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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Aug 03. 2019

일단 오늘, 주말인데도 출근을 했다.

이렇게 주말을 보내기엔 내가 너무 하찮게 느껴졌다.

월화수목금요일, 이어지는 토요일. 평일을 견디는 힘은 토요일에 있다. 아침에 시간 맞춰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주말, 회사에 나갈 필요 없는 아침. 그런 토요일에 회사로 출근했다. 딱히 복장에 규칙이 있는 회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트레이닝복을 입고 출근하기란 쉽지 않은 직장인. 오늘은 트레이닝복 차림이다. 일단 오늘, 주말인데도 출근을 했다.


꽤 오래전부터 작업실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기도, 그리기도 합니다.'라지만 통 그럴 공간이 없어서 말이다. 작업실이 있다면 어떻게든 작업실로 나가 글을 쓸 것만 같아서, 사람들이 열광하는 글을 뽑아낼 거란 기대감에 작업실을 갖고 싶다 생각했다. 그런데 가난한 월급쟁이는 도통 작업실을 구할 여유 자금과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래서 아직까지 작업실을 구하지 못했다. 여러 사람과 함께 공간을 이용하는 코워킹 공간도 찾아봤지만 월세를 따박따박 내려니 집이랑 이중으로 월세가 나가는 기분에 선뜻 결제하기 겁났다. 그나마 퇴근 후에 카페를 가거나 도서관에 가서 자리를 잡아 신문을 읽거나 글을 썼다. 그마저도 조금만 시간이 어그러지면 하루의 여유 시간이 훅 지났다.


그렇게 평일이 지나고 토요일이 오면, 토요일이 오면, 그때부터는 침대를 벗어나기가 여간 쉽지 않아 침대 바로 옆의 책상으로도 나아가지 않았다. 배고픔도 주말의 게으름을 이기긴 힘들었다. 아침에 습관적으로 일찍 눈을 떠도 음식을 해 먹기엔 굳이 배를 채우지 않고 하루를 보내도 되는 주말. 다시 눈을 꼬-옥 감았다. 꿈속에서라면 배가 고프더라도 괜찮았다. 


그러기를 몇 개월. 이렇게 주말을 보내기엔 내가 너무 하찮게 느껴졌다. 일이 없다면 한없이 게을러지는 나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원인을 파악하고, 원인을 해결하면 될 일. 주말마다 한없이 게을러지는 나는, 평일과 무엇이 다르기에 이렇게 게으른지를 생각했다. 어려울 것은 없었다. 주말마다 나는 '집에서' 게을러졌다. 혹자는 평일에 출근하며 다 써버린 에너지를 채우려 집에서 한없이 게을러져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렇게 몇 개월을 해보니, 그 방식은 음, 그냥 그랬다. 물론 무진장 편하기는 했지만. 


'집에서' 게을러지는 나를 위해서 일단 오늘, 주말인데도 출근을 하기로 했다. 작업실이 없으니 일단 회사로. 시간은 이미 오전이 다 지난 정오였다.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에도, 대학생 때도, 군대에서도 주말에 나섰다. 평일에 내가 가던 그곳으로. 주말에 정독실(자습실)로 나서면 새 소리가 먼저 나를 반겨줬고, 조용한 학교는 마치 내가 점령한 듯한 기분이었다. 수업이 없는 대학교에서 빈 강의실 탐방은, 잠깐 동안 맡았던 학교 홍보대사 활동에 큰 도움이 되었다. 군대에서는 운 좋게도 다른 병사들은 들어올 수 없는 전산병들만의 공간이 있어서 주말에 그곳에 있어도 별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리고 오늘은 회사로 출근했다.




회사란, 정직원의 책상이란, 그만큼의 내 공간이 확보되어 있는 공간이라서 이 공간을 간섭하는 사람만 없다면 꽤나 쾌적한 공간이었다. 자취방 책상이랑 비교해서도 말이다. 마침 오늘은 회사에 출근한 다른 직원이 없었다. 특히 항상 야근하시던 팀장님과 과장님이 없었다. 그래서 자유롭게 활보하기 시작했다. 내 책상 위에서, 내 컴퓨터로 필요한 작업을 하는 것이다.





유선 이어폰을 챙겨 왔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가방 속에는 무선 이어폰이 있었다. 그런데 데스크탑은 블루투스 기능이 없었다. 그래서 블루투스 수신기를 사서 컴퓨터에 꽂았다. 


밖에서는 시위하는 소리가 가득했지만, 유튜브로 음악을 틀고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아 나만의 소리로 이 공간에서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나만의 작업실은 없다. 그 핑계로 이렇다 할 작업물을 못 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주말의 회사란, 바쁠 때가 아니라면 꽤 쾌적하게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물론 내 자리를 지켜볼 수 있는 상사가 없어야 한다) 내일이 되면 다시 게을러져서 집 밖을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일단 오늘은, 주말인데도 출근을 했다.


덧. 내 책상 주변의 전등의 스위치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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