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과 계절 사이엔 묘한 시간이 흐른다. 사람들은 흔히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네 가지의 계절로 1년을 구분한다. 하지만 이 계절들은 칼로 무를 자르듯 딱 떨어지지 않아서 그 사이에는 언제나 회색지대가 있기 마련이다. 봄과 여름 사이엔 봄도 아니고 여름도 아닌 것이 들어있고, 여름과 가을 사이에는 더운 것 같으면서도 선선한 요상한 계절이 존재한다. 가을과 겨울 사이에는 시원함과 추움 사이의 알수없는 시간대가 끼어있으며, 겨울과 봄 사이엔 생명의 죽음과 태동이 동시에 느껴진다.
언젠가 친구가 나에게 ‘끼인 계절’ 중에 무엇이 가장 마음에 드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까지 나는 태어나서 ‘끼인 계절’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들어봤어도, 가장 좋아하는 ‘끼인 계절’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은 처음이라는 의미로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무언가가 끝나는 동시에 다른 무언가가 시작되는 계절. 그 특이한 매력 때문에 끼인 계절을 기다린다는 말을 친구가 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어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봄과 여름 사이를 좋아하는 것 같아. 그러니까 굳이 한 단어로 말하자면 늦봄 내지는 초여름이랄까?”
겨우내 꽁꽁 얼어있던 생명의 기운이 봄을 맞아 슬슬 기지개를 펴다가 여름에서야 그 기운을 온전히 편단다. 그리고 늦봄, 아니 초여름은 그 생명의 기운이 최고조로 발산되기 바로 직전의 순간이다. 1년 중 최고의 하이라이트를 마주하기 바로 직전 나를 찾아오는 기대감과 행복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다, 라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그가 좋아하던 계절이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왔다. 따뜻한 온도와 선선한 바람이 잠자는 생명을 깨우는 봄이 어느덧 끝나가고, 모든 생명들이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한껏 뽐내는 여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지금 그 친구는 집 베란다 창문을 열고 초여름의 기운을 느끼며 행복해하고 있을까? 충분히 만끽하기에 너무나 짧기만한 이 시간을 온전히 누리고 있을까?
초여름의 계절감이 충만한 친구의 얼굴을 오랜만에 보고싶다.
by. 승수 / 7월 1주차에 작성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