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율 3위 국가로의 여행
"걱정 마. 관광객은 안 죽여." 그는 내게 말했다. 퍽이나 걱정하지 않겠다. 나는 살인에 공감할 수 없었다. "여긴 슬픈 나라야. 슬픈 나라. 돈이 없어서 슬픈 나라." 어딘들 안 그렇겠는가. 대관절 생계형 살인은 또 뭐란 말인가.
카리브해로 떠나기 열흘 전 무렵이었다. 수개월 전, 나는 에어비앤비를 예약하며 이 작은 나라들엔 호스텔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박당 60-70달러를 훌쩍 넘기는 숙박비를 보며, '싼 비행기표에 괜히 낚인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까짓것, 아무렴 어때'하는 심정으로 계획을 계속 밀어붙였다.
잠옷 한 벌, 속옷 및 상하의 3벌, 그리고 양말 4켤레.
마늘 10알, 라면 두 봉지, 그리고 파스타 세 통.
호텔 예약 2건과 에어비앤비 예약 4건.
의식주와 항공권은 이미 다 준비해 뒀고, 이제 남은 건 이동 수단 뿐이었다.
정보를 찾아보기 전까지만 해도, 내게는 '그래도 버스 정도는 다니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막연한 기대가 완전한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몇 번의 검색 끝에, 나는 바베이도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대중교통 정보를 찾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건 정보의 부족을 넘어선 정보의 부재였다.
의미하는 바는 단순했다. '추가 지출'. 허탈한 심정으로, 겨울방학의 예산에서 줄일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보다, 온두라스 여행 계획을 재검토하기에 이르렀고, 치안이 파탄난 산페드로술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 엘살바도르에서 당일치기로 코판 유적을 다녀오는 투어가 있음을 기억해 냈다.
그렇게 항공권을 재검토하고, 절약할 수 있는 비용을 계산한 후 마지막으로 온두라스의 치안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세계 살인율 순위를 검토하던 내 눈에 들어오지 말아야 할 나라 둘.
5위 온두라스. 이건 아니까 오케이. 4위 트리니다드 토바고. 그리고 3위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직후 든 생각은 '이거 조졌네...' 10일 후 내가 찾을 나라들이었다.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은 인구가 11만 뿐이고, 트리니다드 토바고 역시 150만 뿐. 친구들에게 말하면 "거기가 어디야?" 혹은 "도시지?"라는 말이 나오는 국가들답게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여행을 취소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에, 구글 스콜라에서 논문까지 뒤져가며 카리브해의 살인 사건에 대해 찾아보았다. 정보는 부족하지 않았다. 부재했다.
논문은 버려두고 다른 탭을 클릭하니 기사들 몇이 눈에 들어왔다. 기사에 따르면, 여행자를 대상으로 한 살인은 없고, 다만 '생계형 범죄'가 일어난다는 내용과 트리니다드 토바고에는 갱폭력의 증가로 인해 무려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었고 연장되었다는 내용만 눈에 띄었다. 이에 따라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일정은 수도에 들어가지 않고, 공항에서 말 그대로 환승만 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그렇게 트리니다드공항에서 1박, 공항 근처에서 1박, 그리고 그레나다에서 1박을 마친 나는 3일 전 세계 살인율 3위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에 입국했으며, 이틀 전 숙소의 할아버지는 통계가 조작되었음이 분명하다고 내게 역정을 냈다.
'그렇다면 갱단이 판을 친다는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차치하더라도, 할아버지의 말대로라면 '모두가 모두를 아는' 이 작은 섬에서 살인율이 높을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하는 게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을 떠나는 아침까지 내가 갖고 있던 의문.
표본이 적어 살인율이 높다는 주장을 얼핏 생각하면 타당해 보였다. 그럼에도 여타 미소 국가의 살인율을 생각하면 10만 명당 40명은 말이 안 되는 수치였다. 인구가 50만 인 몰타와 70만 인 룩셈부르크의 살인율은 10만 명당 각 1.51, 1.53. 반면,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에서는 연간 11만 명 중 43명이 살인으로 죽었으니 대략 따져보면 2500명 중 1명. 내가 다닌 초등학교의 전교생이 1500명, 중학교의 전교생이 1000명이었으니, 그 정도 인원 중에 한 명, 쉽게 말하면 한 다리 건너면 살해당해 죽은 사람 하나 있는 게 이 나라의 사정이었다.
