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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만큼 오늘은 비라도

"비가 갠 후의 무지개를 당신과 함께 보고 싶어요."

by 돌아보면

오랜만이야. 편지 한동안 안 썼었는데. 우리 둘 다 이런 거 간지러워했잖아. 그래도 기왕이면 여자 쪽에서 좀 사랑스럽게 애교도 부려보라고 네가 그랬었지. 나는 요즘 같은 세상에 그게 무슨 성차별적인 발언이냐고 매장당하고 싶냐며 사랑스럽기는커녕 살벌한 대답을 하곤 했었고. 미안. 그게 뭐 어려운 거였다고...


잘 지내?


하고 있는 일은 좀 어때? 이제 좀 경력도 쌓였을 테고 밑에 신입 사원들도 들어왔겠다. 넌 학교에서 후배들한테 잘 해줬던 것처럼 그 사람들한테도 잘 해주겠지. 너만큼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 또 있을까. 그날 나한테는 그러지 않았지만 말야.


쓸쓸하거나 슬퍼서 눈물이 나는 건 처음뿐이라고 했었지. 그런 말이 어딨냐고 이렇게 돌아서는 게 어딨냐고 울면서 소리치던 나였어. 그 후로도 한동안 많이 쓸쓸하고 슬펐는데, 조금 많이 분하지만 아마도 난 지금 괜찮아. 니 말 대로야.


난 글 쓰고 있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기사도 쓰고, 좋은 정보가 있으면 소개하는 글도 써. 지금도 야근은 하지만 나름의 생활 리듬이 생겨버려서 예전보다는 규칙적으로 살고 있는 편이야. 나쁜 소식보다는 근사한 소식만 전해주고 싶네. 난 잘 있다고.


아, 또 말할 거 있다. 한 번은 취재 때문에 해외여행을 갔었는데, 거기서 무지개를 봤어. 장소는 다르지만 오랜만에 무지개를 보고선 니 생각이 또 났어. 기억나? 우리 농활 갔을 때. 우리 집은 친척집도 그렇고 다 서울에 몰려 있어서 나 태어나서 그런 시골 가본 적 처음이었어. 밖에 비는 계속 오고 꿉꿉하고 자는 건 또 어찌나 불편하던지... 마지막 날이라고 사람들 다 술 먹고 뻗은 방 가운데서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너 깨워서 잠 안 온다고 찡찡댔었잖아.

afterrain.jpg

너는 이제 비는 거의 그쳤고, 조금만 있으면 좋은 거 보여준다고 이거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거 아니라고 기다려 보라고 했었지. 집에서 조금 걸어 나온 길은 산까지 뻗어 있는듯했고 푸른 논밭과 구름, 산이 합쳐져서 그 풍경만으로도 제법 좋았다고 생각해. 사실 가장 좋았던 건 니 품에 기대서 안겨 있을 수 있었던 거라 사실 뭐가 나오든 난 좋았어. 너무 포근하고 따뜻해서 서서도 잘 수 있을 것만 같았거든.

rainbow4.png

무지개를 실제로 처음 본 건 그날이 첫 번째였어. 어느새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도, 흐릿한 듯 선명하게 보이는 예쁜 색깔 띠도 너무 예뻤어. 핸드폰 카메라를 꺼내서 사진을 찍었지만 그래도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만큼 선명하진 않더라. 다들 술에 취해서 자느라 우리 말고 무지개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뭔가 특별하게 느껴졌어. 우리 둘만의 특별한 비밀 같은 게 생긴 느낌이었거든.


비 갠 후 아침, 살짝 젖은 땅, 주변의 풀 내음, 풀벌레 소리, 새소리,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느긋하게 걷는 우리의 발소리, 하나도 안 느긋했던 내 심장 소리, 그리고 니 목소리...


미안. 또 제멋대로 내 얘기만 했네. 어차피 너한테 못 갈 편지니까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요새는 예전 같지 않아서, 꿈에서 만나기도 힘들더라. 예전엔 니 생각을 거의 안 한다고 생각했는데도 뜬금없이 꿈에 많이 나와서 힘들었는데 요즘에는 정말 잠드는 그 순간까지 네 생각만 하더라도 나올까말까야. 혼자가 이렇게 마음을 변화시킨 걸까. 괜찮아질 거라는 니 말, 또 맞네. 짜증나.


그래, 인정해. 지금까지는 니 말이 거의 다 맞았지만 하나는 확실히 틀렸어.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말 말야. 나는 계속 똑같아. 다른 사람을 좋아하려 한 적도, 좋아질 리도, 좋아하고 싶지도 않아.


언젠가는 널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그냥... 숫자가 아주 큰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중이야.


정말 많이 보고 싶다. 다음에 또 쓸게. 그때까지 건강해.




오늘은 비가 내렸어.

어디선가 이 비를 맞고 있을,

예전에 함께 비를 맞던 그리운 너는 잘 있니.

지금 나는 너에게 닿을 수가 없어서

너에게 닿을 수 있는 이 비가 참 부럽다.




https://youtu.be/7-frwNwFo_o

Zard - 悲しいほど 今日が雨でも(슬픈 만큼 오늘은 비라도)


[Zard - 悲しいほど 今日が雨でも]
(슬픈 만큼 오늘은 비라도)


내가 사랑스럽지 않은 걸 알고 있어도

이제 와서 성격이 바뀌지 않아요

그래도 때때로 이런 자신을

사랑해주고 싶어요


내 마음 어딘가의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흘러가요

비가 갠 후의 무지개를

당신과 함께 보고 싶어요

다정하고 따뜻한 당신의 곁에 있고 싶어요


슬픈만큼 오늘은 비라도



그것은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 자동차 같아요

어린아이처럼 둘만의 사진에 키스했죠

안아주고 싶어요


한계라니...아직, 아직은

먼 훗날에 있을 거라고 믿고 싶어요

그날의 향기가 나요

비가 갠 후의 아침을

당신과 둘이서 걸어가고 싶어요

언제나 느긋하게 걸어요

당신의 곁에 잠들고 싶어요


슬픈만큼 오늘은 비라도



마음속의 붉은 우산을 쓰고

언제까지라도 빗소리를 듣고 싶어요

당신에 대해 생각하곤 하죠

맑은 날도 흐린 날도

다른 사람은 좋아지지 않아요


슬픈만큼 오늘은 비라도...


Zard 정규앨범 10집 '止まっていた時計が今動きだした'(2004.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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