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다니는 사람도 슬프지.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감정을 주셨으니까.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이 슬프긴 하지만, 이 세상에서 잠시 떨어져 있다가 천국에서 만난다고 믿고 남은 생을 살아가는 거지.“
“눈에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믿어? 괴로워서 친구 생각 그만하고 싶어. 어떻게 하면 믿을 수 있어?”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건데, 내가 믿기로 결정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면 만나 주실 거야.”
속 시원한 대답을 하고 싶었는데 이게 내 한계였다. 답답했지만 지금은 논리적인 말을 해주려고 애쓰기보다는 그냥 옆에서 같이 있어 주고 얘기 들어 드리는 게 최선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가 살아있을 때 잘해주지 못한 게 후회된다며 우시는 엄마를 보며, 나도 엄마처럼 슬퍼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동네에 오래된 사진관이 있는데 이 사진관에서는 비디오를 파일로 변환시켜서 CD나 usb에 담아준다. 아빠께서 집에 있는 비디오를 그 사진관에 맡기라고 하셔서 usb에 담아왔다. 비디오 여러 개를 usb 하나에 다 넣어서 볼 수 있다니, 세상 참 좋아졌다. 부모님과 함께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할아버지 회갑 잔치 파일을 열었다. 시골 할아버지 댁 마당에서 온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잔치하는 장면이 나왔고 어렸던 내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너무 오래전 영상이라 신기하면서도 현실감 없게 느껴졌다.
“저기 나오는 사람들 이제 다 죽고 없어.”
한참 보시던 아빠께서 한마디 툭 던지셨다. 그 당시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지금의 아빠보다 나이가 적으시다고 했다.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신 듯한 아빠는 갑자기 이제 안 보시겠다며 밖으로 나가셨다. 아마도 우시는 게 분명했다.
시골에서 집 짓고 사는 게 꿈이셨던 아빠는 퇴직 후 그 꿈을 이루셨다. 하고 싶은 거 다 해봤고, 모든 걸 다 이뤘다고 하시는 아빠의 눈동자엔 행복이 보이지 않았다.
늘 술에 취해 계셨고 눈빛엔 생기가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우시고, 소리를 질러대시니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졌다. 술을 물처럼 드시고 밥은 잘 안 챙겨 드시다 보니 몸은 점점 뼈를 드러냈다. 기억도 잘 못하시고 했던 말을 매일 똑같이 반복하시는 모습을 보며, 이제 살날이 얼마 안 남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은 오랜 기간 동안 떨어져서 사셨고 1년에 한두 번 정도 보는 게 전부셨는데,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시는 아빠가 걱정되신 엄마는 아빠와 지내기로 하시고 짐을 싸서 시골에 내려가셨다. 한동안 잘 지내시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엄마 전화를 받게 됐다.
“네 아빠랑 도저히 못 살겠다. 목매달아 죽고 싶은 지경이야. 이제는 너무 괴로워서 밤에 헛것도 보여. 아빠가 네 말은 들으니까 네가 좀 와야겠다.”
아빠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지셔서 설득 끝에 정신과에 가서 약도 처방받고 했지만, 엄마 혼자서는 아빠를 감당하기가 어려우시다고 하셨다. 정신병원 강제입원도 생각해봤지만, 강제입원을 여러 번 경험해본 나로서는 그 배신감이 너무 크다는 걸 알기 때문에 선뜻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불행 중 다행히도 아빠께서 딸의 말은 그나마 들으시는 편이라 내가 일정이 없을 때 엄마와 함께 자주 시골에 내려가기로 하고 최근 몇 달간 왔다 갔다 하면서 지내고 있다.
일로서 빨리 자리 잡고 싶어서 마음은 조급한데 시골에서는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어서 마음이 평온하지 않았다. 아빠 엄마 두 분 다 안쓰럽게 느껴지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 일에 집중할 수 없어서 솔직히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자려고 누웠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악하고 못된 사람을 우리 부모님만큼 사랑해주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 이혼하고 정신병원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부모님 마음 다 찢어놓고, 여기저기서 사고 치면서 큰돈을 써버린, 나 같은 딸도 사랑해주시는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면 이제 나는 혼자라는 생각.
갑자기 눈물이 양쪽에서 줄줄 흘러내리는데, 더는 손으로 닦아낼 수가 없어서 일어나 앉았다. 생각해보니 살면서 부모님과 이렇게 자주 밥을 함께 먹거나 길게 대화해본 적이 없었다. 아빠의 상태가 안 좋아지고 나서야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어쩌면 이 시간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도록 주어진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아빠의 상태가 좋아지시면 기뻐서 호들갑 떨고, 상태가 나빠지시면 좌절을 반복하며 살았다. 마음이 늘 불안정했다. 원하지 않는 상황을 내 마음에 맞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닌데, 할 수 없는 것에 집중하느라 할 수 있는 것을 놓치고 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기쁘게 보내는 것이고 할 수 없는 일은 하늘에 맡기는 거다. 친구가 살아있는 동안 잘해주지 못했던 게 떠올라 후회스럽다고 하셨던 엄마를 떠올리며, 나도 후회하지 않으려면 가족과 사람들에게 말과 행동을 좀 더 따뜻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제 찾아오는지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죽음을 만나게 된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두며 살아야겠다. 이 세상에서의 짧은 삶 마치고 다 같이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4:18 새 번역
So we fix our eyes not on what is seen, but on what is unseen, since what is seen is temporary, but what is unseen is eter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