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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Jun 05. 2016

그때 그 시절의 첫사랑.

아아, 사랑니가 첫사랑 앓듯 아프다는 건 순 거짓말.

사랑니가 있네요. 충치도 같이.
나중에 다시 치과에서 발치를 하던지 해야겠네요.


건강검진을 받는데 치과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입 안 저 구석진 곳에 사랑니가 있다고. 왼쪽이랑 오른쪽 윗편에 하나씩. 두 개나.


보통 사춘기 이후 17~25세 무렵에 나고 이때가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을 때며 특히, 새로 어금니가 날 때 마치 첫사랑을 앓듯이 아프다고 하여 사랑니,라고 이름 붙여졌다는 사랑니. 그 사랑니가 나도 모르는 새 두 개나. 입 안 가장 안 구석진 위치, 눈에 잘 띄지 않는 그곳에서, 조용히. 그런데 첫사랑이 그렇게 많이 아픈 것이었던가.



그 아이를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것은, 그러니깐 '처음'이었다.


그전까지는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글쎄, 없었다. 같은 반이었는지 기억나지도 않는데 어차피 한 학년에 두 반까지밖에 없는 조그마한 학교였으니 1반이 아니었으면 2반에 그 아이가 있었고, 나는 그 아이를 좋아했다.


그 아이를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아했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기엔 그 아이에 대해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러다 어느 날은 자물쇠로 채울 수 있는 비밀수첩을 하나 갖게 되었다. 비밀수첩이었으니 그 안에는 꼭 비밀을 써야만 할 것 같았다. 비밀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좋아하는 아이의 이름을 적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땐 우리에게 비밀이라면 누구를 좋아한다거나,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거나 하는 것들이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누구를 좋아했던가. 


별로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마침 그 아이가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조용히 그 아이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인지, 그저 그때 생각해보다가 그렇게 하기로 내가 정해버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비밀수첩에 그 아이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비밀수첩 자물쇠를 찰칵.  


그리고 그때부터 그 아이에게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았는데, 그저 같은 반인지 옆 반이었는지 수업을 같이 듣는 여자아이였는데. 바뀐 것이라고는 비밀수첩 한 장에 그 아이의 이름이 적힌 것뿐이었는데. 사랑니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그래서 아프거나 한 것도 없었는데, 사랑니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야 괜스레 입 구석에 신경이 쓰였던 것처럼.


수업시간에도, 쉬는시간에도, 등교시간에도, 하교시간에도 일부러 한번씩 그 아이를 보려고 꾹꾹 자리를 일어나고, 비 오는 날이면 일부러 그 아이와 같은 시간에 맞춰서 툭툭 문 밖을 나서고. 


그런데 동네문구에서 파는 비밀수첩의 보완성이 으레 그렇듯, 친구의 비밀은 꼭 한 번쯤 알고 싶은 어린 시절 교실의 풍경이 으레 그렇듯. 나의 비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물쇠를 찰칵, 열어버린 친구의 입을 통해서 여기저기로 퍼졌다. 그리고서 어찌된 영문인지 그 아이는 얼마 후에 전학을 가버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 비밀수첩도 사라지고, 그렇게 그 시절 내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소녀도 사라졌다. 특별할 것도 없고, 별로 짜릿할 것도 없었던 나의 첫사랑처음으로 좋아했던 그 시절의 소녀는 사라졌는데, 그렇게 가슴이 미어지게 아프거나,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시 원래대로.


많이 아플 수도 있는데, 조금만 참자.
금방 뽑을 수 있으니깐.
 

사랑니를 하나 뽑았다. 많이들 아프다는데, 그렇게 고통스럽다는데. 조금 겁을 먹었는데 마취를 하고서 덜렁, 사랑니 하나 뽑았다. 이제 마취가 풀리면 그렇게 짜증이 날 정도로 아프다는데 글쎄, 그닥. 먹기도 불편하다는데 나는 그날로 바로 원래대로.


아아, 사랑니가 첫사랑을 앓듯 아프다는 건 순 거짓말


이 아니라 첫사랑은 저마다 다 다른거니깐. 그러니깐 아플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거구나, 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내 첫사랑은 그렇게 아픈 기억이 없었으니깐. 사랑니는 첫사랑 같은 것이라니깐 사랑니를 하나 뽑아도 그렇게 아프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뭐, 그런 식으로 정리를 해버리면 되려나. 그러니깐 결론은 내 첫사랑도, 내 사랑니도 그렇게 아프진 않았다는 순전히 개인적인 이야기.


사랑니는 첫사랑 같은 것이라니깐
사랑니를 하나 뽑아도
그렇게 아프지 않을 수도.



대학 새내기 시절, '영글거림'이라는 별명과 발음이 비슷합니다.
'영재+오글거림', 어쩌면 이것과 느낌이 비슷할지도.
글을 쓰기도, 글을 그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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