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쾌한 아침이다 이른 시간에 남편과 함께 걷는다. 단풍이 한창 물든 산야를 보면서 걸으니 날을 것 같은 기분이다.
50 년 전에 일을 회상해본다. 우리에게 다리 역할을 해준 분을 아련하게 떠올려본다. 옛날에는 중매쟁이라 불렀다.
옛말에 중매는 잘하면 술이 석 잔 이요 못하면 뺨이 석대라는 말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뺨 석대는 아닌 성싶다. 부부로 50여 년 살면서 크게 마음 상한 일 없었으니 다행이라 여겨지니까, 자식들도 기르고 보면 결혼을 시킬 때 다리를 놓아주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비단 결혼 중매뿐만 아니라 우리가 세상 살아가려면 남에게 다리를 놓아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놓아주는 다리를 건너게 되는 일이 허다하다. 어떤 사람은 다리를 잘 놓아주어 신분이 상승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잘못 놓아준 다리로 인하여 평생을 망치는 사람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일이다 어느 지인의 소개로 땅을 샀다가 얼마 되지 않아 그분이 다시 팔아주었다. 그것도 싼값에 배 이상을 받아주었다 그 덕분에 조그마한 집도 장만하게 되었다. 우리는 다리를 놓아준 지인께 고마웠지만 우리 땅을 산사람은 아직도 집을 지을 수도 팔 수도 없는 위치이고 보니 그대로 일 수밖에 없다. 땅을 사놓고 활용도 못하고 땅만 쳐다보고 늙어갔을 그분들이 애처로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분들은 다리를 놓아준 사람에게 원망 많이 했겠지요.
이렇게 다리란 잘못 놓아주면 황당한 일을 겪게 되는 일도 있었다.
오래된 일인데 누군가의 소개로 방을 세놓았다. 네 식구의 단출한 가정이었다. 사람들도 얌전하다하여 들였는데 알고 보니 가장이 직장은 없고 일수놀이로 생활을 했다. 좀 불안했지만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과 같은 또래이다 보니 사이좋게 잘 지냈고 주객이 정들이며 살았다. 그러니까 살만했는지 아이도 또 생겨나면서 방이 비좁다는 이유로 큰방을 원했다. 우리는 들어주었다. 그러기 여러 해를 지내면서 서로를 알게 되니 금전거래도 하고 내가 돈 계를 모아 빠른 번호를 원하면 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 집 사정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수금한다고 저녁때면 가방 들고나가던 가장은 방에만 쳐 박혀 지냈다.
부인이 장사를 해보겠다고 나섰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커가고 지인들한테 빌린 채무는 불어나고 지출을 감당하기 힘들게 되자 부인은 고도의 신경으로 급성 간염으로 며칠 앓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내야 할 계금에 빌려간 돈을 다 떼일 판이다. 빚쟁이들은 몰려들어 아우성을 쳤지만 받을 길이 막막하여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집 어린것들이 살아갈 걱정은 뒷전이었다. 남편은 힘없는 부인만 의존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는 무의도식으로 살아온 파렴치한 인간이었다.
예기치 않은 엄청난 일에 당혹감을 감출 길이 없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로 소개한다든가 금전거래 같은 것은 되도록 안 하기로 했지만 사람이 살아가면서 아주 외면하고 살 수만은 없는 것 같았다.
요즈음에 시누이한테 땅을 소개하여 사놓았던 땅을 다시 팔아주게 됐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므로 산 가격에 몇십 배로 받고 보니 나의 마음도 로또 당첨된 만큼이나 기쁘다. 시누이 역시 좋아라 하니 이런 일이 평생에 또 있으랴 싶다.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준 고마운 친구가 있다.
수필 공부에 대한 생각조차 못했는데 할 수 있다는 신념과 용기를 주었기에 하게 되었다. 한발 한발 떼다 보니 겨우 걸음마 수준이지만 훌륭한 스승님의 지도를 받아 언젠가는 달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져 본다.
생각해 보면 나이도 들만큼 들었고 건강이나 챙기면서 그럭저럭 보냈을 여생이었는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크나큰 행운이라 여겨진다. 무미건조하게 보낼 노년을 자존감도 높이고 신분상승이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닌 성싶다.
나에게 결혼할 제 놓아준 다리와 말년의 수필 공부하게 해 준 다리, 또한 종교를 갖게 해 준 다리는 나를 구원의 다리였으며 고마운 다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