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히말라야>를 보았다.
영화 <히말라야>를 보았다. 휴먼 감동 실화 <히말라야>는 히말라야 등반 중 생을 마감한 동료의 시신을 찾기 위해 기록도, 명예도, 보상도 없는 목숨 건 여정을 떠나는 ‘엄홍길’ 대장과 휴먼원정대의 가슴 뜨거운 도전을 그려낸 영화다. (네이버 영화 '히말라야' 줄거리 참조)
영하의 엄청난 추위, 몰아치는 눈바람과 같은 악조건 속에서 동료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산악인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언젠가 보았던 엄홍길 대장의 인터뷰 내용도, 산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보며 느꼈던 느낌도 아니었다. 영화 속에 직접적으로 나타나진 않았지만 신이 허락해야만 오를 수 있다는 히말라야의 설산을 등반을 준비하며 산을 오르기 전, 그들이 그들의 품 안에 챙겼을 비상식량에 대한 생각이다. 조금 더 엄밀히 이야기 하자면, 이 비상식량이란 도대체 언제 먹어야 하느냐에 대한 이야기이다.
동네 뒷산을 오를 때에도 우린 비상식량이란 것을 챙겨 집을 나서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설령 히말라야를 오를 계획이 없는 사람일지언정, 비상식량을 언제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래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해도 당신은 이미 산을 오르기로 했다면, 아마 초코바 하나 정도는 안주머니에 넣고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중학생 시절의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나는 중학생 때 산악사랑반이라는 동아리에 들었다. 한 학년이 40명정도였던, 그러니깐 전교생이 150명이 되지 않는 중학교에서 동아리란, 그저 동아리 이름과 조금이라도 그것과 관련된 선생님이 지도교사로 존재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중 산악사랑반으로 내가 들어간 이유는 같은 반 몇 명의 친구들과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동아리가 여기 하나뿐이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곳의 지도교사는 산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휴대폰 뒷자리 번호도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의 높이인 8848번으로 가입한, 학생주임 선생님이자 미술선생님이신 임선생님이셨다.
처음 몇 번의 동아리 활동 시간에 우리는 비가 온다는 이유이거나, 선생님이 다리를 다치셨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등산부인 산악사랑반의 활동을 교실에서 해치웠다. 그때 본 다큐멘터리엔 선생님께서 등장하셨는데 11자로 발을 자세하고 암벽등반을 하시는 모습이었다. 이것을 보고 우리는 선생님께서 산악사랑반의 지도교사로써의 자질이 엄청나다고 소근대곤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시간에 우린 진짜 산으로 동아리 활동을 나서게 되었다. 등산부 지도교사의 자질이 뛰어나신 미술선생님과 함께.
히말라야를 오르는 험준한 코스를 오르는 것이 아니었지만, 산을 오르는데 도무지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는, 가방 가득히 무언가를 싸오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싸오지 않은 맨몸으로 약속장소에 모였다. 그래도 각자 산을 오르면 배가 고플 것이라는 생각은 가득해서 '비상식량'이라는 이름으로 먹을 것 하나씩은 주머니에 꼭 챙겨 왔다.
이 모습을 보신 미술선생님께서는 가방 가득히 무언가를 들고 온 아이들의 짐을,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은 아이들의 품으로 조금 분배하시면서 물으셨다.
"너희들, 비상식량은 언제 먹어야 하는지 알고들은 있냐?"
조난을 당했을 때, 배가 너무 고플 때. 우리는 이렇게 답했지만, 선생님은 보통은 그렇게들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라며 고개를 저으셨다. 그리고 조금 생각해 보라고 하시면서 먼저 산을 오르기 시작하셨다. 우리는 어리둥절해 하며 그저 선생님 뒤를 쫓아갔다. 그리고 산 중턱에서야 선생님은 오르던 산을 잠시 멈추고 서 계셨다. 이제 챙겨 온 비상식량을 먹으면 될 때인가, 싶어서 선생님께 물으니, 그게 정말 비상식량이라면 지금 먹지 말고 다시 주머니에 집어 넣으라고 하셨다. 대신 선생님께서 선생님의 배낭에서 간식거리를 꺼내 우리에게 나눠주셨다. 그러면서 산 중턱까지 물음으로 남겨두셨던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셨다.
"그게 정말 비상식량이라면, 비상식량을 집에서 들고 나왔다가 집에 다시 들고 들어가서 먹는거야."
나는 그때 어렸지만, 선생님의 답을 듣고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엔 비상식량을 먹어야 하는 진짜 비상시란, 우리에게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님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며 무사히 집에 돌아와서 비상식량을 꺼내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그러니깐 선생님이 이야기 해주신 비상식량이란, 결코 비상식량이 되어서는 안된다, 는 일종의 산 사람들의 징크스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TV 다큐멘터리에도 나오신, 능력이 뛰어난 산 사람 중의 한명이라 믿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산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통하는 산 사람들만의 용어일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다른 산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어 그것을 확인해본 적은 없지만 아마 맞지 않을까.
영화 <히말라야>에선 몇 명의 팀원은 비상식량을 결국 산 위에서 먹고야 만다. 이제 본인에게 남은 비상식량은 더 이상 없다고 말하며. 다행히도 그들은 마지막 식량을 먹고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다. 싸늘하게 남은 무택의 시신을 찾지만, 끝내 집으로 데리고 가지는 못한다. 무택은 산 위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남는다. "그럼 산에서 내려와야지 거기에서 살껍니까? ㅋㅋ 허참" 이라고 말하던 그는 산 위에서 어쩔 수 없이, 죽은 채로 살아가게 된다. 영화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무택은 주머니 깊숙한 곳에 남겨뒀던 비상식량도 아마 마저 먹어버린 상태였을 것이다.
그러니깐 내가 이 영화 <히말라야>를 보면서 든 생각은 산 위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얼어버린 무택을 보며 "비상식량은 집에 돌아와 먹어야 하는건데......." 라는, 비상식량을 언제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내가 알고 있는 그 생각에 대한 생각인 것이다.
대학 새내기 시절, '영글거림'이라는 별명과 발음이 비슷합니다.
'영재+오글거림', 어쩌면 이것과 느낌이 비슷할지도.
글을 쓰기도, 글을 그리기도 합니다.
(Copyright ⓒ 2016 빛글로다(임영재). All Rights Reserved.)
페이스북 facebook.com/yjposts
인스타그램 instagram.com/lim6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