대로 알아갈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마찬가지로 몇 시간만 머물렀던 부다페스트와 브라티슬라바에서의 경험을 생각하면, 여타 유럽 도시들에 비해서 룩셈부르크는 어떠한 뚜렷한 매력이 없는 도시 같기도 하다.


흔히 보이는 청록색의 첩탑, 궁전의 지붕 양식, 반듯한 도시 구획. 요새 도시라는 점이 조금 특이할 뿐, 그 이상의 매력은 없는 작은 국가. 그럼에도 독일, 프랑스, 벨기에를 거칠 일이 있다면, 하루 정도 도시에 스며든 평화로움에 몸을 맡긴 채 휴식을 취하고 싶다면, 방문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도시가 아닐까.


예쁨과 아름다움 사이의 애매한 경계에 있는 룩셈부르크는 적어도 내게 예쁜 도시에 가까웠다.


어느 유럽의 소도시든 나름의 특색을 갖고 있기 마련이고, 굳이 끼니에 20유로를 지불해 가며 휴식을 취해야 할 이유도 없기에,


파아란 하늘 아래 반들거리는 룩셈부르크 사암의 매력이, 아기자기한 마을의 아름다움이 예쁨으로 밖에 다가오지 않는다면 "굳이?"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도시.


공항을 이용하기 위해서 분명 빈번히 찾겠지만, 어쩌면 이번의 방문이 여행으로써는 마지막이라는 확신을 가진 채 그렇게 룩셈부르크로부터 돌아왔다.



작가의 이전글 낮술 예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