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버티기엔 막막하기만 한, 울컥할 듯이 기운 밤이었어"
'그런 것처럼 보일' 수는 있겠지만, 원래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다들 치열한 것이다. 태양도 그냥 밝은 것 같지만 가까이 가 보면 그 표면에서는 치열하게 폭발과 에너지 반응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원래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볼 때마다 웃고 있었으니까. 은경이가 있는 곳은 언제나 밝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항상 은경이 쪽을 보고 있었고, 그럴 때마다 마음속의 나쁜 생각, 스트레스받는 일들이 생각나지 않게 되었다. 멍 때리고 있는 모습마저 눈부시다고 생각이 들 때쯤 나는 내가 은경이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좋아하는 분야도 겹치는 게 많아서,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다 같이 있을 때 다소 흐트러져 있는 모습조차도 밝고 귀여워 보였다. 그 밝음이 내 눈을, 나를 온통 뒤덮어버린 까닭에 나는 은경이의 밝음 뒤에 가려진 어두운 면을 보지 못했다.
처음으로 그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단둘이 술을 마시던 어느 겨울밤이었다. 평소랑 다를 것 없는 날이었는데, 나는 그날에야말로 우리의 관계를 확실히 하고 싶어서 틈을 엿보던 차였다. 그래서 은경이가 갑자기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그 커다란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는 것을 보고 머릿속이 그만 하얘져서, 눈물을 닦아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무 말도 해주지 못했다.
그동안 가까워졌던 것을 바탕으로, 주변 친구들의 별 의미 없는 부추김을 바탕으로 나는 우리가 그래도 잘 되어가고 있는 줄만 알았다. 그래서 신중하기보다는 그저 좋아하기만 했던 것 같다. 은경이는 나랑 있을 때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뭘 하고 싶고 뭘 하고 싶지 않은지, 뭐가 고민인지 내가 한 번이라도 이런 것들을 깊게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그날 했던 이야기가 뭐였냐면, 은경이 본인의 가정사에 대한 내용이었다. 아버지 때문에 빚이 좀 많다고. 아무리 주말까지 나가서 일해봐야 몇 년째 변하는 것 없이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현실이 너무 힘들다고.
나름 친구들 고민 들어주는 건 도가 텄다고 자부했는데, 생각해보면 내 또래들 고민 중 이렇게 심각한 고민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그저 조그만 우물 속에서 자칭 카운슬러라면서 내심 우쭐해 했었던 것이다.
어쨌든, 타인의 어둡고 슬픈 무게를 생전 처음 마주한 나는 감히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기에 그 날 별다른 말을 해주지 못한 채 한동안 같이 있다가 집에 데려다주었다.
일이 많이 바빠졌다고 했다. 연락의 횟수가 줄었고 답장의 텀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호감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일찌감치 마음을 접고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내게 보여준 무거운 슬픔을 생각해보면, 본인의 삶에 일의 비중이 다소 높다 한들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미안하다고, 연락을 더 못 할 것 같다는 통보를 받기 전까지는.
그 친구의 심각함을 조금 더 잘 공감해 주었더라면 결과는 달랐을까? 그래서 이야기를 좀 더 해봤다면 선택지는 달라졌을까? 아마 그건 아니었을 것 같다.
언젠가 네가 추천해 줬던 이 노래, 가사가 좋다고 알려주었던 이 노래는 이제 들을 때마다 널 떠올리게 하는, 노래 가사만큼이나 정말 울컥할 듯한 노래가 되어버렸다. 하나도 서로를 삼켜내지 못했던 우리의 노래가.
1월 말부터 쭉 바빠서... 써두었던 것들 하나도 못 올렸습니다ㅠㅠ이제 좀 더 자주 찾아뵐게요:)
더 버티기엔 막막하기만 한
울컥할 듯이 기운 밤이었어
봄꽃이 피어나던 거리
하늘도 하얗게 번졌어
약간의 미열이 남아있는 듯한
어지러운 기분이 숨에 닿았었어
저 멀리 전철이 지나가고
하나 둘 일렁이던 불빛 속에
말이 없던 두 그림자
조그맣게 터져 나오던 너의 흐느낌은
말했었지 난 너에게 늘 꿈이고
언제나 넌 밤이었음을
잠깐의 시선도 길을 잃은 듯한
어지러운 마음이 입에 맴돌았어
저 멀리 전철이 지나가고
하나 둘 일렁이던 불빛 속에
말이 없던 두 그림자
조그맣게 터져 나오던
너의 흐느낌은
말했었지 난 너에게 늘 꿈이고
언제나 넌 밤이었음을
말이 없던 두 그림자
조그맣게 터져 나오던
너의 흐느낌은
되뇌었지 넌 나에게 겨울이고
꿈꾸던 난 봄이었음을
우리 끝내 하나도
삼켜내지 못한 서로들
가까스로 밀어내버린 밤
우리 푸르를 봄
더 버티기엔 막막하기만 한
울컥할 듯이 기운 밤이었어
봄꽃이 가득 피어나던 거리
하늘도 하얗게 번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