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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Aug 15. 2023

유럽의 서쪽 끝으로

아조레스, 마데이라

여러 제()에 섬 도() 자를 써서 제도(諸島).


사이판이 위치한 북마리아나, 진화론의 발상지인 갈라파고스,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완성시켰던 핏케언부터 유럽 대표 휴양지인 카나리아까지.


무수히도 많은 제도들을 들어봤고, 사이판과 갈라파고스는 가보기도 했지만, 아조레스와 마데이라는 너무도 생경해 21년을 살며 들어본 기억이 없다.


지난겨울, 푸에르토리코, 에콰도르, 코스타리카를 거쳐, 봄의 바하마와 니카라과를 뒤로 하고, 여름으로의 건널목에서 도미니카 공화국과 과테말라를 찾은 후 유럽 대륙으로 건너와 어쩌다 다다른 유럽의 서쪽 끝.


덴마크에 사시는 고모 내외를 찾아뵈었을 때에도, 여름학기를 마친 후의 계획에 대해 부모님께 설명드릴 때에도, 바다 건너 걸려온 고향 부산 친구들과 일상사를 주거니 받거니 할 때도, 간만의 휴가를 맞아 아조레스로 떠난다 말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거기가 어디니?", "안전하니? (유럽에서 가장 안전한 곳 중 하나임에도)", "넌 갈수록 내가 모르는 곳들로 여행 다니는 것 같다." 정도였으니, 그 낯섦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존재조차 몰랐던 섬으로 >


구글 지도를 켜본들, 모로코 근처를 확대하면 쉽사리 눈에 잡히는 카나리아 제도처럼 보이는 것도 아닌 두 제도를 가게 된 것은 순전히 내가 수많은 시간을 인스타그램에 허비했기 때문으로,


간혹 가다 보이는 "This isn't Switzerland, this isn't indonesia, this isn't spain. It's (스위스도, 인도네시아도, 스페인도 아닌 어디)"라는 식의 광고성 게시물 속 마데이라의 마력에 홀려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가을 학기에 맞춰 비행기 일정을 재조정하고, 프랑스 가을학기를 위한 비자 발급 때문에 예정도 없던 미국에 다녀오는 등 부침이 많았지만, 어찌어찌 리스본행 비행기가 출발하는 8월 5일 무사히 영국에서 비행기를 잡아타고 아조레스로 넘어가게 되었다


짧은 시간 속에 일정을 욱여넣으며 지내온 그간의 배낭여행들과는 또 다른 휴가를 위한, 쉼을 위한 여행.


< 기숙사에 밤이 내려앉는다 >


그림 같았던 옥스퍼드 기숙사에서의 생활, 그리고 1년 간의 미국 생활을 뒤로하고 기내용 캐리어 하나, 책가방 하나로 단출하게 떠나는 여행.


그렇게 유럽의 서쪽 끝으로 다시 한번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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