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3봉지
지난 겨울의 나는 여전히 불효자식이었다. 방학이면 방학마다 여행을 우선시해, 1년 반 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미국 발 한국행 비행기를 끊느니, 그 돈으로 여행이나 하는 게 낫다는 것이었지만, 여행을 하며 돈이 결코 적게 든 것도 아니었기에, 그저 여행이 하고파, 부모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고 떠나고 또 떠났다.
에콰도르를 시작으로 과테말라까지, 그리고 덴마크를 시작으로 세르비아까지, 30개가 넘는 국가를 돌아다니면서 한국은 단 한 번도 찾지를 않았다.
그러다 지난 겨울 마침내 한국을 찾았을 때에도, 3주 못 미치는 짧은 시간의 대부분을 식도락과 친구에게 투자했다.
반 년의 시간 동안 나는 별달리 변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집으로 바로 향할 수는 없다는 듯, 아랍에미리트의 경유 프로그램을 활용해 2박을 무료로 아부다비에서, 그리고 추가로 1박을 두바이에서 묵겠노라 통보했다.
더불어, 유럽 거주자의 자격이 인정되는 지금 박물관을 찾는 것이 향후 방문하는 것보다 경험 측면에서도 좋고, 싸게 먹힐 것이라며, 프랑스를 떠나기 전 파리에서 이틀을 더 보내겠노라 통보했다.
(프랑스 북동부 메쓰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고 있다. 방금 새어보니 파리를 벌써 11차례나 방문했다. 퐁피두 센터, 피카소 박물관, 오랑주리 박물관을 찾는 게 이번의 목표.)
그렇게 파리에서의 2박에 61.25유로, 두바이에서의 1박에 52 디르함을 지불하고 나니 통장에 남은 잔액이
카카오뱅크: 환전도 안될 정도로 적은 737원,
트래블월렛: 초콜릿 바 하나 못 뽑아먹을 1.23유로,
BOFA: 옷 두번 세탁하면 사라질 10.92달러였다.
3박에 76.5유로, 112,000원을 보내주십사 부탁드렸더니 통장에 꽂힌 120,000원.
차액 8,000원에 1.23유로를 보태니 205원이 남고, 그 길로 슈퍼마켓에 가 신라면 3봉지를 샀다.
예전과 달리, 부모님께 돈을 보내달라 부탁 드릴 때면, 말씀드린 액수가 올림되어 오는 일이 잦다.
가령, 올 여름 오슬로발 애틀란타행 비행기 값이 750불, 103만 원이라 하면, 통장에 110만 원이 꽂히는 식이다.
“남는 돈으로 맛있는 거 사먹어.”라는 따스한 문자와 함께.
지난 가을 학기의 나는 참으로도 자주 굶었다. 세르비아에서 빵 두 개로 이틀을 버텼다. 배설될 뿐인 그 몇 천원들이 그렇게도 아까웠다.
이후, 1년 반만에 한국에 돌아와 몸무게를 재니 미국으로 떠났을 때보다 15kg이 빠져 있었다.
“너 마른 걸 넘어서 기아 같다.”라는 친구의 말.
그런 내 몰골이 부모님께 어떻게 보였으련지는 안 봐도 뻔하고, 타지에서 여행에 미쳐 있는 아들 놈을 여전히 걱정하시는 부모님께서는 그렇게 돈에 돈을 묻혀, 걱정을 실고, 사랑을 담아 8,000원을 더 보내셨으리라.
저번의 애틀란타행 비행기는 특가를 찾아 25만 원을 아껴, 차액을 모조리 여름 여행 준비에 쏟아부었다.
부모님께도 그리 말씀드렸지만, 어딘가 죄송스러워 3만 원은 따로 빼두고 피자 한 판을 시켜먹었다.
8,000원이 더 온 오늘의 저녁 메뉴는 라면이다.
건강에 하등 도움도 안되고, 한 봉지에 3,000원이라니 기가 차지만, 라면을 먹으며 집 생각을 하고, 집 생각을 하다 부모님 얼굴이 떠올라 글을 쓴다.
8,000원어치 사랑에 대해 쓴다.
어쩐지, 오늘따라, 라면이 조금 짠 것만 같다.
5월 3일, 앞으로 2주 후면 집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