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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 여기는 누구

킹스타운, 여행의 간격

by 노마드

망각에 기대 여행의 간격을 조절하는 건 고도의 결정력을 요하는 지극히 섬세하고도 정교한 작업이다. 그러나 여행이라는 천형에 매인 역마살 인생에게는 그러한 작업이 무엇보다도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점을 먼저 지적하고 싶다.


간격이 좁아 떠나온 그곳에서도 오늘이 어제의 반복이라면, 습관과 타성이 이미 하늘 가려 어두운 숲처럼 빼곡히 들어선 일상으로부터 달아날 이유가 없다. 반면, 간격이 넓어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발작적으로 어떠한 새로운 결제 버튼에 손이 가 있다면, 떠나겠다는 이상과 떠나지 못한다는 현실의 괴리가 몸서리치도록 서럽기 마련이다.


여행이 일상이 된다면 그건 더 이상 여행이 아니라 또 하나의 일상으로 거듭나기에, 결국 여행자는 낯선 곳에서의 삶이 일상과 유리된 후에, 또 추억이 고통스러워지기 직전에 떠날 수 있도록 여러 여행의 간격을 면밀하게 조절해야 한다.


일상은 권태롭다는 단어조차 진부해질 만큼, 출하를 기다리는 레일 위 통조림처럼 규격화되어 굴러갈 수도 있고, 어느덧 "떠나야 한다."라는 외침도 희미해질 만큼 만족스럽게 흘러갈 수도 있다. 여행자로서 체득한 정체성을 상실하는 건 후자의 경우 불행이 아니라 천형에서 벗어나는 일인 만큼 축하해야 할 일이지만, 그럼에도 그건 여전히 여행자로서는 슬픈 일이다.



겨울의 남미여행을 마치고, 카리브 해로 떠난 건 이러한 타의적인 조정의 결과였다. 대뜸 지난 8월 엘살바도르에서 돌아와 충동적으로 끊은 비행기 표의 결과였다.


돌이켜 보면, 대학에 입학한 이후로 나의 봄방학은 늘 그러했다. 면밀한 검토 없이 무작정 떠났다. 바하마와 니카라과 사이에 WBC가 끼어있던 1학년의 봄방학과 이집트에 가 책만 스무 일곱 권 읽었던 2학년의 봄방학. 21세기 야구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기억될 장면* 중 하나를 직접 두 눈으로 담았고, 은퇴하기 전까지는 갈 것이라 꿈조차 못 꿨던 이집트에 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보았다.


그럼에도 아무리 이 모든 순간들이 훗날 할아버지로 늙어 손주들에게 들려줄 이야기 속 한 장면으로 남는다 한들 나는 흙 밖으로 삐져나온 얇은 나무 뿌 같은 미진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아무래도 겨울의 여행 이후 충분한 간격을 마련하지 못한 채로, 이전의 여행을 소화하지 못한 채로 떠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의 카리브 여행은 이러한 맥락에서 그 전의 여행들과 분명 달랐다. 그저 다음의 여행이 너무도 멀었다.* 2023년에는 바하마와 니카라과의 사진을 정리하기도 전, 도미니카 공화국과 과테말라로 떠났고, 이후에는 아예 유럽에서 여름학기를 들으며, 10개가 넘는 국가를 여행했다. 2024년 봄, 나는 교환학생을 떠나와 이미 유럽에 있었다. 성적은 잠시 내려놓고 매 주말마다 떠났다. 카이로에서 돌아온지 일주일이 되던 날, 나는 슬로베니아행 야간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 두 번의 봄과 달리, 이번 여름은 학기, 연구, 일로 꼼짝없이 애틀란타에 발이 묶였고, 가을은 졸업을 위해 최대이수 가능한 학점을 꽉 채워들어 떠날 시간을 마련할 수 없었다. 추억이 고통스러워질 터였다.



베키아 섬을 떠남으로써 나의 카리브 해 여행은 반환점을 돌았다. 그러나 실상 남은 건 없었다. 오후를 흘려보내고, 바베이도스에서 짧은 시간을 보낸 후, 다시 포트 오브 스페인에서 일어난 다음 날이면 다시 애틀란타.


수도라 하기엔 고작 1만 3천 명의 사람이 살아가는, 굳이 따지자면 고향 부산의 명지 1동 인구가 3만 명이니, 수도보다는 읍, 면이 어울리는 킹스타운 항에 도착해 산이라고 하기도 뭣한 언덕 아래로 펼쳐진 도시를 내려다 보며, 나는 여행의 끝을 직감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에 이어 다시 한 번 KFC에 들러 버거를 주문하고, 체크인까지 남은 두 시간 동안 넘어가지도 않는 페이지 너머 어딘가, 창 너머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을 휘저은 건 이러한 유의 생각들이었다.


책 속 괴테는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에서 모든 것에 대한 열쇠를 잃어버렸다. "열쇠는 필요하니 다시 찾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에는 더없이 효과적이고 적절한 비유다."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 열쇠는 도대체 어디서 잃어버린 걸까."


