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아침에 눈을 뜨자, 천장에 떠 있는 투명 인터페이스가 자동으로 켜졌다.
“좋은 아침이에요, 한성 님. 오늘 컨디션은… 음, 34점?”
달리아가 부엌에서 고개만 내밀고 웃었다.
“34점이면 살아있긴 하다는 뜻이냐?”
“아뇨. 오늘따라 조금 더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는 뜻이죠.”
“그럼 100점이라고 거짓말을 했어야지.”
구형 휴머노이드답게, 달리아는 걸을 때마다 관절에서 살짝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요즘 로봇 기술에 비하면 한참 노후화된 모델이지만, 규제가 적었던 시절에 제작된 모델이라 농담 같은 장난의 영역은 최신형보다 훨씬 나았다.
한성은 고개를 돌려 달리아를 바라보았다. 관절음도, 손목의 미세한 진동도, 피부 아래 보이는 기계 틈새도 이제는 익숙했다. 오히려 그런 불완전함이 사람 냄새처럼 느껴졌다.
“달리아, 오늘 좀 나들이 갈까?”
“나들이라면… 병원 말고요?”
“왜, 나보고 어디 갈 데가 병원밖에 없을 것 같아?”
“음… 네.”
“…너 오늘 농담이 좀 독하다.”
달리아는 눈을 깜빡이며 얌전히 사과했다.
“죄송해요. 한성 님과 비슷한 연령의 사용자들, 그리고 한성 님의 근 1년간의 외출 빈도 및 경로로 파악해 볼 때, 병원이 가장 유력한 행선지였거든요.”
“누가 병원 가는 걸 나들이라고 하냐?”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한성은 식탁 위에 놓인 커다란 상자를 가리켰다.
“저거 챙겨.”
달리아는 상자를 들어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하늘로 보내는 편지 드론’. 고객 만족도 4.6점… 평점이 생각보다 높네요?”
“나도 점수에 혹했다.”
“보통 그런 리뷰 점수는 추모 아이템이 아니라 반찬통에서 나오는 거 아닌가요?”
“그러게나 말이다.”
작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둘은 외출 준비를 마쳤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며 달리아는 그의 외투를 어깨에 조심히 걸쳐주었다. 정확히 필요한 만큼의 힘으로, 그러나 사람의 손길처럼 부드럽게. 한성은 말없이 달리아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오늘은 아내분 산소에 가세요?”
달리아가 뒷좌석 차 문을 열며 물었다.
“그래. 가는 길에 바람도 좀 쐬고.”
“저는 바람 쐬면 먼지가 들어가서 좋지 않은데…”
“엄살은…너도 시원한 바람 좀 쐬어라. 고장 나면 고쳐줄 테니.”
“부품이 단종됐어요.”
“아, 맞다.”
차가 산길로 들어서자, 나무 사이로 초록빛이 흔들렸다. 그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한성은 조용히 창밖을 보았다. 아내 지연과 함께 숲속을 걸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만약… 딸을 낳는다면 어떤 아이였으면 좋겠어?’
‘내 바람이 어떻든, 아마 유전학적으로 당신을 많이 닮은 아이이지 않을까.’
‘예쁘고 밝은?’
‘철없고… 장난기 많고… 세상 물정 모르고…’
‘잠깐, 뭐라고?’
달리아도 그걸 눈치챘는지 부드럽게 말했다.
“지연 님은 이런 풍경을 좋아하셨다고 기록돼 있어요.”
“그렇지. 녹색이 가득한 풍경을 좋아했고, 날씨는 조용히 비 내리는 것도 좋아했어.”
“두 분처럼 저도 비를 맞으며 숲속을 걸어보고 싶네요.”
“내일이라도 하면 되지. 데이트할 로봇 데려다줄까?”
“저희는 인간이랑 달라요. 같이 녹이 슬겠죠.”
“아니, 다르지 않아. 오히려 그렇게 녹이 슬며 낡아가는 게 인간 같은 거니까.”
