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어떻게 말했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저런 식이 었다. 내 상태가 점점 공격적으로 변하자 친구가 정신과 약 잘 챙겨 먹으라고 했는데 분노가 치밀어서 너도 가보라며 막 쏘아붙였다. 미안하다고 계속 사과하는 친구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 계속 짓밟았다. 아무리 짓밟아도 성에 안 차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 친구에 대해 심한 욕을 하고 다녔다. 우울했던 시기를 극복하게 해 줬던 친구와 그렇게 끝이 났다.
그 친구와 자주 만났던 때에 많은 친구를 알게 됐었다. 그때는 술을 끊지 않았던 때였는데, 그 친구가 자기 친구들 모임에 나를 부르면 함께 술도 먹고 여행도 가고 운동도 하면서 재밌는 시간을 보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인기피증과 우울증 대신 자신감이 생겼다. 사교적으로 변했고 연락 안 하던 친구들과도 다 연락하며 지냈다. 내게 큰 능력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모든 일에 당당하고 자신만만했다. 갑자기 얻게 된 알 수 없는 자신감 덕분에 출판사에 취직하게 됐고 영어교재 집필 업무를 맡게 됐다. 우울증이 사라졌다고만 생각했지 조증이 다시 시작된 줄은 전혀 몰랐다. 회사에서 중학교 2학년 교재를 맡게 됐는데, 교재를 집필하기 전에 교과서 먼저 훑어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첫 장을 펼쳐보니 이렇게 쓰여있었다.
Hi! How are you?
안녕! 어떻게 지내니?
I'm fine. Thank you, and you?
나는 잘 지내. 고마워, 너는?
외국에 있었을 때, 한국인들은 ‘How are you?’라고 물으면 왜 다 똑같은 대답 하냐고 누군가 말했던 게 기억났다. 보통의 나였더라면 이게 그렇게까지 화날 일이 아니었을 거다. 그런데 그때의 나는, 세월이 오래 흘렀는데 아직도 학생들이 틀에 박힌 영어 표현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니 화가 났다. 이런 내용으로 학창 시절 내내 교육받으니 커서 외국인 앞에서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외국인들에게 조롱거리가 된다고 생각했다. 비효율적인 영어 교육에 시간과 돈을 버리고 자원과 인력을 낭비한다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 이런 심각하고 비효율적인 교육산업을 뿌리째 바꿔야겠다는 거창하고 큰 계획을 세웠다. 마치 정의의 용사가 된 것처럼, 아무도 바꾸지 않는 거라면 내가 바꿔야겠다고 결심했다.
조울증의 조증 삽화와 우울증 삽화를 여러 번 겪고 나니 내가 조증 삽화일 때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했다. 그 특징 중 하나는, 내가 아주 대단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된다는 거다.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샘솟는다. 내 능력으로 모든 사회의 문제를 고칠 수 있다는 망상에 빠진다. 평소의 모습이었더라면 세우지 않았을 거대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에 방해가 되면 공격적으로 변한다. 사람들과의 마찰이 잦아진다.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난 조증 삽화에 와있었다. 우울증 삽화를 심하게 겪었을 때 처방받아먹었던 항우울제가 조증 삽화가 되는 것에 한몫했던 것 같다. 우울증 환자가 항우울제 먹는 건 도움 되지만 조울증 환자가 항우울제를 먹었을 때는 위험성이 있다는 걸 겪고 나서야 알았다.
영어 교과서에 있는 오래된 표현을 다 빼고 내가 원하는 표현을 넣어서 출제했다. 대화문이 예시로 나오는 문제에서는 친구들 이름을 집어넣었다. 회사 일을 하는 건지 내 꿈을 이루는 건지 분간을 못 하고 신이 났다. 교과서를 기준으로 교재를 집필하라고 했는데 내 기준으로 교재를 만들었다. 야망에 부풀어서 교재에 여러 가지 변화를 줬지만, 교과서가 바뀌지 않는 한 교재를 바꾸는 건 애초에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교재 문제도 제멋대로 내고, 행동도 제멋대로 하는 내게 지적이 쏟아졌다. 내가 세운 거창한 계획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자 분노가 멈추지 않았다. 자리를 박차고 회사를 나왔다. 나중에 상사에게 폭언도 했다. 내 잘못은 없고 모든 것이 그 회사 문제라고 생각했다.
