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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임은정 Oct 05. 2020

스쳐 지나가는 역할을 맡게 될 줄이야

돌아가는 행인

행인, 환자, 식당 손님, 여행객, 관객 등등..

보조 출연 알바를 하면서 맡았던 역할들이다. 여러 가지 역할로 표현했지만 사실 전부 행인과 같은 역할이다. 화면에서 잠시 스쳐 지나가는 역할이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행인이었는데 어느새 병원복으로 갈아입고 환자가 되었다가 갑자기 공항으로 이동해서 여행용 가방 끄는 여행객이 되었다가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식이다.




학습지 교사 일을 그만둔 후 이제 뭐 해서 먹고살아야 하나 고민했다. 그 당시 스물아홉이었고 이력서에는 쓸 수 없는 경력밖엔 없었다. 몇 달도 안 되는 직장 경력, 이혼 경력 그리고 정신병력. 단기 알바라도 하려고 찾아보다가 보조 출연 알바를 알게 됐다. 이 알바는 경력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의상을 제공해 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해당 장면에 맞는 옷을 챙겨 가야 했다. 드라마 같은 경우 아침 일찍 집합인 경우가 많아서 새벽에 첫차를 타고 갔었고 광고나 영화 같은 경우는 어떤 장면이냐에 따라 달랐었는데 저녁에 집합해서 다음 날 낮에 끝난 적도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대기하는 시간과 이동하는 시간이 근무시간 대부분이다. 대기시간이 곧 근무시간인 건 장점이지만 또한 단점이기도 하다. 대기시간이 길면 너무 지루하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면 일찍 끝나는 경우도 간간이 있었다.


보조 출연 알바는 인생과 비슷한 점이 많다. 우리는 아이로 태어나 아동, 어린이, 청소년, 청년, 장년을 거쳐 결국엔 노인이라는 역할을 끝으로 돌아간다. 그 과정 중에서 자식이었다가 부모 역할을 하기도 하고 보호자였다가 피보호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퇴근하거나 퇴사하면 또 다른 역할을 맡는다. 누구나 손님이 되고, 누구나 환자가 되고 누구나 백수가 될 수 있다. 보조 출연 알바했을 때 행인 역할 하다가 환자 역할 하기도 했듯이, 인생에서도 남의 역할이라고만 생각했던 역할을 갑자기 맡게 되는 일도 있다. NG가 나면 촬영이 길어지는 것처럼, 병원에서 시한부 선고받게 되더라도 기적적으로 삶이 연장되는 일도 있고, 변수가 생기면 갑자기 촬영이 무산되는 것처럼 예상치 못하게 삶이 끝나는 일도 있다.


촬영 시작 시간은 알 수 있지만 끝나는 시간은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이 태어난 시간은 알 수 있어도 죽게 되는 시간은 정확히 알 수 없다. 촬영 중 대기 시간처럼, 일이 진행되지 않아서 삶이 지루하다가도 촬영 시간처럼 일이 진행돼서 바쁘게 살아가기도 한다. 계절에 맞지 않는 의상을 입고 촬영할 때가 있듯이, 안 웃겨도 웃어야 하는 연기를 하게 될 때가 있듯이, 인생에서도 나와 맞지 않는 역할을 맡게 돼도 해야 할 때가 있고, 속마음과 다르게 말과 행동을 연기할 때가 있다. 어떤 촬영 때는 연예인을 위해 제공하는 음식을 같이 먹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어떤 촬영 때는 풀밭이나 길바닥에서 차갑게 식은 도시락을 먹을 때가 있었다. 우리 인생에서도 여건이 좋으면 좋은 환경에서 맛있는 음식을, 여건이 안 좋으면 열악한 환경에서 부족한 음식을 먹기도 한다.


똑같은 장면이더라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하면 다르게 보이듯이 똑같은 고난, 똑같은 기쁨이더라도 사람이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느껴진다. 출산이 누군가에겐 아프지만 기쁜 고통이고 누군가에겐 아프고 슬픈 고통이듯. 누군가가 주인공이면 그걸 보는 관객도 있어야 하듯, 주인공만 있어도 안 되고 관객만 있어도 안 된다. 세상에서 각자 다른 역할을 맡았지만 서로 돌아가면서 안 해봤던 역할도 맡게 되는 우리는, 서로에게 모두 필요한 존재이다.


인생에서 잠시 주어지는 좋은 역할에 우쭐대며 살다가도, 남의 역할이라고만 생각했던 역할을 맡으면 이내 우울해진다. 잠시 맡았다가 언제든 바뀔 수도 있는 역할이기에 너무 들뜨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지만, 기쁜 일에 웃고 슬픈 일에 우는 역할도 맡았기 때문에 의지와 상관없이 일희일비한다. 보조 출연 알바가 스스로 역할을 정할 수 없듯이, 인생에서 맡기 싫은 역할과 맡고 싶은 역할을 골라서 맡을 수 없다. 자식으로 태어나기 싫어도 자식 역할 맡게 되고 노인이 되기 싫어도 노인 역할을 맡는다. 사산아가 되어 자식 역할 못 해보거나, 단명해서 노인 역할 못 하고도 인생이라는 촬영은 끝날 수 있다.


내가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을 때 불행했다. 나만 불행했던 게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불행했다. 내가 인생의 주인공이라면, 인생이 내 것이라면, 내 위주로 돌아가고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되니까 몸도 마음도 병이 났다. 그런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산다고 늘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세상에는 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누구나 힘들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죽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언젠가는 결국 죽게 된다.


이 세상 모두에게는 각자 최적화된 역할이 있다고 믿는다. 모두 각자의 맡은 역할 잘 해냈으면 좋겠다. 이 땅에 태어난 행인으로서, 나그네로서 주어진 역할 잘 해내고 싶다. 그리고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영원한 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주님께서 나에게 한 뼘 길이밖에 안 되는 날을 주셨으니, 내 일생이 주님 앞에서는 없는 것이나 같습니다. 진실로 모든 것은 헛되고, 인생의 전성기조차도 한낱 입김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편 39:5 새 번역


You have made my days a mere handbreadth; the span of my years is as nothing before you. Everyone is but a breath, even those who seem secure.

Psalms 39:5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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