의문은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을 떠나는 날의 아침에 풀렸다. 카리브해의 여느 항공편과 같이 이른 아침 출발하는 바베이도스행 비행기를 잡아타기 위해 5시 30분쯤 택시에 타 공항으로 가는 길의 일이었다. 운전수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할아버지에게 던졌던 질문을 던지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대화는 유쾌했다. 이 작은 섬나라에서는 오전 6시면 라디오에 애국가가 흘러나왔고, 그는 애국가를 흥얼거리고는 한국인은 처음 본다며 나를 신기해했다.
이윽고, 나는 질문을 던졌다.
"정말 무례할 수도 있다는 것 잘 알고, 대답 안 해줘도 이해 충분히 할 건데,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내가 여행하면서 글을 쓰거든. 그런데 이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운 나라에 대해 쓸 때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더라고."
"와우. 너 여행하면서 글을 쓴다고? 대단한 걸? 물어봐." 별 일 아니라는 듯 기사는 말을 받았다.
잠시 머뭇거린 후 나는 입을 뗐다. "여기 살인율이 엄청 높더라고."
그는 침묵했고, 나는 말을 이어갔다.
"나로서는 전혀 위험한 걸 못 느꼈고, 어제 다른 할아버지한테 물어보니까 한 두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에서 무슨 살인이 일어나겠냐고 반문하던데, 숫자 상으로는 10만 명 중 매해 40명이 죽는다 하니... 모르거나 숫자가 이상한 것 같으면 그렇다고 말해줘도 돼. 그냥 그 점에 대해서 확실히 하고 싶어서..."
"정확한 사람을 찾았네. 흐음. 조금 된 일이야." 그는 답했다.
"말 안 하고 싶으면 안 해도 괜찮아." 내가 말했다.
"그렇지. 조금. 조금 된 일이야. 너 같은 사람이 적어서 오해라도 풀어주면 좋지. 그전에 잠시, 그 할아버지는 어디서 만났어?" 잠시 고민하던 그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저기 페리 타고 가면 나오는 베키아 섬." 나는 답했다.
"말 되네. 거긴 안전해. 사람도 적고 말 그대로 서로 예전부터 알던 사이들이라 문제 생길 일이 없지." 이어 그는 말했다.
"저기 앞에 사진 보여?"
"응. 귀엽네."
"아들이야. 아들. 이제 여덟 살이지. 이 애를 위해서 난 결국 돈을 버는 거야. 택시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선 꽤나 번듯한 직업이야.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건." 그는 말했다.
"이 나라에 있는 사람들은 둘로 나뉘어. 떠날 사람과 떠나지 못한 사람. 떠난 사람은 집만 빌려주고 그 돈으로 해외에서 살거나 일을 하지. 나 역시 겨우 이 차 한 대 마련해서 떠나려는 사람인 거고." 그가 덧붙였다.
"되게 단순한 생각이지만, 정말 아름다운 나라 아니야?" 내가 반문했다.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어. 그러나 관광 오기 좋은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니지. 여긴 무엇보다도 일자리가 없어. 여기 청년들은 미국, 캐나다, 아니면 영국으로 떠나는 게 꿈이지." 그는 답했다.
"캐나다는 왜?" 내가 물었다.
"적어도 여기보다는 잘 살잖아? 이봐. 이 차 한 대가 중고로 5만 달러 정도 해. 국민 소득은 얼마인지 알아? 1만 달러. 내가 다 떼고 나면 2만에서 운 좋으면 1년에 3만 불을 벌지. 마지막으로 휴가 간지도 4년인가 5년인가. 비싸서 엄두도 못 내지. 여하튼 이야기가 샜는데, 돈이 많은데 여기 남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그는 말했다.
"설마..."
"그래. 그 설마가 그 설마야. 2년 전 여름의 일이야." 낮은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그는 잠시 창밖을 내다봤고, 순간 차 안의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파티였지. 오전부터. 동네에서 돈 꽤 많은 부호? 형? 이 연. 경호원까지 있는." 잠시 호흡을 고른 후 다시 말을 이어갔다.
"친구라고 해야 하나. 지인 여럿이라 해야 하나."
"오전에는 어디 룸을 빌려서. 알지? 바비큐 구워 먹고. 술 나오고. 그냥 그런."
"그렇게 오후가 됐고, 우리는 그 형 집으로 이동해서 술을 계속 마셨어."
그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시 이야기했다.
"소파에 앉은 지 한 30분 정도 지났으려나. 친구 하나가 차에 다녀온다고 하더라고. 모두 기분 좋게 취해서 별 신경도 안 썼어. 차에서 돌아왔지. 그 부자 형과 우리는 마주 앉아 있었어." 그는 말을 멈추고 창밖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운전대를 꽉 쥐어 잡고, 검지로 운전대를 계속 쳐대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쏟아냈다.