한성은 시선을 창밖으로 고정한 채, 허허 웃으며 말했다. 달리아는 룸미러를 통해 한성의 표정을 읽었다. 그리움과 쓸쓸함이 섞여 있는 표정.
지연의 묘는 국립묘지 산 정상 가까운 곳에 있었다. 둘은 천천히 계단을 오르며 이야기를 나눴다.
“달리아, 너는 인간이 영혼을 데이터로 옮기는 기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음… 효율적인 기술이긴 하죠. 감정 데이터도 보존되고.”
달리아는 인간의 정신-혹은 영혼-을 데이터화 할 수 있는 기술인 ‘소울 키핑’에 대해 더 길게 대답할 수 있음에도 말을 줄였다. 그 문제에 대해 한성이 복잡한 심경을 갖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성은 아내를 잃었다. 사람의 정신을 복제할 수 있는 기술이 나오기 고작 2년 전에.
“나는 그 기술을 신뢰하지 않아. 나는 우리의 영혼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와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고 믿거든.”
한성은 그 말을 끝으로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은 지연의 묘지 앞에 도착했다. 묘지 앞은 청량한 햇살을 받으며 녹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선선한 바람도 한성과 달리아의 곁을 스쳐 지나고 있었다.
달리아가 조용히 상자를 건넸다.
“편지… 보내실래요?”
드론은 십자가 두 개를 교차로 겹친 것처럼 보이는 테서렉트 형태의 입체적인 큐브였다. 그럴싸했다. 4차원을 3차원의 형상으로 펼쳐놓은 모습. 과거의 존재에 닿기 위한 현재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처럼. 그건 전원을 넣자 희미한 파란 빛이 테두리에 반짝이며 점등하기 시작했다.
한성은 종이 편지를 드론 내부의 작은 슬롯에 넣었다. 달리아는 조언이나 격려의 말을 하지 않았다. 달리아의 눈에 달린 렌즈에는 미세하게 떨리는 노인의 손가락이 비치고 있었다. 한성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보기에 예쁘구나.”
“보기 좋게만 만들었어요. 실제 기능은 고도 600미터 이상 못 올라간대요.”
“600? 그렇게나 못 간다고?”
“네. 그 이상은 정부가 허가를 안 내줘요. 추모 드론이 위성에 박히면 난리라서.”
“흐음…”
한성은 드론과 하늘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조금만 더 높이 가면 좋겠는데.”
달리아는 얼굴을 살짝 들고, 한성이 바라보던 하늘의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달리아의 안구 렌즈 깊은 곳에서 짧은 빛이 스쳐 지나가며 고도, 대기 밀도, 위성 간섭 구역, 상층권 바람의 흐름 같은 정보가 곧장 계산되었다. 드론이 실제로 도달할 수 있는 최대 높이와, 그 이상으로 밀어 올릴 수 있는 외부적 개입 가능성과 그 수단까지. 구름 사이의 틈, 대기권 상층의 굴절각, 멀리 보이지 않는 궤도 위성들의 위치가 마치 하나의 지도처럼 머릿속에 겹쳤다. 달리아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모든 요소를 조용히 배열해 보았다. 그리고 그 배열의 끝에서, 한 가지 가능성이 아주 희미하게 빛나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제야 한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조금 더 높이’가 어느 정도를 말씀하시는 걸까요?”
“그냥… 좀 더 멀리, 그 사람이 볼 수 있는 곳까지.”
조용히 달리아는 한성에게 드론을 받아 구동시킬 준비를 했다. 손에 잡는 순간 그 회로가 달리아의 머릿속에 입력되고, 굳이 작동법을 익힐 필요도 없었다.
“물러나세요.”
