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잊지 말아요.
달그닥, 달그닥.
궁금한 게 있는데 왜 구두에서 그런 소리가 들리는 거야?
...?
무슨 소리 말씀이십니까?
구두에서 소리가 들린다, 고 했다. 군생활하면서 이병 때부터 말년 병장 때까지 신고 있는 구두. 달그락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다른 사람들에게선 안 들리는데 유독 나에게서만. 그러고 보니 조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구두에서 소리가 나긴 났었다. 그런데 그 소리는 으레 모두의 구두에서 들리는 소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니. 어째서 그렇게 된 걸까. 우선은 '달그닥, 달그닥.' 하는 소리를 그대로 발걸음마다 남기며 다녔다.
군생활의 초반인 이병 때부터 군생활의 막바지 병장 때까지 신고 있는 구두, 구두를 신고 걸을 때면 원래 소리가 난다. '또각, 또각.' 앗, 그런데 내 구두에서 들리는 소리는 '달그닥, 달그닥.'
소리가 다르잖아?! 한동안은 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서 다녔다. 구두에서 소리가 날 수도 있지 뭐.
이병 때는 구두가 반짝반짝 윤이 날 정도로 매끈하고 깨끗했다. 그런데 매일매일 구두를 신고서 사무실로 출퇴근을 하고, 작업이 있을 때면 책상 밑이건 사다리 위건 구두를 신은 채로 땅을 기고 하늘을 올라타다 보니 점점 구두의 광택은 사라졌다. 여기저기 긁혀 상처가 나고 밑창이 떨어져 접착제로 바르길 몇 차례, 그런 식으로 연명하고 있는 구두였다. 구두 사이사이 구멍 정도야 그냥 우습게 넘기는 정도가 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
아니 어쩌면 구두에서 나는 소리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상처 나고 밟히는 구두가 더 이상 못 참고 내는 비명 소리려나, 잠깐 생각해봤다가 그러기엔 너무 '달그닥, 달그닥.' 거려서 도로 그 생각은 집어넣고.
달그닥, 달그닥.
구두를 신고 걸을 때면 이리도 소리가 나니 내가 향하는 곳은 발걸음보다도 항상 소리가 먼저 도착했다. 어린아이들이 신는 뾱뾱, 거리는 소리가 나는 운동화처럼. TV 예능프로그램 속 방울 달린 운동화처럼.
그러다 하루는 구두를 벗어 들고 뒤집어보았다. 그랬더니 글쎄 돌멩이 여럿이 또르르, 하고 굴러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오른쪽 구두도 그렇고, 왼쪽 구두도 마찬가지. 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두었던 구멍들로 어찌 된 영문인지 돌멩이들이 하나, 둘 비집고 들어갔고 내가 걸을 때마다 그 틈 안에서 서로 좋아라 쿵짝쿵, 쿵짝쿵. 달그닥, 달그닥.
전역을 2주 남긴 시점에서야 알게 된 구두의 비밀. 어린아이들이 신던 뾱뾱거리는 운동화 마냥 내 군생활 동안의 걸음마다 함께 돌멩이들이 부딪히며 '달그닥, 달그닥.'
나를 잊지 말아요.
이 소리는 구두가 아프다고 내는 비명소리도 아니었고, 일반적인 구두에서 나는 소리도 아니었다. 23개월의 군생활 동안 함께 해온 구두가 유명 노래의 가사처럼 '나를 잊지 말아요.' 하며 무심했던 내게 끊임없이 내지르던 소리였던 것. 그러했으니 다른 아이들에게서는 들리지 않지만 유독 나에게서만, 걸음을 걸을 때마다 '달그닥, 달그닥.' 소리가 났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참에 다 떨어져 가는 구두를 보면서, 달그닥거리던 소리를 떠올리면서 23개월 간의 군생활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본다. 이 구두를 신고서 깨진 날도, 다친 날도, 기쁜 날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달그닥, 달그닥.
쿵짝쿵, 쿵짝쿵.
대학 새내기 시절, '영글거림'이라는 별명과 발음이 비슷합니다.
'영재+오글거림', 어쩌면 이것과 느낌이 비슷할지도.
글을 쓰기도, 글을 그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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