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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Sep 24. 2020

안개꽃(맑은 마음) - 차라리 출근 전

그리고_안개꽃

차라리 출근 전, 을 생각한다. 퇴근 후의 시간을 이렇게 보낼 바에야 반대로 출근 전 시간을 확보하자는 전략이다. 9시, 모두가 업무를 시작하는 시간을 뒤로하고 온전히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 그래, 출근 전이다. 그럼 먼저 일찍 일어나자. 아니,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일어나면 바로 집을 나서자. 집을 나서지 않고는 도무지 출근 전 시간을 제대로 써먹지는 못할 것 같으니 말이다. 그래서 퇴근 후에는 일찍 자고, 출근 전에는 일찍 일어나서 집을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의 새 어린이처럼.


하여 눈을 뜬 후부터 집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올 때까지의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기로 했다. 육상 선수가 0.01초를 단축하기 위해서 매일을 훈련하는 것처럼, 수영 선수가 조금 더 빠르게 나아가기 위해서 수영복을 이리저리 바꿔보는 것처럼, 계체 직전의 복싱 선수가 수치스러움을 이겨내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체중계 위에 올라가는 것처럼. 어떤 수를 쓰든지 집을 나설 것. 그것이 나의 미션이 되었다. 해서 내 결론은 이것이었다. 씻지 않고 집을 나설 것.


씻지 않고 집을 나선다니, 더럽다. 그렇게 집을 나서선 그대로 대중교통을 타고 회사로 가고, 회사에서 업무를 하며 사람들과 대화한다. 씻지 않았으니 입에서 불쾌한 냄새가 날지도 모른다. 머리는 떡져 있으며 어딘가 북북 긁고 있을지도 모른다. 집에서 씻지 않았으니, 씻지 않고 집을 나섰으니, 깔끔하지 않은 몸과 마음으로 집을 나서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 아닌가. 더럽다, 고 생각한다면 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게 가장 빠르게 출근 전 시간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씻지 않고 나서는 삶에 대하여. 그렇다고 끝까지 씻지 않는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진 말기를. 씻지 않은 그대로 집을 나서 놓고는, 아무도 없는 회사에서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신문을 조금 봐 두고는, 다행히도 헬스장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샤워시설이 갖춰진 훌륭한 헬스장. 운동은 하지 않더라도 샤워를 하고 다시 회사로 향한다. 뒤로 잠깐 미뤄둔 9시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자면 마음이 그래도 말끔하다. '그래도 오늘은 출근 전부터 뿌듯하게 시작했다.'


씻지 않은 덕분에 깨끗해진 마음이다. 일찍 일어나 아직 어두운 새벽에도, 새벽과 아침 사이의 온도 차로 생긴 안개 때문에 뿌옇게 흐려진 아침에도 뿌듯하게 시작할 것. 그러기 위해서 씻지 않고 집을 나설 것. 차가운 공기가 살갗에 닿으면 뿌듯해할 것. 뿌연 안개와 모습이 닮은 안개꽃의 꽃말은 '맑은 마음'이라고 한다. 그 아침의 안개가 살갗에 닿으면 그 꽃말처럼 '맑은 마음'이어라. 차라리 출근 전에 말이다.


_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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