내가 우울했던 시기에 힘을 줬던 친구에게 폭언해서 관계도 깨지고, 회사에서도 나오게 되면서 극도의 분노 상태가 계속됐다. 혹시나 병이 재발한 건가 싶어서 상담받으려고 정신과에 갔다. 그런데 갑자기 심장이 쉴 새 없이 두근거렸고 말이 안 나왔다. 일어날 수 없고 걸을 수가 없었다. 전환 증상이라고 했다. 정신적인 에너지가 신체 증상으로 변환되는 증상이다. 말이 안 나오니까 글로 적어서 의사에게 전달했고 걸을 수 없어서 휠체어를 탔다. 멀쩡했던 몸에 한순간에 장애가 생겼다.
전환 장애 증상에는 걷기 어려운 증상, 대화 능력 상실, 팔이나 다리의 마비, 실신, 청력 상실, 시력 상실 등이 있지만 각종 검사를 해도 증상과 일치하는 이상 소견이 안 나온다고 한다. 나는 다행히도(?) 정신건강의학과에 갔기 때문에 각종 검사에 시간과 돈 낭비하지 않고 바로 병명을 알 수 있었다. 이 병은 다른 정신질환과 마찬가지로 정신적인 이유로 발생하는 병이다. 정신건강과 몸 건강은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게 아니라 하나라는 걸 그때 알았다.
카톡으로 친구에게 연락해서 병원에 와달라고 했다. 내가 지금 말을 못 하고 걷지 못해서 휠체어를 타고 있으니 놀라지 말라고 했다. 임신해서 몸이 불편한 친구가 내 옆에 있어 주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또 다른 친구도 와서 온갖 고생을 했다. 친구들 덕분인지 시간이 지나고 안정되니까 말을 할 수 있었고 걸을 수 있었다. 그 이후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갑자기 내가 뭔가 돌발행동을 하려고 했나 보다. 친구들이 계속 제지하자 죽어버리겠다며 밖으로 뛰어내리려고 난간을 잡았다. 뛰어내리지 못하도록 한 친구가 내 옷을 꽉 붙잡았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 소리 지르며 온갖 욕을 다하고 난동을 부렸다.
다른 친구가 연락했는지 어느새 엄마가 도착하셨고 구급 대원들도 도착했다. 옷을 다 벗은 상태로 난리를 쳤기 때문에 엄마 옷을 걸치고 들것에 실려 갔던 거로 기억한다. 발악하다가 또 코끼리 주사를 맞았다. 시야가 희미해지면서 귓가에 웅성거리던 사람들 소리도 점점 작아졌다. 눈을 뜨니 또 정신병원이었다. 벌써 네 번째 입원이었다. 이쯤 되니까 바깥에서 생활했던 기억은 그저 꿈이고 정신병원 생활이 현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갔던 병원은 침대 없이 여러 명이 한방에서 생활했는데, 그중에는 대소변을 못 가리는 환자도 있어서 바닥을 잘 보고 다녀야 했다. 온종일 쉬지 않고 허공에 대고 대화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병원이나 기본적으로 한 명씩은 있었는데, 이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교양 있고 똑똑하고 누가 봐도 정신이 온전한 할머니도 있었는데 그 할머니는 재산 때문에 자식들이 강제 입원시켰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아무나 쉽게 강제 입원시킬 수 있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정신병원 생활이 시작되면서, 나를 또 강제 입원시킨 엄마를 계속 저주했다. 나는 문제가 없는데 모든 사람이 나를 문제 삼는다고 생각하며, 악에 받쳐서 하루하루 살아갔다. 남 탓만 있고 내 탓은 없는 나만의 세상 속에서.
어찌하여 너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태복음 7:3 새 번역
“Why do you look at the speck of sawdust in your brother’s eye and pay no attention to the plank in your own e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