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이 지났다. 거짓말을 해도 가볍게 넘어간다는 만우절은 거짓말처럼 아무런 거짓말이 없었다. 거짓말 할 기색을 찾을 수 없는 거짓말 같은 날이었다. 딴은 대학생이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대학 수업을 들었고, 딴은 장난이라며 진심을 섞은 고백을 했다. 그리고 딴은 다른 세상처럼 거짓말 없이 모니터를 쳐다보며 회사 생활을 했다.
거짓말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몇 가지를 언급하자면 이렇다. 한 명을 속이기 위해 시작한 거짓말이 그 한 명을 속이기 위한 다른 여러 명을 속이는 연쇄작용을 일으키는가 하면, 속일 생각이 없다가도 누군가 지레짐작해버린 나의 행동 때문에 거짓말이 생기기도 한다. 전자는 거짓말 하는 사람의 의도가 뻔히 보일 때가 있지만, 후자는 거짓말 하는 사람의 의도가 없는 상태로 거짓말이 시작되는 탓에 상대방은 순수하게 진심으로 느끼기도(속아버리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처럼 순수하게 모두를 속인 적이 있는데, 대학교 1학년 때다. 동기들과 함께 MT를 가기로 했고, 한 달 전부터 MT 컨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중 나는 마니또 컨텐츠를 담당했다. 약 한 달 동안 마니또에게 선물을 주거나 미션을 수행하고, 최종적으로 MT 당일에 마니또를 발표하는 일정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마니또를 뽑는 날이었다. 한 명씩 마니또가 적힌 쪽지를 뽑고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나 역시 마니또가 적힌 쪽지를 하나 뽑았다. 그리고 실망하며 탄식을 내뿜었다. 왜냐하면 당시에 관심 있던 친구가 아닌 동기 형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뽑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다른 동기가 목격했다. "너, 너 뽑았나 보구나."
엇, 그건 아닌데. 내가 뽑은 마니또는... 이라고 다 말할 순 없으니, "어? 어..어..."라고 얼버무렸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나는 나를 뽑은 마니또가 되기로 하였다. 대대적인 거짓말의 시작.
나는 나를 뽑은 마니또인 걸 들켜버렸기(그렇게 친구들이 생각했기) 때문에 내 마니또를 숨길 필요가 없었다. 40여 명의 쪽지 중에 단 한 사람, 40분의 1의 확률로 본인을 뽑은(척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 나는 더욱 당당한 마니또 담당자가 되었다. 대놓고 다른 친구들의 마니또 선물을 전달하기 시작했고, 대놓고 친구들의 고민을 들어주었다. 어차피 친구들은 내 마니또가 나이기(나로 믿었기) 때문에 굳이 자기 마니또를 숨길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나를 뽑은 마니또가 드러나지도 않았다. 그 덕에 나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나를 뽑은 마니또가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나의 마니또에게도 대놓고 선물을 전달했다. 마치 다른 마니또가 선물 전달을 부탁한 것처럼 포장을 하고서. 가장 확실하게 마니또의 반응을 살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지나고 MT를 가서 마니또를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물론 그 발표 담당자도 나였다. 이미 대부분의 마니또를 알고 있었고, 나의 마니또는 마지막에 배치하고서 발표자료를 만들었다. 발표 자료는 마니또 미션 중 하나였던 '마니또와 함께 사진 찍기'의 사진으로 채운 PPT 슬라이드였다.
한 명, 한 명 마니또를 발표하였다. 이미 들킨 친구들도 있었고, 서로 짐작만 하고 있던 친구들도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등장할 때는 놀라워 하하호호 웃었다. 그리고 마지막 슬라이드에서 나의 마니또를 발표하였다. 두구두구두구두구. 아직 언급되지 않던 김.O.O.! 당연히 내가 나를 뽑은 자체 마니또라고 생각하고 있던 동기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뒤이어 찾아오는 배신감. 자체 마니또인 줄 알고 다 털어놓았던 동기들이었다. 그렇게 동기들의 가벼운 질타에 더해 역대급 마니또였다는 평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마니또인 형은 마니또 발표 이후 벙쪄서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선물을 줄 때마다 형을 좋아하는 여자 동기인냥 선물을 준비하고, 멘트를 전달했었다. 내 마니또였던 형이 기대가 컸던 모양이지...... 뒤이어 나를 뽑은 마니또도 등장했다. 과활동을 하지 않는 누나였다. 초반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던 누나는 중반 이후부터 나에게 선물을 전달했고, 그 절묘한 타이밍 덕에 만우절처럼 마니또 컨텐츠를 운영할 수 있었다. 40여 명의 동기들을 속이면서.
완전 처음에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순간적인 친구의 지레짐작 덕에 한 달짜리 거짓말을 하였다. 심지어 그 대상은 40여명. 대형 거짓말이었다. 다행히 순수했고, 악의는 없었고, 피해도 없었다. 아니, 그 형의 순수한 마음을 방해했다면 피해라고도 할 수 있으려나. 어쨌든 그 한 달 동안 나는 거짓말 같은(실제로 거짓말이었던) 자체 마니또였다. "그래요. 제가 바로 그 저를 뽑은 마니똡니다."
by. 에라이 / 4월 1주차에 작성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