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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Nov 09. 2019

멍 투성이 글 한 편을 쓰는 데는 4시간이 걸린다.

/ 에라이

깊은 조사가 필요한 글쓰기가 아닌 경우라면, 평균 4시간에 한 편의 글을 쓸 수 있다. 지금까지 '깊은 조사'가 필요한 경우의 글쓰기는 사실상 없었기에, 대부분의 글쓰기는 4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계산이다. 단, 이 4시간은 마음 잡고, 거기에 자리까지 잡아서 4시간 동안 글 쓰는 작업을 한다는 가정에서 나온 계산. 그마저도 4시간의 대부분은 글쓰기가 아닌 것에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내 주관적인 통계의 결과다.


그렇다면 4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4시간의 절반 이상을 '멍' 때린다. 그렇다고 노트북의 빈 화면에서 깜빡거리는 키보드의 그것(검색해봤더니 '커서'라고 부르는)을 바라보며 멍하니 가만히 있지만은 않다. 대신에 글을 쓰다가 샛길(SNS를 본다거나, 웹서핑을 한다거나)로 빠져 시간을 보내다가, 샛길에서 글쓰기로 돌아와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벙쪄있는다. 그 시간을 합쳐서 '멍' 때린다. 그리고 그때마다 지금까지 얼마만큼의 글을 썼는지, 어떤 내용으로 글을 썼는지 되새김질한다. 쓰고 있는 글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본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되새김질하는 시간이 결코 적지 않다. 내가 쓴 글이지만 초두는 어떤 문장으로 시작했는지, 그다음 문장은 어떻게 이어 나갔는지, 내가 지금 멈춰 있는 문단은 어떤 내용을 말하려고 했는지를 반복해서 읽는다. 샛길로 빠졌다가 돌아올 때, 글을 쓰다가 진도가 도무지 나가지 않을 때, 쭈욱 이어서 글을 쓰다가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 감이 잘 잡히더라도 그냥 한 번씩....... 같은 곳을 반복해서 읽는다. 같은 곳을 반복해서 때리면 그 자리에 멍이 생기는 것처럼 읽었던 글을 다시 읽노라면 이따금씩 글에도 멍이 생긴다. 아프지만 지금 당장 빼낼 수 없는 '멍'처럼 지금 당장 빼낼 수 없지만 옥에 티처럼 버티고 있는 문장들이 있는 것이다. 어울리지 않지만 지금 그 문장을 빼려고 애쓰더라도 당장 대안을 찾을 수 없는 문장은 '시퍼런 멍' 같은 존재들이다.


시간이 지나면 시퍼런 멍은 없어진다. 우리는 그걸 '멍이 빠진다.'라고 표현한다. 멍이 빠지려면 필요한 것은 언제나 '시간'이다. 그러기엔 4시간은 턱 없이 부족하다. 4시간 동안 써낸 한 편의 글은 결국 멍이 빠지지 않은 채로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초고는 언제나 '멍 투성이'다. 글이 나온 직후라면 그 멍은 더 선명할 수밖에. 얼음으로 찜질을 하지도, 병원에 가지도 않는 이상은 그저 멍이 빠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멍하니 기다리는 일은 결국 '멍'을 빼는 가장 확실하고 기초적인 방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멍 투성이다. 멍 투성이 글이라도 하나 쓰는 데는 4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그렇게 쓴 멍 투성이 초고는 그대로 묵힌다. 기다린다. 나중에는 멍이 빠지리라는 기대감으로. 시간이 지나 다시 이 글을 본다면 '시퍼런 멍'의 색이 빠지고, 멍을 빼고 대신할 수 있는 문장이 있으리. 그런데 그때가 지금은 아니다. 허니 기다린다. 멍하니.


결론적으로, 멍 투성이 글을 한 편 쓰는 데  4시간이 걸릴 뿐이다.


by. 에라이 / 9월 1주차에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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