"그리고 그 부자 머리에 총을 갈겼지. 사람 머리가 눈앞에서 터지는 광경을 본 적이 있어? 피가 흩날리고 모두 소리는 지르는데 시간은 기이하리만치 느리게 흘러. 경호원이 즉시 대응 사격하는데 그 총알이 날아가는 게 보이는 것만 같지. 결국, 그 친구의 다리에도 구멍이 뚫렸지. 친구라고 하는 게 맞으려나... 나머지 친구들은 모두 소파 뒤로 숨었고. 피가 흘러내려 대리석 바닥을 적시고 카펫에 스며들더라고. 천천히..."
우리는 말을 잃었다. 창밖으로 서늘한 아침 바람이 불어왔고, 기사는 턱을 괸 채 하염없이 흐린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내가 입을 뗐다.
"와...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눈앞에서 그런 장면 봤으면 충격이 정말 컸을 것 같아." 내가 답했다.
"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어.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래도 이해가 안 가." 그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을 죽인다고 돈을 바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경호원까지 있는데... 술을 너무 많이 마시기라도 한 건가... 그렇다 한들, 트렁크에 총을 숨겼다는 건." 음주를 변명으로 삼는 행위를 혐오하는 나이지만, 나 역시 그 순간에는 정말 술 말고는 그토록 비이성적인 행위에 대한 이유를 도저히 찾을 수 없어 여러 생각의 조각을 이어 붙였다. 그럼에도 그의 설명에는 결정적으로 '왜'가 빠져 있었다.
그는 다시 1분 간 말이 없었다.
"그 친구는 지금 교도소에 있어. 봐. 이 나라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쏘지 않아. 그러니 부자들은 집만 빌려주고 나라를 등지고 떠나지." 흔들림 없는 동공을 저만치 어딘가 던져둔 채 그는 말했다. 혼잣말에 가까운 푸념이었다.
"도대체 왜..." 나 역시 중얼거렸다.
"그걸 이해할 수 있다면 살인을 하지 않았겠지." 그가 말했다. 정상인의 시선으로 살인자를 이해하려 하니 괴리가 발생한다는 그의 말은 타당했다. 그가 덧붙였다.
"그렇지만 믿을 수 있어? 불과 몇 시간 아니 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같이 웃고 떠들던 사람 중 하나는 머리가 터져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고, 하나는 다리가 평생 불구고, 감옥에 있지."
"우리는 마주 앉아 있었고, 그 새끼는 총을 갈겼지. 경호원 중 하나가 대응 사격했고. 다리에 구멍이 뚫리고 살점이 튀고 피가 쏟아졌지."
"우리는 마주 앉아 있었고, 그놈은 총을 쐈지..."
"우리는 마주 앉아 있었고..."
우리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래도 걱정 마. 적어도 관광객은 안 죽여. 관광객이 끊기면 모두 죽는 길이라는 누구보다 더 잘 아는 거지.* 웃기지 않아? 타인이 아니라 지인이 죽어나간다는 게?"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여긴 슬픈 나라야 슬픈 나라. 돈이 없어서 슬픈 나라..."
"2만 달러에서 4만 달러로 1년을 살 수 있을 것 같아? 살 수 있지. 그런데 대부분은 그 정도도 못 받아. 해봤자 월 1000불 밑이지. 떠나야지. 실제로도 떠나고. 그런데 떠나지 못한다? 그러면 간혹 가다 말도 안 되는 무식한 방법으로 돈을 뺏으려는 사람들이 나오는 거야."
나는 생각했다. 다시 볼 리 없는 사람이 아니라 몇 다리 건너 알 사람에게 총구를 겨누는 이곳의 사람들은 여전히 순수하면서도 동시에 잔인하다고. 살인은 정당화할 수 없고, 어떠한 경우에서도 정당화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가 친구를 동정하듯, 이곳에서의 삶은 너무 비정하다고. 사람은 희망을 잃어 무너지며, 희망이 무너진 사회는 이미 무너진 사회와 다름이 없다고.
그는 침묵했다.
지인이 타인보다 먼 이곳에서 나는 몇 개월 전 유튜브에서 우연히 본 아주 질 나쁜 블랙 코미디를 떠올렸다.
흑인 코미디언은 관객들에게 말한다.
"백인 여러분 흑인이 또 누구를 죽였다는 뉴스를 접했더라도 겁먹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99%의 흑인은 흑인이 죽여요."
또 나는 집을 떠나기 전 룸메이트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봐봐. 오늘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뭔지 알아?"
"말을 해야 알지."
"통계에 따라 다르긴 한데, 내가 간다는 나라들이 전 세계에서 살인율이 3위 하고 4위라네. 그 위의 남아공은 다녀온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 십중팔구가 강도를 당했다더라고."