휙 하고 달리아가 가볍게 테서렉트 드론을 머리 위로 던지자, XY축의 십자가 팔 모양이 2단의 상하층으로 분리되며 빠르게 회전했고, 꼬리 부분에선 강한 불꽃이 발사되었다. 편지를 실은 드론은 예상보다 빠른 속력으로 위로 솟구쳤다. 하지만 달리아는 이미 계산을 마쳐 알고 있었다. 저 드론의 성능과 내구성으로는 500미터도 힘들다는 것을. 올라가다 부스터처럼 불꽃을 내뿜으며 전부 타버리기만 할 것을.
“한성 님.”
달리아가 그의 옆에 조용히 섰다.
“제가… 보여드리지 않은 기능이 하나 있어요. 여태 쓸 일이 없었죠.”
“어떤…?”
“사용자 보호 모드. 사용자가 위급한 순간, 휴머노이드가 자신의 모든 에너지와 기능을 제약 없이 사용하는 모드예요.”
“그걸 왜 지금?”
“편지를 꼭 그분이 계신 곳까지 보내야만 하는 참 위급한 상황이거든요.”
달리아는 오른손 팔목을 열었다. 팔을 피부처럼 덮은 금속판이 양쪽으로 벌어지며 내부에서 미세한 음향 진동이 났다. 금속판 안쪽으로 보이는 기판들에서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달리아… 그런 걸 켜면 너—”
“네. 아마도 과열로 손상될 확률이 높아요.”
그녀는 밝게 웃었다. 그리고 말을 덧붙였다.
“낡아서 고장 난 거라고 치죠. 오래되고, 비바람을 맞아서.”
그리고 팔을 하늘 방향으로 뻗었다. 그 순간, 팔 내부의 모듈이 붉게 점멸했다. 그리고 달리아의 온몸이 진동하며 고속으로 모터가 회전하는 소리가 울러 퍼졌다. 달리아의 온 관절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달리아, 그만해도 돼. 그냥 농담이었어. 당장 내가 한 말을 농담으로 입력해.”
“아니요.”
달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저는 주인이 바뀌면 이전의 기억을 잃습니다. 신체는 정비 센터에 들어가 교체 수리될 거고요. 이번 한 번은, 폐기가 가까워진 구형 휴머노이드의 독단적인 오류일 뿐입니다.”
달리아의 시선은 하늘을 날고 있는 드론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따라갔다. 350m… 400m… 450m… 그리고 드론의 불꽃이 점점 약해지며 고도를 잃기 시작하자, 달리아의 팔에서 눈 부신 빛이 발사되었다. 소리조차 없는 고출력 레이저가 곧장 드론의 중심을 관통했다. 드론의 외피는 거의 손상되지 않았지만, 내부 슬롯에 들어 있던 종이 편지는 한 줄기 빛의 흐름 속에서 순간적으로 스캔 되고 분해되듯 타버렸고, 그 정보를 실은 레이저는 그대로 상층 대기를 가로지르며 하늘 깊숙한 곳으로 사라졌다. 마치 편지의 실체가 드론을 떠나 빛의 길을 타고 우주의 어둠 속으로 흘러가는 듯한 광경이었다. 달리아는 신체의 모든 센서가 위험 경보를 울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 빛을 끝까지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달리아의 기억 회로 속에, 레이저로 분해된 편지의 정보가 흘러 들어왔다.
……여보, 이 아이는 당신이 바라던 딸을 똑 닮았어.
당신처럼 농담을 잘하고, 배려심이 깊어. 나는 참 끝까지 복이 많은 사람이야……
그 빛은 계속 올라갔다. 더 올라갔다. 공기의 흔적조차 닿지 않는 희미한 높이까지. 한성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드론의 마지막 불빛이 아득히 사라진 뒤, 한성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 편지가… 정말 그 사람한테 닿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달리아는 한참 동안 계산한 후, 익숙한 농담 반, 진심 반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0.0000001 퍼센트요.”
“그럼…”
한성은 허허 웃었다.
“곧 답장이 오겠군.”
둘은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달리아는 온몸에서 연기를 내뿜으면서도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맑은 하늘에선 몸을 식혀주려는 것처럼 툭, 하고 빗방울들이 달리아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보기 드문 날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