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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임은정 Oct 27. 2020

이렇게 살게 될 줄이야

이렇게 살고 또 이렇게 살고

죽고 싶다는 생각, 초등학교 때부터 했었다. 죽고 싶어서 밤에 베란다에 나가서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그 당시에 같이 살았던 친척 언니가 나를 집안으로 끌고 들어오고 그랬다. 우리 집은 부모님이 싸우실 때마다 온갖 물건이 부서지고 깨졌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집에 친구를 데려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하필 부모님이 싸우고 계셨다. 어렸을 때 유난히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라 친구가 별로 없었다. 한 명의 친구가 굉장히 소중한 때였는데, 그 친구가 우리 부모님 싸우시는 모습을 보고 나서 우리 집안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불안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나이 때부터 별로 삶의 기쁨이 없었다. 괴로움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몰랐다.


아빠가 담배 피우시는 모습을 눈여겨보다가 부모님이 모두 주무시는 밤에 아빠 담배를 몰래 꺼내서 입에 물고 불을 붙였던 적이 있다. 불행 중 다행히도 어떻게 펴야 하는지 몰라서 실패했다. 어린 초등학생이 입에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 내가 학원에서 일했을 때 봐왔던 아이들 모습에 내 어렸던 모습을 겹쳐보면 도무지 매치가 안 된다. 선풍기 틀고 자면 죽는다는 말을 듣고 어릴 때 일부러 선풍기 틀고 잤다. 다음 날 되면 죽어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안 죽고 이렇게 살 게 될 줄 몰랐다. 그 이후 선풍기 괴담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걸 진작 알았다. 어린 시절의 웃기면서도 슬픈 이야기다.


스무 살이 되고 대학 동기들에게 처음으로, 살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가정사를 털어놨다. 그전까지만 해도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한 사람인 줄 알고 살아왔다. 그런데 나를 시작으로 친구들이 하나둘씩 각자의 가정사를 꺼냈는데, 내가 그중에 가장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거였다. 나만 빼고 모두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20년 동안 꾹꾹 담아놨던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한데 나만 불행했던 게 아니라 친구들도 다 아픈 기억이 있었다는 걸 알고 나니 말로 설명할 수 없이 큰 위로가 됐다. 내 얘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그 얘기를 누군가 공감을 한다는 게 그렇게 큰 힘이 된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됐던 것 같다.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 이혼의 아픔과 정신 질환의 고통으로 세월을 다 보냈다. 좋았던 때와 현재를 비교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다 보니 우울증이 왔던 것 같다. 불면증이 심해지면서 술이 없으면 잠을 못 자는 알코올 의존증이 나타났다. 적절한 치료를 안 해서인지 우울증은 조울증으로 발전했고, 분노 조절을 하지 못해서 일시적으로 목소리가 안 나오고 걷지 못하는 전환장애를 겪기도 했다. 빨리 남들 쫓아가려고 조바심을 내다보니 공황장애로 고생하게 됐다. 사람들 앞에서 조리 있게, 멋있게 말하고 싶은 욕심이 무대 공포증을 키웠다. 잘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실제로는 못난 모습인 나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대인기피증에 걸렸다. 다 겪어보고 나니 병명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했을 때 걸렸다는 거다. 내 모습과 내가 처한 상황이 불만족스러울 때 병으로 나타난 것 같다.


무대 공포증을 이겨 냈다는 사람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분은 다 이겨 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또다시 떨림이 오자 불안해졌다는 솔직한 고백을 했다. 사람의 극복이란 이런 거라고 생각한다. 다 이겨냈다고 생각하더라도 언제 또다시 넘어질지 모른다. 한번 손에 난 상처가 회복됐다고 해서 앞으로 상처가 안 생긴다고 장담할 수 없듯이. 그런데 우리는 상처가 낫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고, 상처가 또 생기더라도 살아갈 수 있다. 그 상처에 대해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생길지도 모르는 상처에 대해 미리 불안해하지 않는다면 상처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수 있다. 이제는 정신병원에 입원 안 한 지 5년이 넘었다. 거의 매년 입원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놀라운 기적이다.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신기해한다.


그런데 언제 또다시 그렇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다. 극복했다고 하지만 또 안 그러리란 보장은 없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든 안 되든,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 이게 정말 큰 차이를 만든다. 상황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문제 해결 여부와 상관없이 그 상황을 이기는 힘이 된다.

상담소에서 일하다 보면 남들 앞에서 이야기할 일이 많다. 그때마다 긴장하지만 그렇다고 피하지는 않는다. 순간적으로 기억이 안 나서 즉흥적으로 말한 적도 많지만, 어쨌든 긴장한 상태로 할 말은 다 하긴 한다. 떨릴 뿐이지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건 아니니까. 예전에는 그런 상황을 피해 다니려고 애쓰고 나보다 말을 잘하는 남들에게 떠넘겼다. 그러다 보니 갑작스럽게 말하게 될 상황이 생기면 당황해서 버벅거렸고 그런 상황이 또 올까 봐 늘 조마조마하고 불안했다.


그런데 나는 원래 말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좀 떨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니 무대 공포증이 더는 공포증이 아니게 됐다. 그렇다고 자신감이 넘친다는 건 아니고 다만 두렵지 않다는 말이다. 남들 앞에서 좀 떤다고 해서 사형당하는 것도 아니고, 지켜보는 이들도 그저 나와 같은 사람이다. 좀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받아들이고 만족하기로 했더니 마음이 편해졌다. 여러 가지 정신질환을 겪고 정신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제대로 된 일도 못 하고 평생 이렇게 살다가 죽을 줄 알았다. 희망 없이 살았다. 아무것도 못 하고 살 줄 알았는데 여러 경험을 하며 이렇게 살게 될 줄 몰랐다.


그동안 대단하고 괜찮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의 노예로 묶여 살았다. 그 시간 동안 참 힘들었지만, 아픈 경험들이 달란트로 발견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가지고 싶었던 것에서 벗어나는 여정이었다. 예전에 더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을 때 하고 싶은 대로 하며 막살았다. 그런데 그렇게 살면 살수록 불행했고 마음은 무거웠고 세상에서 사는 게 지옥 같았다. 더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는 지금, 오히려 나눠줄 수 있는 게 많아졌다. 나의 아팠던 경험을 나누는 게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주고 새 삶을 살게 한다는 걸 경험하고 있다.


이제는 불행하지 않다. 마음이 가볍다. 내가 사는 이곳이 바로 천국처럼 느껴진다. 이 글이 만약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는 결말로 끝이 난다면 아마 나는 그 결말을 유지하려 애쓰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거다. 자기소개는 언제든 바뀔 수 있고 대단한 직업을 가진 사람도 언젠가는 그 자리에서 내려 온다. 죽기 직전까지 그 직업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죽음이 그 자리에서 내려오게 할 것이다. 남을 살리는 게 결국 나도 살리는 거라는 걸 이제 알았다. 겉모습에 비해 체력이 약해서 힘쓰는 거로는 남을 돕기 어렵지만, 앞으로 글로 사랑 전하며 살고 싶다.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이렇게 살다가 돌아가고 싶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The life I now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Galatians 2:20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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