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아스 화산 (Volcan Poas), 코스타리카
2023. 1. 3: Day 19,
사실상 수도 근처에서 유일하게 갈 만한 곳인 포아스 화산(Volcan Poas)를 트레킹 하기로 결정했다.
며칠 전부터 함께 움직이던 레나와 네덜란드에서 왔다는 여행자 한 명과 의기투합해 가기로 했던 일자는 본래 하루 전, 1월 2일이었으나, 화산 일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는 것인지 나름의 예약을 요구했고, 슬롯이 다 차 있어서 결과적으로 일정이 하루 밀려 버렸다. 어차피 갈 곳도 없던 터고, 폭포에서 하루를 즐겼으니 오히려 잘됐다고나 할까.
재미없다는 타당하고도 합리적인 이유로 건너뛰기 마련인 산호세를 무심히 지나쳤다가 결국 나중에 아쉬워한다는 그곳. 포아스 화산.
기존에 여행하기로 했던 사람들이 모두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계획에도 없던 산호세에 표류하게 됐으나 1년 후 올림픽 여행 일정을 미리 세우는 내게 즉흥적인 삶을 살아보도록 누가 안배라도 한 듯, 막상 흘러가는 대로 살아버리는 인생도 며칠 간의 경험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고작 며칠이었기에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숙소가 위치한 알라후엘라(Alajuela)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포아스 화산은 해발고도 2,700미터에 위치해 있으며, 1828년 이후 40번 이상 폭발한, 지난 2017년에도 폭발했던 활화산이다.
입장 가능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고 전부 예약제로 운영되기에 사전에 15달러 상당의 티켓을 인터넷을 통해 미리 구매해야 입장이 가능하다.
예약은 아래 사이트를 통해 진행되는데,
https://www.sinac.go.cr/EN-US/ac/accvc/pnvp/Pages/default.aspx
하루, 이틀 전에는 예약이 다 차버리는 경우가 허다해서, 미리 예약하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https://fr.worldcam.eu/webcams/north-america/costa-rica/24680-poas
푸른 하늘 아래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예약하기 전 2시간 간격으로 웹캠을 체크하며, 최적의 시간대를 찾았다. 11시에서 12시 경이 가장 괜찮아 보여 해당 시간대의 티켓을 구매했다. 건기, 우기에 따라, 그리고 시간대에 따라 산 정상의 기상환경이 변화무쌍하게 바뀐다고 하니 확인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출발 당일 아침, 하늘은 다행히도 맑았고 셋이서 우버를 불러 포아스 화산으로 향했다. 1시간 거리에 총 20달러 정도였고, 중간에 한 번 멈췄다 갔다는 점을 감안하면 썩 괜찮은 요금이었다.
중미 지역의 특징인 것 같기도 한데 - 혹은 한국이 석유를 전적으로 수입하기에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등 산유국이 근처에 있어서 그런지 택시, 우버 등의 요금이 생각보다 많이 싸다.
기사님의 제안에 따라 잠시 멈춰 풍경을 감상했다. 눈은 없지만, 스위스 산맥에 비교할 만한 절경을 눈에 담고 이동했다. 20도 중후반을 오가는 시내 인근과 달리, 산에 오르니 날씨가 쾌적하고 시원했고, 차는 나무와 산을 끼고 도로를 질주해 올라갔다.
우버 혹은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게이트 앞에서 티켓을 확인한 후 카페와 화장실이 위치한 빌딩까지 걸어 들어가야 하고, 자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빌딩 인근 주차장을 사용할 수 있게 돼 있었다.
실제로 가서 본 사람들 대다수가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로컬들이었으니, 마누엘 안토니오(Manuel Antonio) 국립공원과 몬테베르데(Monteverde) 운무림 등 주요 관광지와는 성격이 달랐다.
30분 정도를 들어가니 전망대가 나왔다.
산을 삼킨 구름이 인상적이었고,
지면을 뚫고 뿜어져 나오는 유황도 신기했지만,
무엇보다도 눈길을 끌었던 것은 밝은 시안 블루 색의 라구나 칼리엔테(Laguna Caliente, 직역하면 뜨거운 호수쯤 되겠다).
직경 0.3km, 깊이 30m의 분화구로, 지구상에 현존하는 호수 중 가장 강산성을 띠는 분화구.
