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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Sep 23. 2020

히비스커스(섬세한 아름다움)

가을_11월 10일의 탄생화

피아노 연주를 듣는다. 한글이나 영어처럼 표면화된 언어로는 해석되지 않는 그 소리를 듣는다. 대개의 경우 클래식이다. 음악을 전공 했거나, 연주곡에 관심이 있었다면 지금 듣는 곡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연주자가 전하고자 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었겠다. 하지만 고작해야 예능이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으로만 곡을 들어보았던 탓에 지금 흘러나오는 곡이 무엇인지 모른다. 연주자의 감정도 짐작하지 못한다. 그저 이 음악들은 가사가 없으니 해석되지 않는 생(生)의 언어로 다가올 뿐이다.


그래도 조성진이나 손열음 같은 피아니스트의 이름을 안다. 얼마 전에 읽은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의 한 챕터에서 주인공이 조성진의 연주회 티켓을 티켓팅하려는 장면이 있었고, 유재석의 <놀면 뭐 하니?>에선 손열음과 김광진이 출연해 피아노곡을 연주했다. 대학 글쓰기 수업의 읽을거리 중 하나가 손열음의 글이었고, 슈만의 '환상소곡집'에 얽힌 이야기인 덕에 슈만의 '환상소곡집'도 들었다. '환상소곡집'을 들으며 각자 자신의 글로 표현했는데, 그리 좋은 점수를 받진 못했다. 음악의 언어를 표면화된 언어로 옮기는 일이란 쉽지 않았다. 그리곤 클래식 음악을 듣는 일도, 이를 글로 표현하는 일도 없었다.


그러다 요즘은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회사에선 이어폰을 끼고, 집에선 빔프로젝터에 영상의 띄어서 듣는다. 주로 피아노 연주다. 유튜브가 추천해주는 연주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가사는 없어도 연주자의 표정이나 팔에 들어가는 힘 따위로 곡의 분위기를 짐작한다. 거기에 상상력을 더한다,고 말하지만 거진 멍하니 영상을 지켜볼 뿐이다. 연주하는 동안의 시간을 흘러 보낼 수 있으며, 가사가 없으니 따로 입력해야 할 정보가 없다. 순수하게 이 시간을 지낸다. 생의 언어이며, 라이브한 시간이다. 나이브한 지금을 채우는 나이스한 방식, 이라 자조한다. 그러는 동안 피아니스트는 섬세하게 건반을 두드리며 곡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키보드 자판을 보지 않고 두들긴다. 내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려 한다.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키보드를 쳐대기도 한다. 피아니스트들은 피아노 건반을 보지 않고 누른다. 처음엔 악보를 보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악보를 보지 않고도 곡을 연주한다. 거기에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감정을 담는다. 한 곡에 온전히 자신을 담는 모습은 경이롭다. 삑, 하는 미스 터치를 하지 않고 섬세하게 건반을 하나씩 두드리는 일. 실은 그게 제대로 연주를 하는 것인지, 미스를 낸 것인지 모르는 나는 그것마저 멍하니 바라본다. 그리고 이를 키보드로 풀어 본다. 미스인지 아닌지는 모르는 채로 일단 한 단어씩, 한 문장씩.


_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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