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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꽃 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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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Sep 24. 2020

떡갈나무(붙임성이 좋다) - 떡갈나무와 밤나무

겨울_2월 19일의 탄생화

오랜 옛날, 어느 마을 어귀에 떡갈나무와 밤나무가 함께 오랫동안 마주 보며 서 있었다. 두 나무 모두 동물들에게 보금자리를 만들어주고, 넓은 잎으로 그늘을 만들어주며, 도토리와 밤알을 주고 마을 사람들과 동물들에게 사랑받았다. 새들은 두 나무 가지에 앉아 노래 부르며 그들을 축복했고, 마을 사람들은 겨울에는 옷감을 둘러 얼어 죽지 않게 해주었다. 


하지만 밤나무는 날이 갈수록 마을 사람들과 동물들이 자신의 은혜를 모른다는 생각에 빠져 괘씸하다고 느꼈다. 자신이 주는 것에 비해서 받는 것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밤나무는 새들이 가지에 둥지를 지으면 가지를 흔들어 떨어뜨렸고, 꽃향기를 고약하게 만들었으며, 밤알 주위에 가시를 달아 떨어뜨렸다. 둥지를 잃은 새들은 떡갈나무로 달아났다. 밤꽃이 피어나면 사람들은 밤나무를 피했다. 밤알이 열릴 때면 아이들은 밤나무에 더 이상 매달리며 놀지 않았다.


하지만 떡갈나무는 항상 자신이 주는 것에 비해 과하게 사랑받는다고 느꼈다. 밤나무에서 도망쳐 나온 새들에게 자신의 가지를 내주었고, 꽃향기는 향기롭게 가꿨으며, 도토리는 언제나 사람들과 다람쥐에게 나누어 주었다. 새들은 떡갈나무 가지에 머무르면서 떡갈나무를 갉아먹는 곤충을 잡아먹었다. 사람들은 떡갈나무 꽃이 필 때면 축제를 열었다. 아이들은 떡갈나무 가지에 매달리며 자연스럽게 가지를 쳐주었다. 도토리가 열리면 다람쥐가 배부르게 먹고 남는 도토리는 땅 속에 감추어 다음 봄에 새싹이 돋도록 도와주었다.


몇 해가 지난 뒤, 밤나무는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게 되었다. 새들이 떠나자 온갖 병충해에 걸렸다. 밤꽃이 피면 사람들은 꽃을 다 떨어뜨려 태웠다. 가지는 너무 많아 살짝 일렁이는 바람에도 뿌리까지 들릴 정도로 휘청거렸다. 흉물스럽게 마을 어귀에 밤나무가 있는 것이 보기 싫었던 마을 사람들은 결국 밤나무를 잘라내기로 결정했다. 밤나무는 밑동만 남게 되었어도 동물들과 사람들이 과거의 자신의 은혜를 모르고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고, 결국에는 베어버렸다며 소리쳤다. 


더욱 시간이 흐른 뒤, 여전히 떡갈나무는 그 자리에서 동물들과 사람들과 함께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밤나무는 밑동까지 썩었으며, 아무도 그 자리에 밤나무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 채 영영 사라지게 되었다.


_제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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