터키의 파묵칼레에 비교할 수 있을까. 그 어떠한 자연경관에서도 본 적 없는 맑디 맑은 시안색 분화구는 사람을 잡아끄는 마력이 있어, 몇 분이고 그 영롱한 자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라구나 칼리엔테 외에도 신기한 게 있다면, 바로 화산 폭발 시 낙진을 피할 수 있는 대피 콘크리트(대피소라 하기엔 너무 작다)가 전망대 곳곳에 설치돼 있다는 점이었다. 지난 2017년의 참사를 교훈 삼아, 설치되었다고 하는데, 화산 폭발 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생각하면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어 다른 쪽 길을 타고 보토스 호수(Lake Botos)로 향했다. 마찬가지로 화산호.
다만 워낙 이질적인 풍경을 감상해서인지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그렇게, 풍경에 취해 돌아 내려가는 길에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마주했다.
불과 두세 시간 전만 해도 게이트 앞을 가득 메웠던 택시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보이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우버도 잡히지 않았다. 깊은 산골짜기까지 우버가 들어오길 기대했던 게 패착이었을까, 애써 잡은 우버 역시 취소되기를 여러 번. 불행은 연이어 닥치는 건지, 이후 네트워크 연결마저 끊어져 산에 갇혔다. 걸어서 숙소까지는 8시간... 물이라도 충분히 있다면 시도라도 해보겠으나 짧은 하이킹에 그 정도의 준비를 갖춰 왔을 리가 없었고, 결국 우리 셋은 히치하이킹을 시도하기로 결정했다.
셋이기에 안전은 확실히 보장됐지만, 문제는 마찬가지로 셋이라는 점.
누구 하나를 떨궈놓고 갈 수도 없고 두 개의 그룹으로 찢어질 수도 없는 애매한 숫자 3.
우버를 예약할 때는 쾌재를 부르게 했던 그 3이라는 숫자가 부메랑이 되어 날아왔다.
엄지를 치켜올리며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차들을 30분가량 잡았으나 결과적으로 헛수고였다.
일차적으로, 수도 산호세가 아닌 우리가 묵는 근방의 알라후엘라로 향하는 차가 거의 없었고, 이차적으로, 있다 한들, 세 명을 실을 수 있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그렇게 망연자실한 채 택시를 찾아 다시금 게이트로 향했다.
그러던 차, 우리 눈에 띈 밴 한 대.
운전자가 게이트 매표소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걸로 봐서는 자주 들락날락하는 사람인 듯했고, 가서 어설픈 스페인어로 말을 거니 산 아래의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주겠다고 흔쾌히 제안했다.
결국 10,000원 정도의 돈을 받아가기는 했다만, 어찌어찌 산을 벗어날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이제 문제는 버스. 일전 경험한 코스타리카의 버스 시스템은 무질서 그 자체였기에 - 버스가 정말 사람이 손을 흔들면 어디서든지 멈추고, (달리 말하면, 스페인어를 구사하지 못할 경우, 종점에서만 내릴 수 있다) 시간표 따위는 무시해 버리는 - 걱정을 멈출 수 없었다. 대중교통이라는 시스템이 가장 원시적인 형태로 퇴화되어 운영되는 느낌이랄까. 기점에서 종점까지 간다는 그 목표 하나만 갖고 있는, 소통이 되지 않으면 입 꾹 닫고 종점까지 얹혀 가야 하는 체계.
그럼에도 운이 따라준 것인지, 3분 정도 후 알라후엘라가 적힌 버스가 정류장으로 짐작되어 기다리고 있던 장소에 섰고, 4달러 정도를 내고 무사히 숙소로 돌아왔다.
마침 새로운 사람들이 호스텔에 와 있었고, 모두가 영어로 소통이 가능했기에, 바를 찾아 밖으로 나섰다.
처음 가기로 했던 바는 문을 닫아 두 번째로 들어간 바는 때마침 가라오케 바.
고맙게도 디지털 노마드로 6개월째 여행 중이라던 마크가 술값을 부담하겠다 결정해 분위기는 달아올랐고
노랫소리에 묻혀 들리지도 않는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 역시 Eagles의 Desperado를 불렀고, 또 새로운 사람들과 바 앞에서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산호세를 방문하는 어느 여행자와 다름없게 하루 묵고 다른 곳으로 떠날 사람들과, 그리고 어쩌다 산호세에서 일주일가량을 묵게 된 레나와 나, 여덟이서 함께 한 하루가 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