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안하게 되는 것'을 잘 하게 된다.
다리가 찌릿하게 아려오고, 숨은 턱밑까지 가득차도 나는 잘 달렸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요일에 관계없이 매일 달렸으니깐, 그래서 내 몸이 이 정도쯤은 달릴 수 있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깐. 그런데 이젠 달리는 게 벅차서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지도 않았는데도, 다리가 부서질 듯 아파오는 것이 아닌데도 달리질 못하겠다. 뭐지? 뭘까? 분명히 잘 달렸었는데....... 10km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는데.......
무엇이든 잘 하게 된 것들은, 생각해보면, 아니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어쨌거나 계속하다보니 잘 하게 된 것들이었다. 나에겐 달리기도 그런 것이었다. 빠르게 달리지는 못해도 계속해서 꾸준히, 하루에 부대 2바퀴에서 4바퀴, 짧게는 20여분에서 길게는 1시간씩 달리기. 처음엔 1바퀴도 미처 달리지 못했는데 마음먹고 달리기 시작해서 매일 달려보았더니 어느새 4바퀴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던 달리기. 그런데 그 달리기가 지금은 또 달려지질 않는다.
잘 하던 것들도, 잘 안하면, 잘 안하는 걸 잘하게 되는 걸까.
잠시 돌이켜보면 근래엔 매일 달리질 못했다. 5월에 2주간 휴가를 다녀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부대 안에서 매일 달리던 달리기였는데 휴가를 나갔더니 달리기 말고 다른 할 것들이 많았고 나는 달리질 않았다. 어쨌든 우리는 계속하다보면서 늘게 되는 거니깐 반대로 계속 안 하다보면 안 하게 되는 것이 늘게 되는 원리인지 휴가동안 달리지 않았다고 휴가를 마치고 부대에 복귀해서도 영 달리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이제 체력검정으로 3km 달리기를 해야 하는 터라 다시 달려보려는데 영 자세가 나오질 않았다. 어쨌든 그동안 달리질 않았으니 달리지 않는 폼만 늘어난 것이다. 엉성해진 내 자세도, 어설퍼진 달리기에 대한 내 느낌도 다 내 탓이다. 부쩍 더워진 날씨를 탓할 수도, 나보다 앞서 달리는 주변 사람들 탓할 수도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어디 달리기뿐이랴.
매일 한쪽의 글이라도 쓰겠다던 나는 어디로 사라지고 몇 주 동안에 이제야 억지로 하나의 글을 쓰는 내가 여기 있고. 연락도 잘 하겠다더니 수화기는 채 들지 못하는 나 역시도 여기 있다. 이것들 역시 다 내가 ‘잘 안하게 되는 것’을 잘하게끔 만들어버린 탓이다.
‘잘 하게 되는 것’의 역설.
우리는 늘 해오던 것들만을 잘 해낼 뿐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해오지 않은 것들은, 하지 않는 것을 잘 하게 되는 늪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이 늪은 ‘잘 하던 것’도 쉽게 빠뜨려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가 조금만 안 하게 되면 ‘안 하게 되는 것’을 잘해버리게끔 놓아주질 않는 게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매일같이 하는 ‘그것들’에 대해서만 전문가가 된다.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거나, 책을 읽다가 이내 스르르 잠에 빠져들어 버리거나 하는 것들도 그렇고, 다른 많은 ‘그것들’에 대해서도 그렇다. 우린 다 늪에 빠져버린 것이다. '잘 하게 되는 것'마저 '잘 하게 되는' 그런 늪 말이다.
물론 이 늪에는 반대로 ‘잘 안 하게 되는 것’을 ‘잘 하게 되는 것’으로 바꿀 수 있는 힘도 충분히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늪에서 빠져나오려거든 끊임없이 ‘계속해서’ 발버둥을 쳐야만 한다는 점이다. 그게 우리 삶에 알려진 ‘잘 하게 되는’ 방법 중 유일하게 정직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그것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그것을 해야만 한다. 조금씩이라도 그 늪에서 발버둥을 쳐야만한다. 다시 잘 달리고 싶다면 또 달려야할 것이고, 글을 잘 쓰고 싶다면 글을 써야만 할 것이다.
끊임없이 '계속해서' 말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늪에서 빠져나오려거든 끊임없이
‘계속해서’ 발버둥을 쳐야만 한다는 점이다.
대학 새내기 시절, '영글거림'이라는 별명과 발음이 비슷합니다.
'영재+오글거림', 어쩌면 이것과 느낌이 비슷할지도.
글을 쓰기도, 글을 그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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