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은땀이 났다.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 쏟아진 음료수, 그 위를 기어 다니는 그 아이의 동생, 달려와서 우는 아이를 달래는 학부모님. 이 모든 상황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를 가르치면서 생각지 못한 변수를 마주하며, 학부모님을 상대하는 일은 내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네 번째 입원했던 정신병원은 시설과 환경이 너무 최악이어서 지난번에 입원했던 병원으로 옮겨서 입원했다. 더 나은 시설과 환경이었지만 지루하고 답답한 폐쇄병동이라는 점은 같았다. 두 병원에서 총 두 달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퇴원하니 어느새 정신병원에 다섯 번이나 입원했던 환자가 되어있었다. 또다시 백수 생활이 시작됐다. 괜찮아질 만하면 입원을 반복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해볼 기회가 없었다. 계속 백수로 지내다 보니 부모님께 면목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아서 시간을 계속 보냈다.
정기적으로정신건강의학과에 가면 의사가 근황을 물어본다. 그때마다 매번 쉬고 있다고 대답했더니 가르치는 일을 해보는 건 어떠냐고 했다. 외국에서 살다 왔으니 영어 가르치는 일이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영어 실력이 뛰어나지 않아서 누굴 가르칠 능력은 안 된다고 말했다. 그해 초까지만 해도 영어교재 집필을 했었는데, 어떻게 그 일을 했는지 신기할 정도로 그때의 자신감은 완전히 없어진 상태였다. 그랬더니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건 괜찮지 않겠냐고 했다. 듣고 보니 어린아이가 배우는 영어는 어렵지 않으니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구직 사이트에서 학습지 교사 구인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한 달 정도의 교육이 있었던 거로 기억한다. 교육을 마치고 내 사진이 박힌 사원증 같은 것도 받고, 교육을 받은 사람들과 다 같이 단체 사진도 찍었다. 한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그 소속감이 좋았다. 오랜만에 하는 공부도 재밌었고, 새로운 일을 하게 될 생각을 하니 설레기도 했다.
그런데 교육 마치고 바로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밖에서 홍보 활동을 해야 했다. 예전에 길거리에서 파라솔을 펴놓고 홍보지를 나눠주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바로 그 일이었다. 풍선으로 아이들의 시선을 끌고 학부모님들에게 접근해서 학습지 신청을 유도해야 했다. 사무실에 있을 때는 동료 교사와 함께 각각 학생과 선생님 역할을 맡고 번갈아 가면서 수업하는 연습을 했다. 본격적으로 혼자 수업을 나가기 전에 선임 교사를 따라 동행 수업을 나갔었다. 선임 교사가 수업하는 모습을 보고 배우는 시간이다. 그때 방문했던 집은 할머니와 아이가 사는 집이었다. 그 아이는 말도 잘 듣고 얌전한 아이였다. 아이의 방에서 상을 펴놓고 같이 공부했고 할머니는 다른 방에 가 계셨다. 선임 교사의 수업을 한번 보고 나니 이 정도면 나도 할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나에게도 한 가정이 배정됐다. 다른 교사의 사정으로 넘겨받은 가정이었다. 그 집 아이는 율동과 노래를 좋아한다고 해서 한 가지씩 연습해갔다. 첫날이라서 사무실에서 태워다 주셨다. 이제 그 이후부터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집에 방문했더니 아이 어머님이 수업을 할 수 있게 거실에 상을 펴주시고 음료수를 먹으라고 주셨다. 동료 교사와 연습했던 대로 수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5세 아이에게 40분이라는 시간은 너무 긴 시간이었나 보다. 처음에는 집중을 잘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집중력이 떨어졌다. 갑자기 아이가 찡얼거리기 시작했다. 당황해서 가방에서 풍선을 꺼냈다. 처음에만 호기심 보이더니 이내 또다시 찡얼거렸다. 준비해 간 율동과 노래는 아까 다 했는데, 아이 달래려고 그 자리에서 즉흥으로 지어냈다. 뭘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뒤통수에서 어머님의 시선이 느껴졌다. 수업을 지켜보셨던 것 같다. 수업 경력이 없는 교사라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애썼지만 이미 다 파악하셨다고 생각한다. 어머님이 나를 지켜보며 평가하겠다는 생각이 큰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거실 한복판에서 쩔쩔매며 찡얼거리는 아이를 달래는 내 모습, 그리고 그걸 뒤에서 보고 있는 학부모님. 이건 내가 상상했던 그림이 아니었다. 아이가 울지 않게 하려고 아무 말이나 건네며 시계만 계속 쳐다봤다. 그러다가 아이가 움직이면서 음료수를 쏟았다. 일어나지 않길 바라던 일이 일어났다. 아이가 막 우는 거다. 애가 울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무 당황스러웠다. 왠지 어머님이 이렇게 생각하실 것만 같았다.
'애 볼 줄도 모르면서 무슨 공부를 가르쳐.'
땀이 났다. 다행히도 어머님이 달려오셔서 그 상황을 수습해 주셨다. 그때는 난감했던 내 입장만 생각하느라 몰랐는데 이제 와보니 아이 둘을 키우는 건 진짜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면서, 쏟아진 음료수 위로 기어 다니는 다른 아이를 제지하면서, 바닥의 음료수를 닦으며 교사도 신경 써야 하는 일. 엄마라는 직업을 가지면 한 사람의 능력을 넘어서게 되나 보다. 학습지 교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아이를 가르치러 갔지만 진짜 아이의 교사는 그 아이의 엄마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를 위해서 무엇이든 착착 해낼 수 있는 교사.
당황스러움과 난처함으로 어찌어찌 수업 시간을 채우고 그 집을 나서면서 생각했다. 나는 이 일을 해낼 능력이 없다고. 그만둬야겠다고. 그리고 두 번 다신 아이 가르치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또다시 백수 될 생각을 하니 집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렇게 학습지 교사로서의 짧은 체험이 끝났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13 새 번역
I can do all this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