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cate Wildlife Rescue Center
2023. 1. 4: Day 20,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와 코스타리카 수도 산호세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스카이스캐너에서 검색할 때 도무지 도움이 되지 않는 같은 이름이 떠오르는 게 당연지사지만, 여행자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면, 두 도시 모두가 심각하게 재미가 없는 도시라는 점이겠다.
미국 산호세는 가보지 않았다만, 실리콘밸리의 핵심인 도시가 재미있을 리가 만무하고 (공학도기에 그냥 근거 없이 까련다), 구글에 Things to do in San Jose라 치면 차로 2시간 30분 거리의 국립공원과 되지도 않는 박물관 여럿이 나오는, 현지인조차 관광을 말리는, 나무위키의 한 줄짜리 '수도이지만 관광자원은 빈약하다."로 설명되는 산호세들.
중남미 여행에 있어 산호세는 국토 25%가 국립공원인 코스타리카를 둘러보기 위한, 인 앤 아웃을 위한 경유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나마 갈 곳은 차로 1시간 거리의 포아스 화산(Volcan Poas) 정도. 다만 포아스 화산은 전날 방문했기에, 더 이상 갈 곳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할 것 없는 도시에 낙오된 나로서는, 며칠 후면 개강을 앞둔 나로서는, 그 어떠한 것도 200명 들이 강의실에서 진행될 물리 강의보다는 나을 것이 뻔했기에, 인터넷을 쥐 잡듯 뒤졌고, 결국 알라후엘라(Alajuela)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레스카드 야생동물 구조 센터(Rescate Wildlife Rescue Center)를 레나와 함께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Rescate 역시 구조라는 뜻이기에, 무슨 센터 이름이 구조 야생동물 구조 센터인가는 싶었지만, 의문은 잠시 접어두고 아침을 간단히 먹은 후 길을 떠났다.
코스타리카의 살인적인 물가를 실감케 하는 입장료 35달러를 내고 센터에 입장했다.
어찌 됐든 돈이 누군가의 주머니 속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닌 동물 보호에 사용될 것이기에 쾌척하는 기분으로 냈다.
좌측을 따라 한 바퀴 돌아가는 구조로 설계돼 있는 센터는 기존에 동물원으로 사용되다 용도 변경을 거쳐 현재의 구조 센터가 되었다고 한다.
호스텔에서 루이스한테 듣기로는 시급도 괜찮게 주고, 무엇보다도 평상시 가까이할 기회가 없는 동물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이점 덕분에 상당히 인기가 많은 자원봉사 장소 중 하나라고 한다. (봉사지만 간단히 돈은 챙겨주는 것 같다.)
물가라도 싸면 모를까, 벨리즈 정도를 제외한 중남미 국가에서 가장 높은 관광 물가를 자랑하는 코스타리카는 국립공원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관광객의 돈을 '갈취'해가는데, 한편으로는 이해는 가면서도, 자원봉사자에게 돈을 줘야 할 정도로 물가가 높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입장 게이트를 통과했다.
입구에서 마주치는 것은 적당히 회복된 앵무새들이다.
날개를 적당히 회복해 오래 비행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가지 저 가지는 옮겨 다닐 수 있는 녀석들.
퍼런 놈들은 귀여웠는데, 그 옆에서 삐딱하게 날 쳐다보던 붉은 녀석 하나 때문에 괜히 열이 뻗쳤다.
뭔가 재수 없다. 눈은 왜 흘기는지. 내가 뭘 잘못했다고.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찔린다.
이름은 잘 모르지만, 정말 다양한 조류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부엉이 세 마리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란...
가끔 길을 가다 보면 성큼성큼 돌아다니는 이구아나들을 볼 수 있다.
한국이라면 철창 안에 가둬놓겠지만, 여기는 그런 게 없다고나 할까.
번식 철을 맞아 예민해진 녀석들은 몸을 한껏 부풀리고는 큰 녀석이 작은 녀석을 쫓아다니는데 대부분 싸움의 결과는 과시적이며, 일방적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구아나 공원도 있다 하니, 관광자원으로서 자연의 가치, 그리고 그 자연을 보호하기 위한 당국과 국민들의 노력이 센터를 배회하는 이구아나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것 같아 괜스레 흐뭇했다.
투칸이라고도 불리는 왕부리새.
레스카트 야생동물 구조센터의 전신인 주에브(Zooave) 구조센터에서 지난 2015년, 잔인하게도 윗부리가 잘린 투칸을 보호했던 과거가 있어, 외양으론 괜찮아 보이는 다르지만 같은 한 마리의 투칸을 보게 되어 기뻤다.
한편으로는 인간이 참 잔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먹이활동을 못하게 윗부리를 잘라내다니. 3D 프린팅으로 인조 부리를 만들어 붙였다고는 하나, 새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병 주고 약 준 것과 진배없지 않은가.
야생동물을 사랑하고 보호하는데 진심인 국가에서 그러한 일이 일어났다니 쉬이 믿기 어려웠다.
내부에는 레스토랑이 하나, 기념품 샵이 하나 있는데, 그와는 별개로, 인도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여러 새들 역시 볼 수 있다.
짐작하기론 보호가 필요한 개체들은 새장, 철책 안에서 키우고, 어느 정도 회복이 다 되어간다 하는 개체들은 자유롭게 풀어놓는 듯하다.