"거긴 왜 그렇대?"
"나도 몰라. 굳이 이유가 있어야 할까?"
이후로도 우리는 대화를 나눴으나 이미 나눈 대화의 충격이 컸던 탓에 어떠한 이야기를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고, 5분 즈음 지났을까 차는 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그에게 위로를 전했다. 그리고는 택시비와 소정의 팁을 건넨 후 차에서 내려, 체크인을 마치고 공항 터미널에 앉아 이륙을 기다렸다.
공항 터미널의 벽에는 생뚱맞게 대만과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의 우호관계*를 증명하는 기념패가 걸려 있었고, 폐쇄된 터미널 한 구석에는 피델 카스트로*와 우고 차베스*의 빛바랜 사진을 담은 액자가 걸려 있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한때 혁명의 열정과 이상을 꿈꿨으나 종국에는 많은 이들이 조국을 등져야 했던 카스트로 치하의 쿠바처럼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나고 있을까.
또 어떤 사람들은 달콤한 석유가 속삭였던 복지 대신 끝 모를 절망과 불신만 남은 차베스 이후의 베네수엘라처럼, 만연한 불안 속에서 한낱 종잇조각을 위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을까.
모를 일이다. 공항으로 가는 길,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시내로 출근하며 단조로운 일상을 이어갔고, 간혹 대만이 지원한 멀끔한 버스들도 눈에 띄었다.
일상 바로 곁에 도사린 그늘진 도피와 불신의 무게를, 정말 이곳 사람들은 견디며 살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내게 역정 내던 그 할아버지처럼 외면하고 살아가는 것일까. 생계형 살인의 나라에서, 가난은 불편을 너머 생존을 위협하는 비극으로 번져 있다. 도피와 불신으로 얼룩진 사슬의 끝, 비극의 종장에 마침표를 찍는 건 때로는 '살인'이라는 참혹한 결말이며, 비극의 연쇄는 되풀이된다.
운전수의 말이 귓가에 울린다.
슬픈 나라. 돈이 없어 슬픈 나라.
*가장 최신 데이터인 2022년 기준, 누락된 국가들이 (특히 아프리카) 꽤 있으나
카리브해 국가들의 인구 10만 명당 살인 건수는
안티구아 바부다: 10.77, 바하마: 32.2, 바베이도스: 15.23, 도미니카: 28.43, 도미니카 공화국: 12.37, 그레나다: 6.84, 아이티: 18.98 (현재는 대통령 암살 이후 치안이 파탄난 걸 넘어 부재하고, 여행 금지 지정), 자메이카: 53.11 (1위), 세인트 키츠 네비스: 23.55, 세인트 루시아: 36.92,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41.16, 트리니다드 토바고: 40.44,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영국령): 76.34, 베네수엘라: 12.65이다.
그 외에 수치가 높은 국가들을 꼽으면, 남아공을 제외하고 죄다 중남미에 몰려 있으며,
남아공: 43.72 (2위), 브라질: 21.1, 콜롬비아: 25.31, 에콰도르: 27.41, 엘살바도르: 7.9 (대통령의 갱단 소탕이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추정), 과테말라: 22.05, 멕시코: 25.88, 온두라스: 34.97 (역내 최고)
그 외 주요 국가들의 살인율은 아래와 같다.
미국: 6.51, 일본: 0.23, 한국:, 0.53, 싱가포르: 0.12, 몽골: 5.97 (아시아 내 최고), 몬테네그로 : 2.6 (유럽 내 최고)
유럽 미소 국가:
룩셈부르크: 1.53, 몰타: 1.51, 바티칸: 0.
*2024년 2월 삼인조가 요트 탄 관광객을 살인해 뉴스에 대서특필된 바가 있으므로 방심은 금물이다.
*대만과 수교한 국가는 보통 크기가 작은 섬 국가들이며, 투발루, 마셜 제도, 팔라우, 아이티, 세인트루시아, 세인트키츠 네비스,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이 이에 속한다. 내륙국은 바티칸, 벨리즈, 과테말라, 파라과이, 에스와티니.
*각 쿠바 및 베네수엘라의 독재자. 혁명을 통해 집권한 카스트로는 몬카다 병영 습격 실패 후 산으로 피신했다가 멕시코로 망명한 전력이 있으며, 우고 차베스는 서방에서 대중 인기영합주의적인 마구잡이식 복지 정책을 통해 베네수엘라 경제를 파탄 낸 인물로 평가받는다. 두 인물 모두 속한 진영에 따라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린다.
https://dataunodc.un.org/dp-intentional-homicide-victi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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