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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May 18. 2023

갈라파고스 주민의 일상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

22. 12. 28: Day 13,


부킹 닷컴에서 알려준 숙소 위치가 실제와 약간 달라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나이 지긋하신 노부부 두 분이 운영하시는 숙소에 무사히 체크인을 마쳤다.


안락의자에 앉아 강아지를 쓰다듬고 계셨던 할아버지 한 분과 손님이 왔다는 사실에 이리저리 주방을 거닐며 음식 하나라도 내오시려고 분주하신 할머니 한 분이 환하게 웃으시며 나를 맞이했다.


개미 몇 마리가 자유롭게 이불 위를 활보하고 있었으나, 누워 확인해 보니 물지는 않았고, 침대 자체도 널찍한 데다 주방도 있었기에 만족스러웠다.


< 꽃이 예쁜, 조금 넓은 가정집 느낌 >


잠시 침대에 누워 뒹굴대다 물을 뜨러 밖으로 나왔다.


< 할머니들 손맛은 전 세계 공통인가 보다. >


그렇게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던 나를 할머니께서 손짓으로 부르셨고, 따라갔더니 나를 위해 준비된 웰컴 수프 한 그릇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


안 그래도 배가 꺼질 듯이 고팠던 난 서둘러 감사 인사를 드린 후 자리에 앉아 허겁지겁 수프를 해치우기 시작했다.


대접받은 해물 수프는 매콤 쌉싸름한 국물의 알싸한 풍미를 설익은 생강이 가히 완벽하게 잡아줘 아주 맛있었다.


작은 그릇 하나에 물고기, 오징어, 게살, 홍합, 관자, 새우 등 들어갈 수 있는 거의 모든 해물이 가득 담겨 있었는데, 중간중간 부드럽게 혀에 감겨 들어오는 국수 가락들과 매끄러이 부서지는 양파 조각들이 탱글탱글한 해물과 버무려져 균형 잡힌 식감을 선보였다.


수프 하나 때문이라도 재방문 의사가 있을 정도였으니...




이후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오래간만에 쌀이 당겼기에, 식당들이 모여 있는 선착장 근처 중국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더운 날씨에 체크인을 어서 마쳐야겠다는 강박 관념 속에 지나쳐 버렸던 갈라파고스 주민들의 일상을 엿볼 요량이었다.




부모님을 대신해 가게 앞을 지키며, 삐뚤빼뚤한 글씨로 공책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 가는 아이.


오늘 장사는 이미 접은 것인지, 과일 가게 앞 계단에 불편한 자세로 몸을 기댄 후, 살짝 내려온 모자로 눈을 가린 채 잠을 청한 과일 가게 청년.


방방 뛰는 아이들에게 건네줄 또르띠야를 시커먼 재가 내려앉은 화덕 위에 하나둘 올리는 아낙네. 간간이 나오는 기침은 덤...


뭐가 그리 좋은지 입이 귀에 걸릴 듯 웃으며, 여자 친구를 뒤에 태운 채 오토바이로 도로를 질주하는 내 또래 남자아이.


가게 셔터를 반쯤 내린 후 깜빡 켜놓은 실내등을 보며 고민하는 제복 차림의 아가씨.


빵집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을 피해 주변을 몇 번이고 두리번거린 후 학교 담벼락에 오줌을 싸 갈기는 늙은 아저씨.


본디 하얬던, 낙서로 뒤덮여 있던, 혹은 누가 오줌을 싸 갈기던 개의치 않고, 담벼락 너머 푸르디푸른 잔디밭에서 아직은 짧은 다리로 달음박질하며 필드 이곳저곳을 누비는 활기찬 어린아이들과


한 블록 너머 거리의 체육관에서, 복싱 글러브를 낀 채, 영화 리얼 스틸의 주제가, 에미넴의 Till I Collapse에 맞춰 서로를 응시하며 고개를 까닥거리다가, 서로 간의 거리를 좁혔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복싱 꿈나무들.


그 옆 점포에서 손님 대접해야 할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식당 주인장과


아이들 돌보느라 물건 파느라 분주한 노점상 아주머니들까지.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 뭘까 저건 >


정체 모를 가면이 가득한 슈퍼 마켓 앞을 지나


너무나도 희미한 간장 향에 케첩을 몇 겹 둘러야 그나마 먹을 만해졌던 밍밍한 볶음밥을 한 그릇 비우곤


< 1. 파가 너무 크고, 2. 간이 너무 심심하다. >


정체 모를 길거리 음식을 손에 쥔 채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보고


< 아마 맛집인 듯하다? >


리듬에 몸을 맡긴 채 열심히 춤을 추는 아주머니들을 뒤로하고


< 아이들도 잘 노니 일석이조 아닐까 >


숙소에 도착해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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