다람쥐도 보호한다. 미국 학교 캠퍼스에서 자주 마주치다 보니, 보호가 필요한 개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단순히 예전 동물원의 흔적인지, 보호를 위한 것인지 (너무 빨빨 잘 돌아다녔다.) 모르겠지만, 다람쥐를 보호한다는 발상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참.
모기가 정말 많으니 만약 가게 된다면 패치에 스프레이는 필수.
말 그대로 뜯겼다.
악어도 한 마리 있었는데, 움직이지를 않아 살아 있는가 싶었다.
유유자적한 이구아나 녀석. 부럽다.
한 발을 다친 독수리도 목격했다.
계속 나무에서 떨어지던데 그럼에도 하늘의 제왕이라는 위명을 버리기는 아까운지, 어떻게 날개를 퍼덕이며 위로 다시 올라가고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야생에선 결코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상태였는데, 떨어진 나무에 다시 올라갈 정도로 기력이 팔팔한 것을 보니 어지간히도 센터에서 잘 챙겨주는가 싶었다.
오소리와 퓨마 등 일부 동물은 구획이 넓고, 수목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어 포착하기 어려웠다. 나무늘보는 움직이지 않아, 찾는 게 어려웠고.
관람이 목적인 동물원과 구조해 다시 서식지로 돌려보내는 것이 목적인 센터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쉬운 마음이 들면서도 동물들에게는 참 다행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붉은 귀 거북인가. 얘네는 어디서든 보이는 것 같다. 딱히 다친 것 같지도 않은데, 그냥 살기 좋아 눌러앉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원서식지가 파괴되었을 수도 있겠다.
'열대'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그려지는 전형적인 새들이 많다.
처음 보는 베어드맥. 개미핥기와 돼지의 혼종처럼 생겼는데, 생물학적 기원이 궁금하다. (말이나 코뿔소 등의 기제류라고 한다.)
현지에서는 타피르(Tapir)라고 부르는 듯하다.
이유 모를 대나무 군락을 지나
서로 털을 골라주는 마모셋 원숭이의 모습은 정말 귀여웠다. 외부인을 잔뜩 경계하는 듯했지만.
발랄한 다람쥐를 지나치니 코요테 등의 동물이 나왔고, 길을 따라 내려가니 땅거북이 보였다.
처음에는 모형인 줄 알았다가 움직이는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쩌다 중미의 복판에 떨어진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에뮤 한 마리. 동물원의 잔재인 건가.
실질적으로 구조센터에서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것은 날개 부러진, 날지 못하는 앵무새 무리다.
이후 원숭이들은 방대한 공간에 한 두 마리씩 풀어놓았기에 찾기 어렵고, 멸종위기 종이라 하니 잘 살고만 있으면 된다 생각한다.
날지 못하는 앵무새를 살려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잠시 고민했다.
자연스레 도태돼야 할 생물의 사(史)에 인간이 개입하는 게 맞는가 싶지만, 앵무새의 생태학적 역할에 무지한 나로서는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고, 뭐가 됐든 살릴 수 있으면 살리는 게 맞다는 당연한 결론에 다다를 뿐.
다만 어디까지나 눈에 잘 띄는, 잘 알려진 앵무새이기에 보호받고 있지 않은가, 다른 수많은 새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으련가 싶기도 했다. 갈라파고스에서 핀치를 보전하려 노력하듯, Pura Vida의 정신에 걸맞은 새를 보호하는 것인가.
어찌 됐든 좋은 건 좋은 거고, 야생동물 구조/보호 센터들이 늘어나, 더 많은 생물들을 지켜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푸친 원숭이와 거미원숭이 역시 쉽게 포착하기 어려웠다.
결국 돌아가는 길에는 무엇을 새롭게 포착해 관찰하기보다는 찍은 사진과 동물 보전 노력에 대해 얘기하며 센터를 나왔다.
호스텔에 새로 온 여자 둘과 근처로 나가 작은 피자 한 판을 비우고 돌아왔다. 한 명은 코스타리카에서 요가 명상을 가르칠 예정이라 하고, 나머지 한 명은 멕시코였나 남미를 여행하다 코스타리카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과 합류해 국립공원을 돌 예정이라 들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캠핑카로 전국을 돈다니... 낭만적이면서도 무수한 난관이 예상될 것 같아 그러한 계획을 세운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하게 다가왔다.
피자 한 판 가격이 7달러.
내가 그간 비싼 음식만 골라 먹었나 싶은 가격. 하루 전의 맥도널드 세트가 16달러였는데...
피자 한 판으론 부족했기에 파스타를 요리해 한 접시 또 먹었다. 요리를 처음 하는 티가 났던 레나는 주키니를 태워먹었고, 호스텔 입구에서 자욱한 담배 연기 아래, 레나는 담배를 말고, 난 밍밍한 맥주를 손에 쥔 채 두 시간 정도 떠들었다.
마크롱, 사르코지, 문재인, 김정은 등 정치 얘기, LSD, 헤로인, 코카인 등 할 생각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마약 얘기 (간과되기 마련이지만, 아시아와 서양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다. 젊은 세대의 경우, 대마를 마약으로 취급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고, 그 이상을 투약한 경험이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리고 동성애, 음악 등 여러 얘기를 나눴는데, 막상 돌아서니 기억나는 것은 없고, 가든 하우스에서의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생각하니 둘 다 무언가 아쉽고 허무해 이야기가 길어지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또 하루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