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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Aug 16. 2023

떠난다는 것

이별

자라남에 따라 더욱 빈번히, 잊을 만하면 에서 툭하면 의 수준으로,


으레 일상적이라 부를 만큼 자주 마주하게 되었지만, 이별의 순간에 드는 감정은, 무언가를 떠나보낸다는 것,


내가 다시 한번 떠나간다는 사실 그 자체는 여전히 쉬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번의 떠나옴은 짧았지만, 기억이 피워낸 향취는 더 농밀했기에, '아쉽다' 한 단어로 얼버무리기에는 따스하게 짙은 두 달이었기에, 그리움의 잔향이 더 짙게 남아 시큰히 코 끝을 간질인다.


< LA 벤추라 >

삭막하다 못해 황량한 연애사는 차치하고, 단순히 '이별'이라는 단어를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이다.


경제적 지원에 충실했던 아버지와 달리 전형적인 한국형 어머니의 모습을 간직하셨던 어머니의 등쌀에, 그리고 학원 내에서 가장 촉망받는 인재였던 나를 향한 학원 원장 선생님의 강력한 지원에 힘입어, 한 달 동안 미국 땅을 밟게 되었다.


존스홉킨스(Johns Hopkins) 대학교에서 주최하는 영재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육체적으로는 여물어도 정신적으론 설익었던 난 첫 1주일 동안 부모님과 매일 같이 통화하며 질질 짰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볼썽사나운데, 이런 나를 견뎌내 준 당시 룸메이트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당시엔 제대로 된 휴대폰도 없었고, 가진 것이라고는 너무 정직해서 문제인 전자사전뿐이었기에, Cramp라는 단어를 몰라 수영 강습 첫째 날에 I have a rat in my leg라며 지랄을 해댔던 창피한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결국 영어도 한국어도 못하게 된 내가,


둘째 날, 한영사전에 쥐를 검색하며 rat과 mouse의 검색 결과에 분통을 터뜨렸던 기억은 덤. 부끄러워 부모님과의 통화에서 물어보지도 못했기에, '경련'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건 며칠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학교와 학원에서 배우던 영어와 미국에 난데없이 떨어져 사용하게 된 생존형 영어는 판이하게 달랐고, 덕분에 이제는 spasm과 cramp라는 단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지만, 언어의 어려움으로부터 비롯된 적응에서의 난관으로, 집이 그리웠던 나날들이었다.


어린 나이와 되지도 않는 영어를 핑계로 미비된 서류와 함께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하고, 어릴 때부터 유학을 꿈꿨음에도 난생처음 장기간 홀로 떨어져 맞는 밤에 울었던 기억들.



처음 미국에 갔다 한국에 돌아오는 길에는 Maroon 5의 Beautiful Goodbye를, 고등학교에서의 기숙사 생활을 마친 후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Avicii의 Wake Me Up을 들었고, 1년 반의 군 생활 후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Oasis의 Live Forever를 들었다.


나름의 의식이랄까.


미국으로 떠나고, 다시 유럽으로 떠나고, 유럽에서 다시 그 서쪽 끝으로 떠난 지금은,


떠남, 이별에 대한 감흥이 덜해, 더 이상 노래를 듣거나, 글을 쓰는 등 특별한 의식을 치르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잔향은 은은해졌을 뿐 사라지지는 않아, 방문을 열고 나가기 전 잠시 멍하니 서서 그간의 궤적을 반추하곤 한다.



2개월이라는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50명의 친구들과 여름 학기의 일환으로 유럽을 여행하며, 예술사와 음악사를 공부했다. 다시 오지 않을 젊은 날의 특권임을 알기에 더욱 소중했던 시간들.


옥스퍼드 대학교 맨스필드(Mansfield) 단과대학에 머물며, 수업을 잠시 듣고, 몰타, 키프로스, 불가리아, 에든버러, 아일랜드를 여행했다. 지중해의 태양, 희미한 라키의 단내와 음침한 영국의 잿빛 잔재들.


중간에 비자 문제를 처리하려 미국에 돌아가 어릴 적부터 알던 신부님과 10일 정도 함께 또 시간을 보낸 후 옥스퍼드로 돌아와 친구들과 짧은 시간을 함께 하다 결국 그들을 미국으로 떠나보내고, 난 다시 유럽에 남게, 유럽으로 떠나게 되었다.


< 마지막 아침 >


영문 모를 불안함과 이해 못 할 기대감에 밤을 새웠다.


시차 적응이 덜 됐노라 변명할 수 있지만,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날에, 나도 떠나보내지고 떠나가는 그날엔 쉬이 흘려보낼 수 없는 적막함이, 아쉬움이, 한 발 앞선 그리움이, 불확실함과 그에 따른 불안감이 티베트 향처럼 자욱이 방을 메워, 어지러이 떠도는 그 매캐한 연기에 잠을 청할 수도, 정신을 차릴 수도 없다.


저녁의 맥주 한 잔, 와인 한 잔만이 약간의 불안감을 덜어줄 뿐.


새벽 5시 짐을 싸는 친구들의 분주함이, 이른 아침 식사 홀에서의 어색한 차분함이, 그리고 버스 앞의 부조리한 소란이, 이번엔 나만 떠나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시야는 흐릿한데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한 정신으로 밤을 새웠다.


오전 8시, 버스는 여행의 동반자들을 실은 채로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떠나갔고, 나는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 떠나간다. >


오전 9시, 델타 5999편이 취소돼 친구들은 영국에서 하루 이틀을 더 보내게 되었다.


오전 10시, 난 기숙사를 나서 개트윅 공항으로의 비행기를 잡아탔고, 프랑스 파리 오를리 공항에 도착해 리스본으로, 그리고 아조레스 폰타 델가다(PDL)로의 비행기를 탔다.


< 옥스퍼드 시내 벤치에 앉아 TESCO 아침을 >


결국 떠난 건 나 혼자. 홀로. 다시.


이제 난 경유가 포함된 비행기를 선호한다.


홀로, 단번에 떠나오는 대신,


첫 비행기에 아쉬움을 실어 떠나보내고, 떨쳐 버리고, 연이어 오는 비행기에 기대를 실어 타고 떠난다.


< CDG보다는 나은 ORY >


밝은 조명과 그 아래 앉아 졸던 여행자의 대비가 극명했던 오를리 공항의 적막함과, 오지 않을 떠나간 젊은 날의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을 살아갈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과, 뿌연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보안검색대 직원의 분주함과, 이륙 후 부서져 내릴 어린아이의 차분함과, 여행이라는 도피에서 비롯된 부조리한 게이트 앞의 소란이 나를 감싸오고,


< 토하는 게 좋을 리가 없지. >


다시금 나는 카메라를 꺼내 들어,


비행기 창문 옆 풍경을 찍고는



듣지도 알지도 못한 아조레스 제도로의,


2023년도의 35번째 비행이,


방황이,


다를 바 없다며,


아름다울 것이라며,


나를 속이곤, 속아 넘어간다.


그렇게 다시 한번 떠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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