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_11월 29일의 탄생화
여느 일요일처럼 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학교 형들이었다. 점심을 먹었는지 물었고, 점심을 먹을 것인데 나오지 않겠느냐 물었다. 점심을 이미 거하게 먹은 후였지만 나가기로 했다. 점심 먹을 때 옆에 있겠노라고, 바람이라도 쐬겠노라고. 얼마 만의 일요일 외출인가 싶었다. 마침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런데 하필 1인당 값을 지불해야 하는 떡볶이 집었다. 너무 배가 부른 탓에 떡볶이를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수저도 들지 않았다. 고작해야 탄산음료를 한 잔 마셨다. 그래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떡볶이 값은 내야 했다. 앞에 앉은 형이 9,800원짜리 음료수라며 웃었다. 떡볶이는 입에도 대지 않았지만 이건 자릿값이라며 나도 웃었다. 예전의 나였으면 이미 배가 부른 상태라고 할지라도 떡볶이 국물에 푹 담긴 라면을 푹 집어서 그대로 먹었을 것이었다. 먹지 않은 음식값을 내야 한다는 것을 아까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늘의 개척 1.
비가 내렸다. 형들은 우산이 없었다. 마침 집이 가까우니 우리 집에 들러 우산을 빌려 가라고 했다. 형들은 그러겠다고 했다. 조금씩 비를 맞으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했다. 우산을 빌리기 전에 형들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요모조모를 살폈다. 그중 한 명이 정식으로 집들이 올 때는 조명을 사서 오겠노라 말했다.
혼자서 그래도 깔끔하게 잘 정리해서 산다고 말했다. 그리고 잠시 동안 소화를 시키다 우산을 받아 나갔다. 결과적으로 빌려준 우산 2개가 모두 상태가 별로였다. 형들에게 우산을 쓰고 버리라고 일렀다. 이사 전부터 가지고 다니던 이상한 우산 2개를 오늘에서야 처분했다. 오늘은 이사 한 뒤에 처음으로 외부인이 들어온 날이었다. 오늘의 개척 2.
형들을 보내고 친구가 자리 잡고 있는 카페로 향했다. 이사하기 전에 살았던 동네 근처였다. 운동 삼아 몇 번 가봤던 위치였다. 그런데 그 사이로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 보니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비가 내린 뒤의 거리였고, 골목이었다. 마치 애니메이션 속에서 주인공이 덤불을 하나 지나면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것처럼 다른 세계로 빠져든 느낌이었다. 너무 오래간만에 집을 나선 탓인지, 비 온 뒤의 골목의 모습이 낯설었던 것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새롭게 느껴지는 골목이었다. 그 골목 바로 앞에 카페가 있었다. 카페에 들어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간만의 외출이라고 말했다. 주말마다 집에만 있었는데 이렇게 나오니 좋다고, 나오기만 한다면 카페에서 멍 때리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집에서 나가기. 그리고 카페로 나, 가기. 다음 주도 나갈 것인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오랜만에 카페에서 보낸 일요일. 그 시간에 방 안에서 방황하다 낮잠이나 잤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으니 이게 오늘의 개척 3.
_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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