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라이세이 Oct 15. 2020

나의 최소한은 줄곧 그들의 최대한이었다

아아, 어리석은 중생이여

사람들이 무지하여 그런 것이다.
그런 것이다. 그런 것이다.


스트레스 때문에 속이 쓰리고 소화가 되지 않는 기분은 대학생 때까지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었다. 수험생 때도, 군대에서도, 취업준비생 일 때도 나는 스트레스를 느껴본 경험이 없었다.

그러다 회사원이 된 이후에 스트레스란 걸 처음으로 느꼈다. 그리고 꽤나 자주 스트레스를 받는다. 공공기관을 다니는지라 실적 압박이라든지, 감당하기 어려운 난이도의 업무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빈번히 목격되는 사람들의 실수의 뒷감당이 신입사원인 나에게 부과될 때나,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윽박지르는 사람과 대화를 할 때나, 처음부터 잘못 맞춰진 퍼즐 때문에 몇 개월 치의 자료를 뒤집어엎어 바로 잡았으나 바로 같은 방식으로 엉망진창 업무가 이루어질 때가 그랬다. 나의 컨트롤을 벗어난 순간들이라고 할까.

이 말을 뒤집으면 대학생 때까지는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나의 통제 범위 안에 있었음이 된다. 그런 범위 안에서만 빙빙 맴돌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조금만 더 시간을 투자하고, 사람들의 몫을 조금만 도와준다면 해결되는 일 투성이었다. 나의 최소한이란, 남들의 최대한인 경우가 많았던 덕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자며 무진 애를 쓰면, 그들은 자기는 그렇게까지 하지 못한다며 치켜세웠다. 그리고 그것들이 결국엔 같은 목표(ex. 학점을 받는다, 시험을 친다)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괜찮았던 일들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달랐다. 각자가 담당하는 업무의 범위가 달랐고, 그들이 보내는 시간의 목적이 달랐다. 나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시간을 때우는 곳으로 회사를 받아들였다. 집과 헬스장 그리고 독서실을 오가는 중간에 있는 체크 포인트로 회사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의 몫을 도와주는 일은 그리 내키지 않았다.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도움을 받았다기 보단 일을 넘겼다며 퇴근하기 바빴다. 그런 굴레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리고 털어낼 곳 없이 시간을 보냈다. 사방이 적이니 쉬이 털어낼 수 없었다. 아쉽게도 대학 시절 가장 친하게 지내던 형들은 아직 취업준비 중이라 털어내기 어려웠다.

나의 최소한은 그들의 최대한인 경우를 떠올렸다. 나만큼 하는 사람들은 잘 없음을 생각했다. 동시에 법륜 스님이 하신 말씀을 떠올렸다. 구체적인 표현은 모르겠다. 다만, 화를 내어 무엇하리. 그저 중생들이 무지하니, 어리니, 어리석으니 그런 것이라 받아들이라 하셨던 것 같다. 마침 오늘 모 과장이 무턱대고 나에게 요청한 내용이 생각났다.

요는 이러했다. 메일을 턱 보내며 이것저것을 보내라고 하였다. 나의 업무가 아니니 해당하는 담당자들에게 요청하라 답변했더니 왜 해주지 않냐며 전화로 짜증을 내었다. 속이 팍 좋지 않았다. 그럼 방법도 없이 일일이 자기가 담당자들을 찾아다녀야 하느냐 쏘아댔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그 후에 같은 일을 하는 다른 분께 이런 경우에 어떻게 업무를 하느냐 물었다. 다른 방식이 있었고, 모두들 그렇게 업무를 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는 그 방법을 몰랐고, 알아보지도 않았고, 무작정 요청한 것이었다. 아.... 무지하여 그런 것이구나. 알아보려는 노력 없이 게을러서 그런 것이구나. 거기에 예의가 없었으니 가엾은 중생인 것이구나. 그런 것이구나. 그런 것이구나.

업무 방법을 정리하여 알려주었다. 퇴근할 때까지 그는 답이 없었다. 나는 그 업무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가엾은 중생을 위해 같은 업무를 하는(심지어 나와 사무실이 다르고, 모 과장과는 같은 사무실을 쓰는) 동료에게 방법을 물어 알려준 것이다. 중생은 말이 없었고, 나의 친절에도 무심했다. 아아, 가엾은 중생이여.

이 곳의 시스템도 그러할지니. 고치려 노력하여도 잘 안 고쳐지는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것.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하던데, 그 중은 조금 더 연마하며 다른 방식을 찾아볼까 하더이다. 이를테면 경제적 자유요, 이를테면 전문적인 직업인으로. 그리하여 퇴근 후 운동을 마치고 독서실로 향한다. 어리석은 중생들을 받아들이고, 구제하기 위해서.

#회사 #회사원 #직장인 #직장 #퇴사 #법륜 #중생 #스트레스 #업무 #경제적 자유 #파이어족 #수험생 #전문직 #운동 #헬스 #헬스장


*함께 포스팅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 있습니다

*오픈채팅방 - https://open.kakao.com/o/g0Eyl7Ac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다음 메인에 올랐(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