'가치'라는 건 길게 늘어진 시간을 짧았다 회고할 수 있는 역량에 좌우되는 건가. 감수성이라. 세계는 넓고 여행의 끝은 있어도 천형으로서의 방랑에는 하나의 끝만이 존재하기에, 나는 어느 여행을 떠나보낼 때처럼 울적했다. 다가올 겨울까지는 더 이상 즐길 게 남아있지 않았다.



벨리즈와 파나마처럼, 그리고 트리니다드 토바고처럼 자국의 화폐가 달러에 페그되어 있기 때문일까. 카리브 해에서 결제한 카드 내역에는 수수료가 붙지 않았고, 어디서 기원한지 알 수 없는 검은 돌벽 양식이 눈에 띄었으며 (아마 섬의 화산 탓이지 않을까) 거리와 중앙 시장에서 나는 노란 수박을 비롯한 과일을 구경했다. 그것 외에는 달리 할 것도 없었다.



가끔 멈춰 신기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고는 다시 걸어가는 사람들을 지나, 그리 반가웠던 현대 매장을 지나, 나는 성당으로 향했다.



언제 비슷한 건축물을 보았나 생각해 보니,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에서 였던가. 고딕은 제국주의와 빅토리아를 거쳐 식민지의 자그마한 수도에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평일 한낮의 태양 아래, 노인 몇 분이 회랑 아래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성당에 들어가도 될까요?" 볼 아래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나는 물었다.


"당연하지. 안 될 이유가 뭐 있어." 나를 쳐다보며 그 중 청색 카라 셔트를 입은 할아버지 한 분이 답했다.


나는 도시의 유일한 주교좌 성당인 성모 마리아 성당으로 들어가, 오래된 가족의 전통을 떠올렸다.



어딘가 떠나와 갈 곳이 없으면 성당을 찾아 기도라도 드리는 건, 가톨릭으로 살았던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영향이 있는 것일까. 혹은 그저 타향에서 혼자 다니다 보면 기댈 곳이 필요해지는 것일까.


무사히 여행이 끝나감에 대해 그리고 동생의 입시에 대해 감사 기도를 드리고 잠시 텅 빈 성당에 앉아 멍을 때리다, 벽에 붙은 '희년'에 대해 찾아보고, 이를 핑계 삼아 부모님께 희년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성당을 나오며 성모 마리아 상에 인사한 후 나는 다시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봄을 맞아 길가에는 이름 모를 꽃이 흐드러지게 폈고, 성당 맞은 편의 성공회 묘지에는 백로가 풀밭을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 공립 도서관에 잠시 들렀으나, 송아지 같은 눈망울이 인상적이었던 도서관의 사서는 오늘이 휴관임을 내게 알렸다. 나는 언덕을 걸어 올라 숙소로 향했다.



축 늘어진 발걸음만큼이나 마음도 비어가는 듯했다. 다음 여행까지 남은 긴 시간의 간격은 겨우 끊어지지 않은 나무 뿌리처럼 질겅질겅 나를 옥죄어 왔다.



숙소의 방은 세 개. 아래로 킹스타운 전경이 내려다 보였다.


탁 트인 전망, 손님을 환영하는 웰컴 드링크 및 스낵과 선크림, 빗에 심지어 면도기까지 들어 있는 미용 세트까지, 마지막까지 이 섬 나라는 최선을 다해 나를 배웅했지만, 방의 천장은 높았고, 창 너머 수평선은 까마득했으며, 한국은 이제 새벽이었다.



남은 돈을 정리하고, 필요치 않은 사진을 삭제하고, 앞으로 쓸 글의 목록을 뽑고, 네모난 창에 계속 시선을 두며 움직일 생각 따윈 하지 않는 시곗바늘을 종종 노려보았다.


높든 말든 누우면 보이는 건 허연 천장이고, 보든 말든 수평선 너머 파도는 너울거리며, 이런들 저런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흐른다. 그럼에도 여행의 끝을 마주할 때면 심정은 왜 이리도 복잡미묘한 것일까.


다음의 떠남은 반 년 후라 빛이 들어오지 않는 숲에 갇힌 소년처럼 두려운 것일까. 일상이라는 나무를 꾸준히 베어넘기는 수밖에 없다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베어넘기면 남는 건 황량한 사막뿐. 벌목꾼 되어 무얼 하겠는가. 그건 정체성을 잃는 것보다 더한 형벌 같았다. 한참을 천장을 바라보며 한 생각이라곤.


나는 어디. 여긴 누구.






*축구로 치면 챔피언스리그에서 메시와 호날두가 격돌했던 경기, 일본과 미국의 WBC 결승을 직관.

*결국 못 참고 한국에 있는 2주 동안 어떻게 필리핀을 또 끼워넣었다. 대략 10년 만의 가족여행.

*찾아본 결과 1823년 처음 지은 후, 1930년에 현재의 성당이 완공되었으며, 무어, 로마네스크, 비잔틴, 베니스, 플랑드르 등의 다양한 양식이 섞여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검다고 무조건 고딕은 아닌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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