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타고 시간을 보낸지는 몇 년 만이다. 혼자였다면 이마저도 더 시간이 지나서야 산을 탔을 것이다. 어찌저찌 모인 사람들과 함께였으니 가능했다. 오늘 다녀온 산은 인왕산이었다. 어제는 넷플릭스에서 '불멍'을 검색해두고 불멍을 때렸다면 오늘은 산 위에서 산멍을 때렸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기분. 모니터가 아닌 자연 그대로를 보는 기분. 시원한 바람을 그대로 맞는 기분. 비가 온 뒤라 날씨가 마냥 좋지는 않았지만 차분히 가라앉은 그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대부분의 차려입은 등산객 아저씨, 아주머니 사이에서 등산복보다는 운동복에 가까운 차림이었다. 그래도 부담스럽지 않은 산을 선택했으니 무리 없이 오를 수 있었다. 그 차림 위에 마스크. 마스크와 상의에 땀이 차오르긴 하였다. 집에만 있었다면 자고, 먹고, 자고, 자고의 반복이었을 테다. 그게 아닌 일요일이라 기뻤다. 산행을 마치고 돌아와 씻고 낮잠을 잔 것을 같긴 하지만 말이다. 낮잠 후 이 시간에 일어났으니 아마 조금 늦게서야 밤잠에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기념으로 쓰는 포스팅이랄까. 생각해보면 중학생 때는 등산부를 하며 부산의 몇몇 산을, 고등학생 때는 역사탐방으로 백두산을, 대학생 때는 친구들과 북한산을 오르거나 엄홍길 대장님과 함께 대장정을 떠나는 등 산과 관련된 활동을 줄곧 해왔다. 군대를 가야 할 시기에는 산악구조대를 검색해보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그 이후엔 산을 향하지 않았으니 산 사람이라 하긴 어렵다. 등산복 바지도 없는 상태이니 말 다 했지 뭐.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을 다르게 하였는데 올라갈 때의 경복궁 코스와 내려올 때의 홍제동 코스가 사뭇 달랐다. 땀이 맺히던 등산 코스와 달리 하산 코스는 바람에 땀이 식어가는 코스랄까. 그 코스를 타고 홍제동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하산하여 점심까지 맛있게 먹고 일행과 헤어졌다. 합치면 3-4시간을 보낸 산행이었다. 그 시간이 걷고, 바람 쐬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가득했다. 오래간만에 유의미한 일요일의 시간이었다. 눈치 없는 평발이 다리의 저림과 극도의 피로감을 몰고 오는 것은 논외로 하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