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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꽃 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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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Sep 24. 2020

자마이카(야행성)

그리고_자마이카

오후 5시에 피기 시작해 새벽달을 향해 활짝 피고 새벽이면 져버린다는 자마이카 꽃은 종종 '불면증'이라는 뜻의 꽃말을 가졌다고 오해받는다. 하지만 자마이카 꽃의 꽃말은 '불면증'이 아니라 '야행성'이다. 그리고 나는 자마이카 꽃의 꽃말인 '야행성'을 잃은 채 살아가는 중이다. 그러니까 자마이카 꽃과는 다른 리듬으로 하루를 보내는 중이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불면증'이 없는 것은 아닌지라 누워서 한참을 뒤척인다. 밤 10시에서 10시 30분. 불은 시간에 맞춰서 꺼지도록 설정해두었고 나는 그 시간에 맞추어 몸을 침대로 던진다. 그리고 뒤척이기 시작한다.


처음엔 무작정 눈을 붙이고 가만히 있는 것이다. 이불을 덮었다가, 걷어 냈다가.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였다가, 반대로 기울였다가. 한참을 뒤척여도 잠에 빠지지 않으면 숫자를 셈하기 시작한다.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기법인 양 세기처럼 말이다. 그래도 쉽게 잠에 빠지진 않는다. 잠이 오지 않는 밤, 잠들기 위해 애쓰는 밤이다.

이렇게 잠들기 위해 애쓰는 이유는 새벽에 일어나기 위함이다. 그래도 6시간 정도는 잠을 자야겠다는 내 의지의 표현이다. 새벽에 일어나선 명상을 할 것이고, 달리기를 할 것이다. 가볍게 아침을 챙겨 먹을 것이고, 신문을 읽거나 책을 읽을 것이다. 영상을 시청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을 출근하기 전에 할 수 있으니 나는 야행성을 잃은 한 마리의 어린양처럼 10시면 침대에 파고드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명상을 하면, 명상을 하는 동안 꽤 오랜 시간 눈을 감고 있는 탓에 잠에 빠진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다. 아! 그러니까 명상을 하는 방법이 있겠구나, 싶어서 침대에 누워서 명상을 하기도 한다. 실은 이 명상이라는 것이 크게 특별할 것 없이 눈을 감고 가만히 있는 상태로 천천히 숨을 쉬는 것인데, 숨을 하나, 둘, 셋, 넷... 하면서 셈을 하면서 들이마셨다가 내셨다가를 반복하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것 모두를 이미 하고 있었다. 아, 그러니까 나는 명상하는 삶을 살아가는 중이었던 거구나, 하고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새벽을 알리는 알람이 울린다.


'야행성'을 잃었지만 이미'야행성'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란 것을 안다. 이미 몇 개월 혹은 몇 년을 밤샐 필요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무언가를 열심히 해낼 필요가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불면증'이 없어지지 않았느냐 묻는다면, 그건 또 이미 몇 개월 혹은 몇 년을 밤샐 필요 없이, 그러니까 힘쓸 필요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 열심히 해내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남으면, 그러니까 그 에너지가 방전되었을 때처럼 쓰러질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다.


무언가를 대체해야지만 이 사단이 끝날 모양이다. 그래서 밤을 '새는' 것 대신에 밤에 '세기'로 한다. 얼마 전 읽은 <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라는 책에서는 침대 위에서 숫자 1만부터 거꾸로 세는 것으로 침대 위 명상을 연습하라고 일러 주었다. 세다가 잠에 빠지면 그건 그대로 좋은 것이고, 1만부터 숫자 0까지 갈 정도로 잠에 빠지지 않고 시간이 흐른다면 그건 또 그대로 명상을 지속하는 시간이 길어져서 좋은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불이 꺼진 이 밤. 침대 위에 몸을 던지고, 숫자를 세어보기로 한다. 만, 구천구백구십구, 구천구백구십팔...  


_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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