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각자 서로 다른 부분을 접었다.
한 명의 저자가 책을 펴내면 몇 명이 되는지 모를 수의 독자들이 그 책을 읽는다. 한 권의 책 안에 들어있는 수천 혹은 수만 개의 문장들이 독자들의 수만큼 혹은 그 이상만큼 읽힌다. 그렇게 읽히는 와중에 단 얼마만큼만의 문장들만이 독자들의 기억 속에 남는다. 나머지는 잊힌다. 때때로 나는 어떤 문장들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지가 궁금했다. 어쩌면 한 사람이 책을 읽으며 남겨둔 문장들은 다시 그 한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나에게 남은 문장은 무엇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남은 문장은 과연 어떤 것들일까.
그런 의미에서 지난 휴가 기간에 구매한 한 권의 책은 의미가 깊다. 군인인 나는 휴가나 외박을 나오면 꼭 서점에 한 번씩 들르는데, 그렇다고 항상 책을 사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군인으로 한정된 공간에만 있으며 사회와는 격리된 생활을 하는 동안 끊임없이 사회 속에서 사람들에게 읽혔을 책들이 얼마만큼 바뀌는가를 보는데서 격리된 생활을 하는 동안 묶여있었던 사회성을 해방시킨다고나 할까나. 뭐 그런 종류의 변태적인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간혹 신간도서의 유통이 원활한 일반 서점이 아닌, 헌책방이나 독립서점을 가는 경우에는 '얼마만큼 새로운'이 아닌 '얼마만큼 색다른'(여기에서 '색다른'이란 '종류가 다르다'는 의미와 말 그대로 '색이 다르다'는 의미로, 이는 일반적으로 헌책방에서 보게 되는 헌책방의 경우가 해당된다.) 책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지난 휴가 때는 북촌의 한 독립서점을 갔으니 '얼마만큼 색다른' 책에 대한 관심으로 서점을 둘러보고 있었다.
서점의 규모가 크지 않았으므로 서점 전체를 한 바퀴 훑을 수 있었는데 그런 도중에 서점의 책장 한쪽에서 나는 초록빛이 감도는, 손바닥 크기의 책을 하나 발견했다. 처음 보는 출판사, 처음 보는 작가, 게다가 살짝 읽어본 몇 문장만으로 판단하건대, 처음 보는 느낌의 책이었다. 책장을 몇 장 넘기면서 대략적으로 책을 훑어보는데 간간히 책의 한 쪽 귀퉁이는 접혀 있었다. 서점을 들르기 전 날에 서울도서관에서 열렸던 한 행사에서 서점의 주인장과 대화를 하며 들었는데, 서점 주인장은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발견하면 해당하는 그 페이지를 살짝 접어둔다고 하였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귀퉁이가 접힌 책 한 권을 집어 든 것이었다. 책의 느낌도 좋았고, 서점의 주인장은 이 책을 읽으며 어떤 문장들을 남겼을지 궁금해서 곧장 책을 구입하려 하였다.
상상해보건대, 주인장은 몰래 쓴 연애편지를 당사자도 아닌 다른 친구들이 훔쳐 읽고는 당당하게 내밀며 돌려주는 듯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책을 구매하려 하자 주인장은 다소 당황했다. 상상해보건대, 주인장은 몰래 쓴 연애편지를 당사자도 아닌 다른 친구들이 훔쳐 읽고는 당당하게 내밀며 돌려주는 듯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책에 메모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밑줄이 그어져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주인장만의 방식으로 책에 표시가 되어 있었으니깐. 그리고 나는 그 표시를 탐하는 도둑. 하지만 정식으로 대가를 지불하려 하였으니 나는 당당했다. 그리고 그렇게 그 책을 구매했고, 읽었다. 주인장은 아래쪽 귀퉁이를 접었고, 나는 위쪽 귀퉁이를 접었다. 그리고 나는 주인장과 나는 전혀 다른 사람임을 깨달았다. 책은 전혀 다른 곳에서 접혀 있었으니깐.
그리고 나는 주인장과 나는 전혀 다른 사람임을 깨달았다.
책은 전혀 다른 곳에서 접혀 있었으니깐.
사람들은 서로 같은 것을 읽고도 다르게 기억한다. 그래서 내게 남은 문장과 다른 사람에게 남은 문장은 다르다. 그걸 깨닫고는 온전히 나의 문장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책 읽기는 '남이 읽은 것'을 읽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읽을 것'을 읽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를 느낄 수 있었다는 것으로 나의 지난 휴가 때 구매한 이 한 권의 책은 의미가 참 깊다, 고 말할 수 있다.
대학 새내기 시절, '영글거림'이라는 별명과 발음이 비슷합니다.
'영재+오글거림', 어쩌면 이것과 느낌이 비슷할지도.
글을 쓰기도, 글을 그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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