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통하지 않는 영화관

스페인어로 영화 보기

by 노마드

2023. 1. 5 ~ 1. 6: Day 21 ~ 22,


자막이 있다는 말에 낚였다. 아니, 내가 지레짐작해 떡밥을 그냥 물고 물 밖으로 헤엄쳐 나온 건가.




이른 아침, 레나, 그리고 정든 호스텔 가족들과 이별 인사를 나누고, 출국 전 하루 묵기 위해 기존에 잡아두었던 숙소로 넘어갔다. (호스텔 주인 할아버지께서 벌레에 물리신 후 급성 마비 증상을 겪으셨고, 끝내 입원하셔서 호스텔의 분위기가 매우 어수선했다. 이 글을 빌어 잘 쾌유하셨기를 빈다.)


걸어서 40분 거리에 위치해 있기에, 땡볕 아래 어떻게든 돈을 아끼려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던 내게 뒤쪽에서 차 경적 소리가 울려댔고 무슨 일인가 보니, 어제저녁을 함께 했던 소피아가 차에 탈 것을 권했다.


캠핑카를 빌리러 가기 위해 밴을 빌렸다고...


덕분에 호스텔에 편하게 체크인했다.


IMG_7688.HEIC < 다시 보니 플립 광고를 하고 있었다는 점을 포착 >


인생 처음으로 알지도 못하는 중남미로 배낭여행을 떠나 귀국행 비행기를 하루 앞둔 채 침대에 누워 사진을 보니 못내 아쉬우면서도 뿌듯했다.


철저한 계획주의자답게 조금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못했음을, 순간의 식욕에 눈이 멀어 지출 내역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음을 자책하기도 했지만, 첫 해외 배낭여행의 사진들은 내가 자연과 어울리는 법, 고독을 즐기는 법, 그리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법을 배웠음을 드러내고 있었기에.


잠시 눈을 붙인 후 일어나 알라후엘라 시티 몰로 향했다. 아바타(Avatar)가 개봉했다길래, 스페인어 자막에 영어로 더빙된 버전이 있으면 볼 계획이었다.


2층에 올라가 영화 시간표를 확인하니, 다음 영화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있어 서점에 들렀다.


가장 놀랐던 건 한국 유명 웹툰인 '나 혼자만 레벨업'이 코스타리카에도 수출돼 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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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은 개성이 있다기보다는 한국의 여느 대형 서점과 별반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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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반어권에 온 김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작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사서 읽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부족한 캐리어 공간을 생각해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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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맨 밑 층에 위치한 식당가에서 저녁을 간단히 해결했다. 저렇게 해서 12달러였으니 결코 물가가 싸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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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맞춰 영화관에 입장했다. 영화표 가격은 7.5달러 정도로 비싸진 않았다.


다만 문제는 스페인어 자막이 있다고 적혀 있어 당연히 대사는 영어로 말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한 영화가 실제로는 자막도 스페인어, 대사도 스페인어로 이뤄져 있었다는 것.


Madre, Padre 정도만 알아듣고 전혀 모르는 영어로 영화로 보니 색다르면서도 처한 상황이 어이가 없어 웃음이 새어 나왔다.


3D 안경을 쓴 채로 코스타리카 알라후엘라의 영화관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싶었다.


다행히도 플롯을 미리 숙지하고 들어간 데다, 최초의 3D 영화 시리즈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훌륭한 영상미를 갖추고 있어 내용을 이해하고 관람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고, 에콰도르에서 스페인어로 미사를 드린 것과는 또 다른 성격의 색다른 경험이어서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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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내린 몰을 뒤로, 어두운 거리를 지나서 (매우 위험하게 느껴졌다.) 체크인을 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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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미국행 비행기를 잡아타기 위해 산호세(SJO) 공항에 도착했고,


비행기는 나를 실은 채 플로리다 포트로더데일(FLL) 공항에 착륙했다.


모든 게 계획대로 척척 맞아떨어져 들어갔고, 그렇게 난 개강을 이틀 앞둔 1. 6일 애틀랜타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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