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이 비 맞고 싶다.”
가만히 창 밖을 바라보던 A가 중얼거렸다. 시선은 장대비가 쏟아지는 창밖을 향해 있었고 말끝은 흐렸으므로 분명 누구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혼잣말치고는 데시벨이 꽤 높아 내 귀에 또렷이 박혔다. 비 내리는 날씨를 너무나도 싫어하는 나는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곧바로 A에게 되물었다.
“갑자기 비가 왜 맞고 싶은거야? 처량해지고 싶니?”
내가 그의 말을 들었다는 사실에 놀랐는지 A는 화들짝 나를 돌아봤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커피잔에 떨구며 미소를 지었다.
“아니 그런건 아니고. 비를 맞으면 기분이 좋아. 뭐랄까,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들어. 사람들이 비를 피하려고 하는 이유를 혹시 생각해봤어? 다들 뭔가를 지키기 위해 비를 피해. 입고 나온 옷을 최대한 뽀송뽀송하게 유지하기 위해, 가지고 나온 책과 종이를 젖게 하지 않기 위해, 혹은 비를 쫄딱 맞은 나를 한심하게 쳐다볼 누군가의 혀차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근데 있지, 한 번 비를 맞기 시작하면 그 모든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어. 나를 치장하기 위한 옷도, 내가 꼭 지켜내야 하는 어떤 물건도,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하는 지겨운 강박관념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게 되어버리지. 그래서 난 여행을 다닐 때만큼은 우산을 챙기지 않아. 예고 없이 찾아오는 비를 그대로 다 맞기 위한거야. 그렇게 한 차례 비를 왕창 맞고 나면 내가 진짜 자유롭다는 사실을 알게 돼. 모든 구속에서 풀려난 한 마리의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어보는거지. 꽤 근사한 경험이야.”
“그럼 지금은 왜 당장 저 빗속으로 나가버리지 않는 거야?
“지금 난 묶여있잖아. 비로부터 지켜내야할 것들이 내 품에 강제로 안겨져있어. 자유롭지 않아.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빗속으로 뛰어들어 자유를 만끽할 수 없지. 그럴 수가 없는거지, 아무래도.”
A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장마가 있는 초여름이랬다. 그에게는 자유의 상징인 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날들이 계속되는 시간이 곧 행복이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여름이 좋은 이유’에 장마가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때 나는 처음 알았다.
by. 승수 / 7월 5주차에 작성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